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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냐, 스토커냐 - 윌리엄 보몬트
의사냐, 스토커냐 - 윌리엄 보몬트
  • 의사신문
  • 승인 2013.09.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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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탄총 부상자 치료하며 `위장의 기능' 연구 몰두

위장의 기능을 처음 알아낸 꼼꼼한 외과의사 - 윌리엄 보몬트(William Beaumont)

“야, 고소한 냄새! 오늘 음식은 뭐예요?”

일찍 오길 잘 하셨죠? 양곰탕을 만들고 있어요.

“엄마! 양곰탕은 양고기로 만든 고기예요?”

소의 첫째 위장을 양이라고 한단다.

소처럼 풀을 먹는 동물들은 무서운 동물로부터 몸을 보호하러 위장이 여러 개야. 첫째 위장을 혹위, 둘째 위장을 벌집위, 셋째 위장을 겹주름위, 넷째 위장을 주름위라고 부르지. 혹위는 말 그대로 혹 모양으로 생긴 가장 큰 위장인데, 삼킨 음식물을 섞고 먹이를 분해하여 다시 입으로 보내는 되새김질을 한단다.

엄마가 양곱창을 좋아해 우리 윤이 뱃속에 있을 때 아빠에게 사달라 졸라댔어. 아∼, 지금도 군침이 도네.

옛날부터 사람들은 위장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궁금했단다. 그러나 위장이 우리 몸속에 깊숙이 있다 보니 내시경 없이는 볼 수 없었어.

“위장은 절구통처럼 빻는 기능을 할 거야.”

“아니야, 음식을 굽는 냄비 역할을 해.”

“아니야, 단지 삭이는 그릇에 불과해.”

서로 생각나는 대로 말했지.

옛날 로마의 이름난 의사 갈레노스는 더욱 황당한 말을 해.

“위장이 배고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을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아빠도 배고프면 화내니까 위장이 생각하나 봐요?”

얘들이 아빠를 놀리네, 호호∼.

그런데 위장의 기능은 성격이 꼼꼼한 외과의사에 의해 우연히 알려지게 됐단다.

“야, 오랜만에 재미있는 엄마 이야기다.”

엄마 이야기가 재미있어? 그러니까 1822년의 일이야.

미국 오대호 주변에는 `푸른 거북'이란 뜻을 가진 섬이 있어. 이곳은 지금은 휴양지이지만 옛날에는 북미 대륙에서 가장 큰 모피를 사고파는 곳이었다고 해. 그런데 이 섬은 원래 원주민들의 공동묘지였다고 해. 그래서 이를 빼앗은 백인과 원주민들이 자주 싸웠기 때문에 7년 전에 미국 땅이 되었지만 수비대가 주둔할 정도로 어수선했어.

6월이 되어 따뜻해지자 겨울동안 사냥한 짐승의 가죽과 모피 따위를 팔려는 사냥꾼들이 모여들었어. 강가에는 이들이 타고 온 카누와 배가 즐비했고, 모피회사의 가게에는 사고파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댔어. 그때 가게 앞에서 사냥꾼이 산탄총의 방아쇠를 실수로 당기고 말았대.

`뻥∼'

“깜짝 놀라라!”

운 없게도 한걸음 정도 앞에 있던 젊은 캐나다 청년이 왼쪽 가슴을 맞고 쓰러졌어.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사고가 났던지 윗도리에 불이 붙어 주변의 사람들이 외투를 벗어 불을 껐단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젊은 군의관이 달려와 피범벅이 된 청년에게 달려가 먼저 이름을 물었어. 그가 바로 윌리엄 보몬트야.

“알∼렉시 생 마르∼탱. 캐나다 사∼냥꾼이에요. 살∼려주세요.”

“아직 숨은 붙어있구만….”

한줌이나 되는 큰 산탄은 가슴근육을 통째로 뭉개버리고, 어른 머리만한 큰 구멍을 만들었어. 허파는 갈비뼈 사이로 삐죽 나왔고, 아침식사로 먹은 음식이 뚫린 구멍을 통해 쏟아져 있었어. 보몬트는 정신을 차리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바깥으로 튀어나온 허파를 가슴 안으로 집어넣은 다음 상처를 깨끗이 닦고 붕대를 감았어.

“하루 반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가 내뱉는 한 마디는 청년을 꼭 살리고 싶은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어.

그럼, 그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엄마와 함께 보몬트의 어린 시절로 같이 가보자.

