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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경아 제30대 세계여자의사회 회장
[인터뷰]박경아 제30대 세계여자의사회 회장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3.07.19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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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젊은 의사 `글로벌 리더' 발돋움에 기여”

한국여자의사의 위상은 높았다. 지난 2010년 독일 뮨스터에서 열린 `제28차 국제여자의사회 총회 임원선거'에서 전세계 45개국 여의사를 대표하는 새 수장이 `대한민국'에서 나왔다.

그녀는 한국여자의사회 박경아(연세의대 해부학교실) 전 회장이다. 박경아 회장은 단독후보로 출마해 국제여자의사회 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30대 세계여자의사회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는 지난 1987년 주일억 회장의 당선 이후 두번째 세계여자의사회 회장 배출국이 됐다. 26년 만이다.

박경아 회장은 2013년 대한민국에서 개최되는 제29차 세계여자의사회 학술대회 및 총회에서 회장 취임식을 갖고 향후 3년간 회무를 시작하게 된다.

의사신문은 세계여자의사회 박경아 회장의 취임에 앞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세계여자의사회 회장이 되기까지의 업적과 활동 그리고 향후 3년간 계획을 들어봤다.


■열정이 넘치는 코리아의 `박경아'

박경아 회장은 국제여자의사회 임원들에게 `열정이 넘치고 당찬 코리아의 여의사'로 불린다. 그녀가 국제여자의사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보인 모습 때문이다.

1984년 세계여자의사회(MWIA)와 인연을 맺은 박경아 회장은 `젊은 여의사회 포럼'에 발을 들어놓으면서 시작됐다.

그녀는 당시 처음으로 창설한 MWIA 영포럼의 한국 대표로 선출돼 참가자 중 가장 어린 나이로 국제무대에 섰다. 영포럼 대표자의 활동 중 가장 큰 역할은 `기념품 판매'를 통한 의사회 기금을 모으는 것이다.

박 회장은 “당시 경품 뽑기를 100개 받았었다. 우리나라 장사하는 사람들이 판매하는 것처럼 소비자들의 관심을 주목시키고, 세일을 하는 등 열정적으로 판매를 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 가져간 물건을 순식간에 팔아치운 저력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쁘고 고급스런 상품을 저렴하게 사 비싸게 판매함으로써 2∼3배 이상의 수익률을 많이 낼 수 있었다. 당시 캐나다 출신 국제여자의사회 눈에 들게 됐고 회원들 사이에서도 `박경아'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었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한국 사람들의 특성인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이 유럽이나 아프리카 등 타국가 회원들에게 좋은 귀감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3년 후 기금모금위원장에 발탁돼 활동을 했으며 이를 토대로 자연스럽게 세계여자의사회에서의 활동이 본격화 된 것 같다”며 “이후 1992년 재정위원와 2004년 서태지역 여의사회 부회장을 역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번의 `고비'…대한민국 `홍보대사'”

박경아 회장에게 `고민'이 있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여자의사회 회원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였다고 한다.

박 회장은 세계여자의사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에 2007년 회장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회장 선출을 쉽게 생각했던 선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제29대 현 회장(아프리카)과 경합에서 몇 표 차이로 떨어지면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박 회장은 “당시 총회가 아프리카 지역에서 열리다 보니 현 회장의 투표권자가 많았다. 우리나라는 서태평양 소속인데 총회 장소가 멀어 참석률이 낮았다. 아직 내가 할 때가 시기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으로 다음을 기약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박 회장은 세계지도 어디에 붙어있지도 모르는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해 동서분주하게 의사회 임원으로서의 활동을 했다. `박경아'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의술과 의료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돼 `한국'의 위치가 올라온 것도 도움이 됐다.


1984년부터 열정·성실성으로 세계여자의사회에 한국 알려
“45개국인 가입국의 확대와 의료봉사 활동 강화에 총력”


■“근본성실한 모범적인 사람 `인정'

이 뿐만이 아니다. 박 회장은 `모든 일에 열심히'하는 책임감있는 모습이 임원들에게 회장 선출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박 회장은 “세계여자의사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단한번의 지각도, 회의에 불참하는 불성실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서태지역 총회에 기조연설자였다. 당시 다리가 골절돼 기부스를 한 상태였다. 내 몸이 아프고 불편하다고 해서 총회에 빠질 수가 없어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며 “당시 회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아마도 책임감이 철저한 사람이라 인식을 심어 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이런 업적이 쌓여 제 30대 세계여자의사회 회장에 자연스럽게 오른 것 같다고 말하는 박 회장은 후보 등록부터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며 웃었다.


■“전세계 어려운 곳 MWIA가 도울 것”

“빈곤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저개발국에 대한 의료 지원과 봉사를 체계적으로 펼쳐 나가겠다”며 “앞으로 한국 여의사들도 적극적으로 국제구호활동을 확대할 것이다”

박경아 세계여자의사회 회장은 향후 3년간 활동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사업을 크게 3가지로 나눠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회장에 따르면 여의사회를 조직하지 못하거나 국가가 빈곤해 활동에 제약이 있는 회원들을 등록시키는데 총력을 다할 것이다.

박 회장은 “현재 세계여자의사회 가입국은 45개국의 여자의사회와 46개국의 개인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미가입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회비를 내지 못하는 문제 때문이다. 세계여자의사회가 나서 대상 국가들과 상의해 일정부분 지원해 많은 국가의 여의사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기 내 북한 여의사들도 가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저개발국가와 빈민국 국가의 `의료지원 및 의료봉사활동'을 활발히 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1회성 진료로 끝나는 봉사가 아닌 의료취약지인 동남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진료소 개소 및 그 나라 의료진을 한국으로 데려와 교육시켜 보내주는 등의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진행하기 코피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코이카 등과 함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이와함께 UN과 함께 전세계 빈곤국가에서 발생되고 있는 영양실조, 말라리아, 에이즈와 영유아의 백신 지원 등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박경아 회장은 “국제적으로 한국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한국의 젊은 의사들이 세계로 나가 글로벌 리더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하겠다. 3년 후 세계여자의사회 도움이 된, 업적을 많이 남긴, 기억에 남는 회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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