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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주노프〈사계〉작품번호 67
글라주노프〈사계〉작품번호 67
  • 의사신문
  • 승인 2013.06.0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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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22〉

비발디, 하이든, 차이코프스키의 〈사계〉와 같이 봄으로 시작해서 겨울로 끝맺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글라주노프의 〈사계〉는 겨울부터 시작하여 가을로 끝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발레음악 작품은 당시 러시아 황실발레단을 위해 작곡되었는데 초연은 1900년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로 마린스키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호화 케스팅으로 19세의 안나 파블로바 등과 함께 그해 가장 성공작으로 극찬 받는다. 그의 창조적인 선율과 노련한 관현악 기법이 공연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글라주노프의 〈사계〉는 명확하게 정의된 시나리오가 없기 때문에 전통적인 발레음악은 아니다. 회화적인 네 개의 악장 구성과 각각의 악장이 더 세분화되어 이루어져있는 구조는 마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곡 〈사계〉와 유사한 모습이다.

아들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한 글라주노프의 어머니가 자신의 피아노선생인 러시아 국민음악의 선두거장 발라키레프에게 아들을 데리고 가자 그는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작곡을 배우라고 권고한다. 2년 뒤 글라주노프가 작곡한 교향곡 제1번을 발라키레프가 초연하게 되고, 러시아 백만장자 베랴에프 후원으로 그 수정본을 출판하게 된다.

그 후 러시아 민족주의 계승자로 인정받은 글라주노프는 선배들과 함께 작업한 발레음악 〈레이몬다〉의 큰 성공으로 차이코프스키를 잇는 진정한 러시아발레음악의 계승자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1884년에는 바이마르의 리스트를 방문하여 그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 후 바그너, 차이코프스키의 영향도 받게 되면서 그의 작곡양식의 폭은 더 넓고 깊어지게 된다.

189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음악원의 교수가 된 후 1904년 바이올린협주곡 A단조, 마지막 교향곡 제8번을 완성하게 되고 1905년 음악원장으로 취임하게 되면서부터 더 많은 작품을 쓰게 된다. 이후 10여 년간 외로움과 밀려드는 고독감에 1917년 결국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가졌으며, 말년에는 파리에 정착해 1935년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1막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계〉는 짧은 서주 후 흙냄새 물씬 풍기는 러시아 대지의 4계절이 서정적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제1장 겨울. 각각 개별적인 춤곡으로 `서리'와 `얼음', `우박'과 `눈'으로 황폐한 러시아의 겨울을 묘사하고 있다. `서리'는 격렬한 폴로네이즈 양식을 띠고 이어서 비올라와 클라리넷이 `얼음'을 짤막하게 묘사한다. `우박'은 스케르초로 묘사하고 있고 `눈'은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인형〉의 `눈꽃의 왈츠'처럼 우아한 왈츠로 그려진다. 클라리넷으로 묘사되는 두 난쟁이가 불을 밝히자 따스한 봄기운이 추운 겨울을 쫓아내게 되고 하프소리와 함께 산들바람과 새, 꽃들과 함께 봄이 다가온다.

△제2장 봄. 산뜻하고 날카로운 리듬 속에서 장미들에 의해 봄이 시작되고, 감미로운 미풍과 함께 종달새들이 그 뒤를 따른다.

△제3장 여름. 옥수수 밭, 수레국화와 양귀비꽃의 왈츠와 뱃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코다에서 목관악기는 반인반양인 목축의 신 파우누스(Faunus)와 반인반수의 숲의 신인 사티로스(Satyrus)까지 가세해서 옥수수의 정령을 불러내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미풍에 의해 쫓겨나게 된다.

△제4장 가을. 미풍은 점점 세져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진다. 바커스의 춤으로 곡식, 과일과 함께 포도주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데 전 곡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기쁨에 겨운 활기찬 곡이다. 간주곡이 삽입된 두 개의 론도 형식으로 관현악의 현란함과 강약의 대비가 극치를 이룬다. 곧이어 나무로부터 떨어지는 낙엽이 뒹구는 듯한 쓸쓸하고 애잔한 아다지오가 우아하게 다가온다. 마치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뱃노래를 연상케 하는 인상적인 선율이 비단결같이 감미롭고 아름답게 현위로 흐르고 있다. 마침내 음악은 하늘에서 빛나는 성좌를 찬미하며 막을 내린다.

■들을만한 음반: 에른스트 앙세르메(지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Decca, 1966); 네미 에르비(지휘),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Chandos, 1987); 에프게니 스베틀라노프(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 1975)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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