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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대교 너머의 평화
통일대교 너머의 평화
  • 의사신문
  • 승인 2013.08.2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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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99〉

경의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 2층의 북한상품 전문점. 술과 말린 나물류 외엔 보이지 않는다.
자유로를 달리다 한가한 한강과 그 강을 바라보는 오른쪽 산등성이의 호사스럽게 보이는 집들을 지나면 어느덧 사람 사는 흔적은 논과 밭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막연한 호기심과 불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볼 뿐입니다. 버스는 지금 자유로 끝, 통일대교 앞에 서 있습니다.

다리의 풍경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경비초소 너머로 다리 위에는 묵직한 철제 차단 장치가 삼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한 달 전에 신청을 했지만 민간인 출입통제선을 넘어가기는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탑승자 전원의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야 진입이 허가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이 마지막 절차에 시간이 많이 걸려 예정된 방문지를 다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하니 지금은 다만 별일 없이 통과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마음 졸이며 통일대교를 넘었습니다. 버스는 천천히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가기를 반복하며 그 철제 차단시설을 지나고 있는데 강물은 그저 무심히 흐를 뿐입니다. 건너고 보니 인적은 끊어지고 고요와 평화가 햇빛 아래 졸고 있습니다. 다만 버스의 엔진 소리만이 적막함을 깨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늘 보아온 야트막한 산과 들이지만 이곳에선 낯선 모습으로 지나갑니다.

경의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 이곳을 통해 사람들은 개성공단을 오갑니다. 지금은 적막강산입니다. 다만 `안보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호기심을 보이니 그래도 사람 사는 곳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2층의 북한상품 전문점엔 이런저런 술과 말린 농산품이 진열되어 있으나 매장 불은 꺼져 있고 직원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곧 흥미를 잃고 떠날 준비를 합니다. 건물 앞에서 일행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는데 화단에 심어진 나무가 눈길을 끕니다. 금송입니다. 하필이면 일본 특산종인 이 나무를 이 건물 준공기념으로 심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점심식사를 위해 민통선 내의 마을 중 하나인 해마루촌으로 향했습니다. 자유의 마을, 통일촌마을에 이어 민통선 내에 조성된 민간인 거주지라고 합니다. 2001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는데,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둥글게 조성되어 있는 이 마을의 주거환경은 매력적일 만큼 말끔했습니다. 외지인들이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은 그냥 점심 한 끼를 위한 음식일 뿐 기억에 남을 식사는 아니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와 꼭 찾아가 보아야 할 곳 중의 한 곳이 허준 묘입니다. 비포장 길을 버스가 달리며 흙먼지를 일으킵니다. 창밖은 온통 초록세상입니다. 논과 밭 그리고 산이 있을 뿐 건물다운 건물은 물론 집 한 채 보이지 않습니다. 제법 멀리까지 눈길을 뻗어보아도 그렇습니다. 도시 안에서 강렬한 원색에 지쳐 길들여진 눈이 모처럼 생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인삼밭이 많이 보입니다. 이곳에 경작이 허용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땅을 사들이고 인삼을 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까지 인삼농사를 짓고 나면 밭이 황폐해져 그 밭에 콩을 심는다고 합니다. 이 콩으로 장단콩된장을 만든다고 합니다. 곳곳이 이렇게 인삼밭과 콩밭으로 개발되면서 이곳의 자연환경도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나빠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편안하고 풍성하게만 보입니다. 통일대교를 넘어올 때의 삼엄한 기운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편안하고 평화로운 초록 세상 속에서 버스는 달리고 있습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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