윌리엄 보몬트는 1785년 미국 북동쪽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단다. 농부에게는 무려 아홉 명의 아들딸을 있었는데,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윌리엄 보몬트는 그 가운데 네 번째였어.

“아홉 명이 있었다구요?”

그래, 옛날에는 온가족이 함께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아이, 특히 아들을 낳는 것은 고된 일을 할 수 있는 일꾼을 한 사람 얻는 것이었단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보몬트의 아버지도 초등학교만 공부시키고 농사일을 맡기려고 했지.

그런데 윌리엄만은 어릴 때부터 눈에 띄게 호기심이 많고 공부를 잘 하는 거야. 하루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어봤대요.

“하늘은 왜 파란가요?”

“엄마, 하늘은 왜 파래요?”

어? 우리 윤이가 똑같은 질문을 하네. 엄마도 모르겠는 걸…. 이럴 때는 아빠에게 물어보면 돼.

“에헴∼, 하늘이 파란 이유는 공기 중에 아주 작은 물질이 떠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물질에 빛이 산란되어 파랗게 보이는 것이야. 이런 생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뉴턴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주장했는데, 1869년 틴들이 실험하여 처음 밝혀냈어. 다시 엄마 이야기를 듣자.”

결국 윌리엄 보몬트만 공부해 의사가 되었고, 세 아들과 여섯 딸 가운데 아들인 첫째와 막내는 모두 고향에서 목수를 했어.

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그를 교사로 만들기 위해 큰 도시로 보냈어.

“나는 의사가 되고 싶은데….”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공부를 그만두고 농사일을 돕는 가족들을 보면 차마 입 밖에 나오지 않았어.

그래서 그는 틈만 나면 몰래 의학을 공부하여 이름난 의사 밑에서 배워 1812년 드디어 소원이던 의사가 되었단다.

그가 의사가 되었을 때는 한참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하려고 싸울 때였어. 보몬트는 외과 군의관으로 전쟁터에 나가 밤낮 다친 병사를 치료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로운 논문을 읽어 훌륭한 의사로 인정을 받게 돼. 그가 얼마나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을 좋아했냐면 말이다. 사건이 일어났던 `푸른 거북' 섬으로 가게 된 것도 일 욕심에서였지. 그는 군인과 가족, 원주민, 사냥꾼과 정착민 등 많은 사람을 치료하는 오직 한 사람뿐인 의사였어.

이제 `푸른 거북' 섬으로 다시 가보자.

그땐 핏줄을 통해 수액을 넣는 방법이 나오기 전이어서 청년을 살리러 입으로 음식물을 넣어보았어.

“이거, 상처로 다 빠져나오잖아. 그럼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 그래 항문을 통해 영양분을 넣어보자.”

그는 17일 동안 항문으로 영양분을 공급해 겨우 청년을 살렸어. 보몬트는 이제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대.

“이젠 사냥도 못할 것 같으니, 캐나다로 다시 보냅시다.”

모피회사에서는 쓸모없어진 청년을 먼 고향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어.

“지금 보내면 죽습니다. 제가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든 다음 생각해 보죠.”

보몬트는 청년을 군의관 숙소를 데려와 날마다 두 차례 상처를 치료해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등 온갖 편의를 봐주었어.

“참 착한 의사예요.”

그렇지. 보몬트는 착한 의사야.

상처가 그런대로 아물자 그는 다시 기발한 생각을 해.

“그래 가슴에 난 구멍을 통해 바로 위장으로 밥을 넣어보자.”

며칠 동안 청년을 위해 위장에 난 구멍으로 직접 밥을 넣어주던 보몬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어.

“아니, 위장의 기능을 알아낼 수 있는 `걸어다니는 위장'이잖아!”

그는 청년을 몇 시간 굶긴 다음, 오른쪽으로 모로 눕혀 불빛을 비추어 위장 속을 들여다보았어. 그 위장 속에 있는 약간 신맛을 띤 점액이 염산일 거라고 생각했어. 이러한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위액을 뽑아 분석해 마침내 위액이 염산이라는 것을 밝혀냈어.

또 깔대기로 물을 붓거나 숟가락으로 음식을 넣고, 또 대롱으로 다시 끄집어내기도 했어. 한번은 붕대가 아니라 날고기 조각으로 구멍을 막아놓았더니 다섯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마치 칼로 다진 듯 부드럽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었어.

보몬트는 얼음낚시꾼처럼 음식물을 굵은 실에 매달아 위속으로 넣으면서 모든 소화활동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어.

