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내가 결과를 주물러 줄게 - 그레고어 요한 멘델
내가 결과를 주물러 줄게 - 그레고어 요한 멘델
  • 의사신문
  • 승인 2013.09.09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계 바탕 끈기있는 실험으로 유전의 법칙 밝혀”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가난한 의학자 - 그레고어 요한 멘델(Gregor Johann Mendel)

“어? 윤이가 엄마 어깨를 주무르고 있네. 무슨 일 있어요?”

완두콩을 보더니 수프를 만들어달라네요.

당신도 먹고 싶은 눈치이니 이래저래 완두콩 수프를 만들어야겠어요.

윤이 아가씨, 완두콩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뭐가 생각나니?

“`재크와 콩나무'예요.”

어? `재크와 콩나무'에도 완두콩이 나오는구나. 엄마는 완두콩으로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멘델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래, 오늘은 멘델에 대해 이야기해줄게.

지금부터 백년도 훨씬 넘었네. 1900년이었으니 말이다. 네덜란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학자 세 사람이 서로 먼저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떠들어댔어.

“내가 먼저 다윈의 진화론을 증명하는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어!”

그러다 그들은 학술모임에서 지방학회지에 실린 멘델의 논문을 보고 깜짝 놀랐어.

“아니, 멘델이란 사람이 우리보다 무려 삼십 여 년 전에 얘기를 미리 다 해버렸잖아.”

그때부터 `멘델의 유전법칙*'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어.

멘델은 1822년 현재 체코인 모라비아 북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단다. 가난했지만 성실했던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땅을 빌어 사과와 자두나무를 심어 가꾸었는데 언제나 좋은 과일이 맺히는 게 아니라 고민했어.

과일이 어느 나무에선 튼실하게 맺히고, 또 다른 나무에서는 쭈글쭈글하게 맺히는 거야. 아버지는 나뭇가지를 접붙이거나 색다른 방법으로 좋은 과일이 맺히게 공부하는 멋진 농사꾼이었대요.

게다가 시골이다 보니 멘델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과일을 키우는 방법과 꿀벌을 기르는 방법 등을 덤으로 가르쳐 주었대.

더욱이 어느 귀족이 과학을 더 깊이 가르치게 많은 돈을 학교에 기부했대요. 귀족의 생각에 맞게 한 교사는 서로 다른 식물과 붙여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내는 방법 등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대요. 그러니 멘델이 꼬마 때부터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겠지?

멘델은 어릴 때부터 똑똑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생물과 수학은 언제나 만점을 받으니 오히려 교사들이 신나 멘델의 아빠에게 말을 걸었지.

“도시로 보내 큰 인물로 만들어 봅시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농사일을 돕게 하려했던 아버지는 놀랐으나 마지못해 멘델을 도시에서 전문학교까지 다니게 허락해. 멘델은 신바람이 나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선 교사가 되어야 해.”

멘델은 과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그때는 대학을 나와도 교사가 아니고서는 과학자로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 그렇지! 당시의 이름난 과학자들은 교사이거나, 모두 다윈처럼 집안이 돈이 많은 사람들뿐이었잖아.

가난한 멘델을 위해 고향에서 몇 사람이 돈을 마련해주었어. 그러나 학비를 내고나면 동전 몇 개밖에 남지 않아 멘델은 며칠에 한 번씩 날감자로 허기를 채우며 죽어라 공부만 했어.

어?

“왜요?”

멘델이 강철로 된 아이언맨이 아니잖아. 그렇게 몇 개월 못 되어 광대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위더니 영양실조로 쓰려져 결국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돼.

멘델이 겨우 몸을 추스를 무렵 집안에 큰 사건이 일어났단다. 그때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짓던 사람들은 땅주인이 시키는 다른 일도 해주어야만 했는데, 아버지가 일을 도우다 그만 쓰러지는 나무에 깔려 크게 다친 거야.

“멘델의 아빠가 다쳤어요?”

그래, 어렵사리 공부를 이어갔던 멘델은 이제 과학자의 꿈도, 교사가 되려는 꿈도 버려야 했어.

“희망이 무너져 내리는구나. 비참한 앞날이 기다리는구나.”

멘델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어.

