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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묘
허준 묘
  • 의사신문
  • 승인 2013.09.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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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00〉

구암 허준 부부의 묘역. 봉분 가운데 서 있는 묘비는 쪼개져 있고 남은 글씨는 비바람에 마모되어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세상의 온갖 편리함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곳 민통선을 넘어오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길의 이정표가 없으니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버스가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차창너머의 푸른 숲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입니다.

차가 언덕길을 넘고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다 작은 다리를 넘었습니다. 길이 점점 좁아지자 운전자와 길 안내하던 이가 당황하며 두리번거립니다. 길을 잘못 들었답니다.

초행길도 척척 찾아 어느 차선으로 달리다가 언제쯤 우회전을 해서 몇 미터 가다가 왼쪽 길로 가라는 식으로 자세하게 길안내를 하는 내비게이션에 익숙해진 터이니 운전자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이곳은 그 편리한 내비게이션이 무용지물인 곳입니다. 길이 눈에 익고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이곳 주민이 아니라면 차를 몰아 목적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렵사리 돌아 나와 가다보니 허준 묘를 알리는 작은 도로 표지판이 겨우 보입니다. 허준 묘는 깊고 깊은 산 속에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묘지에 이르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길 주변엔 이런저런 약용식물까지 심어져 있었습니다

구암재라는 이름의 재실은 소박하지만 부족하지 않은 규모로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옆에 새로 세워진 허준묘 중건비는 재실보다는 조금 더 과장되어 있습니다.

경기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허준 묘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불과 20여전 전인 1991년입니다. 발견 당시 봉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묘비와 문인석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이 두 쪽으로 쪼개져 훼손된 묘비에서 마모되어 희미해진 몇 글자를 판독해 이곳이 허준의 묘역임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허준은 조선 어느 시대의 뛰어난 의사였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한의학에서 귀하게 여기는 동의보감을 저술한 역사 속 인물이었습니다. 1990년 소설 동의보감이 간행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방송드라마로 제작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허준은 우리나라의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소설과 드라마의 상업적 성공이 이러한 소란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허준 묘는 안보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이곳 민통선을 들어오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거치는 곳이 되었습니다. 방문객수가 늘어난 만큼 이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해 주기 다양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조금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읽는다면 의성으로 일컬어지는 허준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알아볼 기회가 되겠지만 방문자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과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합니다. 그저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허준 묘를 정비하고 그에 관해 이런저런 안내문을 마련해 둔 사람들 역시 정성을 다하지는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내문과 비석에 새겨진 그의 출생연도가 제각각입니다. 중건비에는 1547년(명종 2년)에 태어났다고 기록했고, 허준기념사업회에서 세워둔 비문에는 그보다 10년 전인 1537년에 태어났다고 적고 있습니다. 경기도기념물 안내문에는 출생연도를 물음표로 적어 두고 있습니다. 관련 단체와 지자체까지 경쟁적으로 관여해 정작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바른 사실을 알려주는 데는 소홀합니다.

이러한 불성실이 쌓이면서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는 소설과 드라마 속의 일부 허구가 사실로 둔갑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설과 드라마 속의 인물이 묻혀 있는 묘역에 잠시 다녀온 것으로 의미를 두고 사람들은 무심히 왔다가 갑니다.

돌아 나오며 길 가장자리를 따라 철사에 매달려 있는 `지뢰'라는 두 글자를 애써 태연한 척 외면합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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