보몬트는 실험하면 할수록 궁금한 게 많아졌어. 여러 음식을 먹었을 때 한 가지씩 순서대로 소화되는지 알고 싶어 소고기, 돼지고기, 빵, 양배추를 요리한 정도에 다라 다르게 매달아 넣어보기도 하고 때때로 소화되고 있는 음식을 꺼내서 관찰하기도 했어.

심지어 술이 위장염을 일으키는지 알기 위해 며칠 동안 청년의 위장에 술을 부었는데, 청년이 술에 취해 며칠 동안 깨어나지 못하기도 했어.

“너무 심해요.”

좀 그렇지. 한 해가 지나자 청년은 사고를 당하기 전 기력을 회복하였지만 왼쪽 젖꼭지에서 반뼘 정도 아래쪽, 바깥쪽으로 아기 주먹보다 큰 구멍을 남겼어.

이때부터 청년은 보몬트를 피해 도망갈 궁리만 했단다.

그러나 보몬트는 청년을 놔줄리 없었어. 자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도 청년을 꼭 데리고 다녔어. 결국 보몬트는 세 해 동안 `걸어다니는 위장'으로 위장에 대해 연구할 수 있었어.

어느 날, 보몬트가 집으로 돌아오니 청년이 보이지 않았어. 청년은 실험대상으로서의 역할에 진절머리 나 북쪽 황무지로 도망쳐버렸던 거야.

“어디로 도망친 거야.”

보몬트는 비가 쏟아지는 거리에 나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고함을 질렀어.

“꼭꼭 숨어라.”

그러나 보몬트가 그만 둘리 있겠니? 청년을 잃고 미칠 지경이었던 그는 청년을 찾으려고 엄청난 거리를 헤맸어. 청년이 도망가면 마치 형사처럼 수소문해 마침내 청년을 찾았어.

“상점에 취직도 하고 결혼해 두 아이까지 있어요. 따라갈 수 없어요.”

보몬트는 절대 따라가지 않겠다는 청년과 가족을 별의별 말로 꼬여 미국으로 다시 데려왔어. 그 뒤에도 청년은 몇 번이나 가족을 데리고 도망쳐 캐나다 오지로 숨었어. 그때마다 그는 다시 찾아내 미국으로 데려왔지. 결국 보몬트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238번의 실험에 성공했어.

“의사예요? 스토커예요?”

정말, 그렇네. 1833년 보몬트는 위액과 소화 기능에 관한 책을 내 세계적인 의사로 발돋움해.

보몬트는 자다가도 이렇게 잠꼬대하곤 했다고 해.

“잡아야 하는데….”

청년은 또 어땠는 줄 알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하곤 했대.

“또 날 잡으러 온 것 아냐?”

호호∼.

“결국 또 찾아냈어요?”

1853년 4월부터 청년은 편히 잘 수 있었어. 보몬트가 얼음 덮인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해 갑자기 죽었거든….

그럼, 청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몬트보다 28년을 더 살아 여든세 살에 캐나다에서 죽었어. 그때까지 구멍을 붕대로 막지 않으면 위장의 음식물이 새어나왔는데, 특히 술은 마구 흘러나와 평생 술을 마시지 못했대. 이것이 청년을 오래 살게 만든 게 아닐까?

“아빠도 술 드시지 마세요!”

“그럴게. 윤이랑 오래 살아야지. 하하∼”


*윌리엄 보몬트(William Beaumont)

1785년 11월 21일에 태어나 1853년 4월 25일에 사망했다.

미국의 군의관, 외과의사로 미국 코네티컷 레버넌에서 사무엘 보몬트의 3남 6녀 중 4번째로 태어나 버몬트 주 세인트 앨번스의 의사 트루먼 파월(Dr. Truman Powell)에게서 의학을 배웠다.

1822년 6월 6일, 미시간에 있는 포트 매키낵에서 일하던 중 산탄총 폭발로 부상을 당한 프랑스계 캐나다 사냥꾼 알렉시 생 마르탱을 치료하면서 상처를 통해 처음으로 위장의 기능을 연구하였다.

1833년 `위액에 관한 실험과 관찰 그리고 소화생리학'을 출간해 유명해졌다. 이 책에서 위액의 특성과 일반적인 소화과정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개의 위장을 뚫어 실험한 베르나르와 파블로브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에 기반이 되었다. `위장 생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세인트 루이스 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에서 죽었다. 

김응수 <한전병원 흉부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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