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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도
초평도
  • 의사신문
  • 승인 2013.09.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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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01〉

파주의 장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초평도. 임진강이 오른쪽에서 흘러와 초평도 앞에서 위아래로 갈라진다. 논은 제방을 막아 조성된 듯하다. 제방위의 철책과 경비초소가 삼엄하다.
이십여 년 전 드라마와 소설의 대중적 성공과 함께 갑자기 불어 닥친 동의보감과 허준 열풍은 어쩌면 우리나라 의료계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과 못마땅함의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병원에서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허준과 같은 의사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 예산과 제도에 발목이 잡혀 있는 의료계도 할 말은 있겠지요.

버스가 다시 흙먼지를 날립니다. 산길은 벗어나자 시야가 탁 트입니다. 논이 보이고 그 너머로 임진강이 휘돌아 나갑니다. 논길을 걸어 강가에 이르니 건물 옥상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강폭은 넓지 않고 물도 그리 깊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강 건너 너른 풀밭처럼 보이는 땅은 초평도라는 섬입니다. 임진강이 이 초평도 동쪽에서 갈라졌다가 서해 쪽에서 다시 합쳐집니다. 큰 섬입니다. 고요합니다. 그리고 낯선 풍경입니다. 전망대 난간에는 이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새들 그림과 설명이 있지만 눈에 보이는 새는 없었습니다.

동행한 환경운동가는 초평도에 대해 걱정이 많았습니다. 초평도 개발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은 저 엄청난 양의 골재가 가져다 줄 천문학적 이윤을 탐내고 있고, 싼 값에 얻을 수 있는 광활한 토지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래 속, 크고 작은 돌 틈, 나무 등걸 아래 섬 구석구석엔 아직도 엄청난 양의 불발탄과 물에 떠내려 온 지뢰가 묻혀 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초평도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는 땅입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초평도의 주인은 새와 짐승들입니다. 환경파괴를 걱정하는 그는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그 땅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대로 지금처럼 산짐승과 들짐승들이 편안히 뛰고 새들이 깃들 수 있도록 내버려 두라고 합니다. 섬인지 육지인지 모를 강 건너의 들은 그냥 푸를 뿐입니다. 태연한 척, 평화로운척 하는 초평도에 전기가 들어오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땅에 들어와 보이지 않는 긴장감 속에 이곳저곳을 잠시 스치고 나오는 길은 홀가분했습니다. 버스는 다시 다리 위의 철제 차단 시설을 이리저리 피하나 들어갈 때보다는 한결 여유롭습니다. 이번엔 남쪽에서 초평도를 본다고 합니다. 잘 포장된 도로에 차들이 빠르게 달립니다. 어쩐지 산과 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더 편안하고 친숙합니다.

임진강 남쪽의 장산전망대는 전망대라기보다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배기입니다. 저 아래 임진강이 동에서 흘러오다 물줄기가 둘로 갈라지고 그 사이에 초평도가 있습니다. 환경운동가는 다시 한 번 초평도가 개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이야기 합니다. 물은 그저 흐를 뿐이고 초평도는 그냥 거기에 자리 잡고 새와 짐승을 키우며 생채기로 남은 지뢰와 아직 터지지 않은 포탄을 삭이고 있습니다.

큰물이 나면 또 다른 지뢰가 떠 내려와 저기 어딘가에서 삭아 흙이 되기까지 긴 세월을 견딜 것입니다. 평화누리길을 걷던 사람들은 이곳에 잠시 들러 갈 수 없는 섬 초평도를 다만 눈으로 훑고는 돌아섭니다. 강의 남쪽 둑 아래로 논이 평화로운데 자세히 보니 강둑엔 철조망이 삼엄합니다.

허가를 받아 들어가서도 철조망과 지뢰표시를 보며 몸가짐이 조심스럽고, 사진을 한 장 찍어도 이것이 나중에 인터넷에라도 공개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곳이 민통선 너머의 우리 땅입니다. 들고 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해 호기심이 생기지만 정작 들어가서는 내내 마음 한편이 불편합니다. 푸른 들과 흐르는 물은 다름이 없는데 다르게 보입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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