그때 여동생이 결혼하려고 모아둔 돈을 멘델에게 줘 다시 공부할 수 있었어. 그러나 여동생의 돈도 두 해 남짓 공부할 수 있는 돈밖에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멘델은 공부하기 위해 스스로 `그레고리우스'라는 이름을 짓고 1843년 수도원으로 들어갔어.

그렇다 보니 말이야. 윤아, 멘델이 수도사가 되고 싶어 수도원에 들어간 게 아니잖아. 그는 어떻게 해서든 수도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궁리했어. 그러다 옆 동네의 고등학교에 교사 자리가 나자 꿈이 되살아나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지. 당시 수도원장은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빈 대학으로 보내 더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시험에 두 차례 떨어져 정식으로 교사가 되지 못했어.

멘델은 틈나는 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수도원의 정원을 관리하던 사람이 죽자 대신 정원을 맡았어.

“멘델이 너무 바빴겠어요.”

수도사를 하랴, 학생을 가르치랴, 정원을 관리하랴 정말 바빴지. 그러나 정원을 관리하는 일은 멘델에게는 행복이자, 행운이었어. 외할아버지가 정원사였던 멘델은 어릴 때부터 정원을 관리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웠거든….

옛날부터 사람들은 아기가 부모를 닮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버지, 어머니에서 각각 반을 받은 아기가 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어.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의 아버지답게 이렇게 말했지.

“사람의 몸속에 각각 특징을 가진 체액이라는 물이 있는데, 그 물이 섞이면서 서로 자신의 특징을 물려주려 하는 거야. 그래서 아버지의 물이 강하면 아버지를 닮고, 어머니의 물이 강하면 어머니를 닮게 되는 거지.”

참 그럴듯한 생각이야.

당시는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시기여서 빈 대학을 다닐 때 다윈의 책을 읽어본 그로서는 다윈이 얘기한 유전의 법칙을 캐내고 싶었어. 멘델이 얼마나 다윈의 책을 많이 읽었던지 너덜너덜하고, 빈칸마다 자신의 생각을 깨알처럼 적어놓어 다른 사람은 읽기 어려웠을 정도였다니까 말이다. 또 멘델의 집안에는 간질이란 병이 내려오고 있어 그 이유를 알고 싶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생물로 실험해 보자.”

멘델은 처음에 흰 쥐와 검은 쥐를 잡아 한 울타리에서 길러 새끼를 비교해 보기로 했어. 그러나 생쥐는 가두기도 힘들고, 빨라 움직여 잡아서 확인하기도 어려웠어.

“이거, 재빨라 잡지 못해 어떻게 실험하겠어?”

결국 멘델은 쥐를 포기하고 완두콩에서 색과 모양, 콩깍지의 색과 모양, 꽃의 색깔과 위치, 줄기의 키 등 일곱 가지의 특징을 골라 실험하기로 결정했어.

“엄마, 왜 일곱 가지예요?”

일곱이란 참 의미 있는 숫자란다.

“무지개 색깔도 일곱이예요. `도레미파솔라시도'도 일곱이구요.”

그렇지. 태양계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천체도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일곱이야. 그래서 옛날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일곱을 중요하게 여겼단다. 완두콩의 경우 칠천 개 이상의 중요한 형질이라고 부르는 특징이 있는데, 그 중에 멘델이 단 일곱 개만 선택한 것이야.

“정원에 완두콩을 가득 심었겠어요. 우와∼, 완두콩 수프를 엄청나게 만들 수 있겠다!”

우리 윤이, 완두콩 수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하∼, 사람들은 멘델이 수도원에 온통 완두콩을 심은 줄 알아요. 수도원에 좁은 안뜰이니까, 어느 정도 일까? 삼백 제곱미터니까 테니스 코트 넓이만한 좁은 공간이었어.

그런 나쁜 조건에서 멘델이 어떻게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느냐. 그것은 멘델이 수학을 잘해 통계를 처음으로 실험에 넣었기 때문이야. 그는 완두콩으로 여덟 해 동안 이백 번 넘게 실험하여 만 삼천 개 가량의 특징이 섞인 완두를 얻어 계산을 했어.

멘델은 1866년 2월 8일과 3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지역 학술모임에서 발표를 했어.

“논문에 웬 셈이 나와?”

