UPDATED. 2024-04-28 16:26 (일)
화석정과 이율곡
화석정과 이율곡
  • 의사신문
  • 승인 2013.10.07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난이 있는 정담 〈102〉

지금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다시 지었다. 현판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다.
제주도의 올레길 걷기 열풍이 전국을 휩쓸며 여기 저기 길이 무수히 생겨났습니다. 본래 있던 길인데 지방자치단체마다 여기에 이름을 붙여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파주와 민통선 일대에도 `평화누리길'이 생겼습니다. 길이 생겼다기보다는 예전부터 있던 길에 이름을 새로 만들어 붙였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초평도를 바라보는 장산전망대 역시 평화누리길을 걷다가 잠시 들러 철조망과 그 너머에 흐르는 강을 보며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느끼는 곳입니다. 장산전망대에서는 운이 좋으면 오랫동안 이 일대에서 군 생활을 마치고 퇴역한 후 이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도움말을 전하는 자원봉사 해설사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평화누리길을 찾아 걷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직 포장이 되지 않은 샛길을 지나고 보니 아스팔트 포장이 너덜너덜해진 길이 나타나고 그 뒤에는 차들이 씽씽 달리는 국도를 건너야 합니다. `평화누리길'을 걷고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길옆엔 이젠 눈에 익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데 일행 중 한 분이 `단풍잎돼지풀'이라고 알려 줍니다. 외래종으로 대표적 생태교란식물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이 근처에 미군부대가 있었는데 그 때 들어와 이곳에서 처음 번식되어 이제는 전국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약한 해바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돼지감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잎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조금은 불안한 국도변을 벗어나 도착한 곳이 화석정입니다. 이곳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크기의 느티나무 군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살펴보니 수령이 어느 것은 560년으로 표시되어 있고 어느 것은 260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자 옆에 서 북쪽을 바라보니 시야가 참 좋습니다. 임진강이 오른쪽에서 흘러들어와 휘어져 왼쪽으로 나갑니다. 지대가 높은 곳은 아닌데 강물이 바로 발아래를 흐르는 듯하고 그 너머엔 평지와 산이 잘 어울려 있습니다. 강의 위쪽 멀리 용암이 흐르다 갑자기 식어버린 주상절리가의 바위벽이 강물을 호위하고 왼쪽 끄트머리엔 멀리 평야 같은 초평도가 슬쩍 보입니다. 과연 정자 하나쯤은 있어야 할 곳입니다.

이곳에 정자를 처음 건립한 이는 율곡 이이의 5대조인 이명신이고 성종 때 증조부인 이의석이 이를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 (花石亭)이라 이름 붙였다 합니다. 해질 무렵 화석정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 위쪽 바위벽에 석양이 비치면 마치 꽃이 핀듯해 이곳 정자를 화석정이라 이름했다고 동행한 이가 설명을 합니다. 이름 지은이에게 물어볼 길이 없으니 그냥 믿기로 합니다.

화석정에 관한 글을 찾아보니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 밤중 이곳에서 임진강을 건널 때 이곳 화석정에 불을 붙여 강을 환하게 밝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율곡이 생전에 선조가 이곳을 지나 북으로 피신할 것을 대비에 미리 기둥에 기름칠을 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에 조금 다른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두워져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울 때 강을 건넜다. 임진강 남쪽 기슭에 세운 승청 (나루를 관리하는 관청)이 있었다. 적군이 들이닥쳐 청사를 허물고 그 재목으로 뗏목을 만들어 건널까 염려스러워 불을 지르도록 했다. 그 불빛이 강 북쪽까지 비치어 길을 찾아가기가 수월했다.'

어떤 이는 이율곡의 십만양병설에 대해 율곡이 이를 주창한 기록이 없고 다만 후학 중의 한 사람이 슬쩍 `그랬다'는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아 이 역시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합니다. 이율곡에 대해 왜곡된 사실이 전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