한 사람도 질문하지 않아 토론도 없었고, 하품을 하는 사람도 있었대. 당시의 학자들은 동물과 식물을 형태를 연구하거나 분류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수학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멘델의 논문을 이해하는 것이 능력 밖의 일이었겠지. 그는 논문을 지방학회지에 발표하고, 마흔 명이 넘는 학자들에게 보냈어.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 멘델은 당시 최고의 생물학자 뮌헨대학 교수에게 보내고, 찰스 다윈에게도 보냈어. 그러나 그 교수마저도 셈이 나오는 멘델의 논문을 이해하지 못해 완두가 아닌 조밥나물로 실험해 보라는 황당한 말을 했어. 다윈은 어떻게 했냐구? 다윈은 친척 과학자로부터 멘델의 유전을 법칙에 대해 얼핏 들었다고 해. 그러나 시골 애송이 과학자가 보낸 논문의 관심 밖이어서 뜯지도 않고 보관했다는구나. 결국 멘델의 논문은 34년 동안이나 도서관에 사장돼.

멘델은 충격을 받아 며칠간 밥을 먹지 않았어.

“머지않아 내 연구를 온 세상이 알아줄 거라고 확신해.”

이 한 마디를 하고 더 이상 유전에 대한 연구는 집어치웠어.

그러다 호기심이 일면 태양의 흑점에 관한 연구나 곤충의 개량에 관한 연구를 했어.

멘델은 46살 때 수도원장이 되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실험을 끝냈어. 1874년 나라에서 수도원에 세금을 걷겠다고 하자 멘델은 이에 반대해 무려 십년간이나 앞장서 싸워. 그러나 정부의 계략으로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고, 심지어 멘델의 재산마저도 모두 빼앗기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게 돼. 1884년 유난히 추웠던 1월, 멘델은 쓸쓸히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돼.

“멘델이 불쌍해요.”

우리 윤이, 울려고 하네.

그런데 멘델의 유전법칙이 알려지고 나서 학자들은 멘델과 똑같은 방법으로 실험해 보는 게 유행이었어. 그런데 참 이상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실험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멘델이 얻어낸 것처럼 딱 떨어지게 나오지 않더라는 거야.

멘델처럼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수학에 밝았던 멘델이 결과를 다듬고, 주물렀을 수 있다는 거야. 마치 우리나라 어느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처럼 윤이가 엄마 어깨를 주무르듯이 결과를 주물렀다는 이야기인데….

둘째, 결혼하지 않았던 멘델은 실험식물을 완두라고 부르지 않았어.

“그럼 뭐라고 불러요?”

완두콩을 언제나 `내 자식'이라고 부를 정도로 애착을 가져 항상 실험하기 전에 기도를 드리고 했다는 거야. 때문에 다른 학자들보다 정확하다는 거야.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마는 잘 모르니까 우리 아빠에게 물어보자.

“그럼, 이제 아빠가 말해줄까? 아빠는 둘째의 가능성에 점수를 주고 싶어.

왜냐하면 많은 식물 중에서 번식이 잘 되고, 하나의 가지에 콩이 많고, 거기에다 어버이와 자식 간에 세대가 짧고, 다양한 특징을 가진 완두콩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더욱이 멘델이 안뜰에서 신선놀음을 하면서 연구한 게 아냐. 완두콩바구미라는 곤충이 휩쓸어 몇 차례 안뜰이 쑥대밭이 되기도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여 법칙을 알아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멘델은 우리나라와도 관계가 깊단다. 오스트리아 우리 대사관 앞의 거리가 바로 멘델을 기념하는 그레고르 멘델 거리야. 빨리 수프 먹자. 윤아! 아빠랑 같이 그레고르 멘델 거리 구경하러 가자.”

“어떻게요?”

김응수 <한전병원 흉부외과 과장>

*멘델의 유전법칙

■우열의 법칙(The Principle of Dominance): 생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형질에는 우성과 열성이 같이 있으며 열성은 숨어 있고 우성만이 나타난다.

■분리의 법칙(The Principle of Segregation): 한 쌍의 대립유전자인 우성과 열성은 자손에 전해질 때 분리된다.

■독립의 법칙(The Principle of Independent Assortment): 다른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예를 들면 완두콩의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