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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페르귄트 모음곡〉제1번 작품 46, 제2번 작품 55
그리그〈페르귄트 모음곡〉제1번 작품 46, 제2번 작품 55
  • 의사신문
  • 승인 2013.05.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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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21〉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 서정적이라 생각한 그리그는 극음악을 처음 의뢰 받았을 때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낳은 위대한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직접 위촉하자 입센의 작품에 멋진 음악을 입히기로 결심하고 이듬해 여름 마침내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키게 된다. 처음엔 피아노이중주 형식으로 출판했다가 뒤에 오케스트라로 편곡했다. 이 극음악은 5곡의 전주곡을 비롯하여 행진곡, 춤곡, 독창곡, 합창곡 등 모두 23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그가 태어난 1834년은 노르웨이가 1536년 덴마크에 병합되어 약 300여 년간의 지배를 받은 후 1814년에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파한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당시 유명한 피아니스트 올레 불의 인정을 받아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유학하였다. 1865년 로마 여행 때 리스트를 만나게 되고, 리스트의 초대로 다시 로마를 방문한 1870년 리스트가 그의 피아노협주곡을 극찬한 이래 평생 교류하게 된다. 귀국 후 오슬로음악원 부원장을 지냈고 오슬로 음악협회를 조직하여 7년간 지휘자로도 활약했다.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종신 연금을 얻은 31세부터 작곡에 전념하는데 〈페르귄트〉를 작곡한 것은 바로 이 시절이었다.

극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몰락한 주인공 페르귄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 오제와 함께 가난한 생활을 한다. 그는 허황된 꿈을 꾸는 몽상가이자 방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돈과 모험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면서 그는 남의 부인을 탐하기도 하고, 험준한 산에서 마왕의 딸과 같이 지내기도 한다. 농부의 딸인 솔베이지를 만나 사랑을 맹세하지만, 그녀를 두고 늙은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자 다시 먼 바다로 떠난다. 아프리카에선 추장의 딸과 사랑을 나누는 등 유랑의 모험을 하던 그는 끝내 몰락한다. 결국 노쇠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오자 고향의 오두막엔 솔베이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발이 된 그는 사랑하던 여인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그는 이 극음악 중 가장 뛰어난 4개의 작품을 뽑아 `제1모음곡'으로 그 후 다시 4곡을 선정하여 `제2모음곡'을 썼다.

제1모음곡: △제1곡 〈아침〉 4막 전주곡으로 조용히 새벽이 밝아오는 모로코해안의 아침을 목가풍으로 한 폭의 그림같이 묘사했다. △제2곡 〈오제의 죽음〉 3막 4장에서 어머니 오제는 돌아온 페르귄트를 맞아 병상에서 아들의 공상 이야기를 들으며 임종을 맞는다. 고독했던 늙은 어머니의 죽음을 느리고 비통하게 그리고 있다. △제3곡 〈아니트라의 춤〉 4막 6장에 나오는 아라비아 추장의 딸 아니트라가 추는 춤곡이다. 매력적이고 산뜻한 작품으로 현악기와 트라이앵글이함께 조화를 이뤄 동양풍의 요염함이 돋보인다. △제4곡 〈산속 마왕의 궁에서〉 2막 6장에 연주되는 행진곡풍의 곡으로 동굴 속 마왕의 부하들이 춤을 추며 마왕의 딸을 페르귄트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 주위를 돌아다닌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폭음이 폭발하면서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린다. 그리그는 이 곡을 “소똥 냄새가 나는 너무도 노르웨이적인 곡이다”라고 평했다.

제2모음곡: △제1곡 〈신부의 약탈과 잉그리드의 탄식〉 2막 전주곡으로 농장의 딸 신부 잉그리드를 약탈하는 주제가 관현악을 통해 격렬하고 야성적인 절규를 한다. 페르귄트는 신부를 약탈해 산으로 가지만, 곧 그 여자에게 권태를 느껴 새로운 꿈을 그리며 도망치게 된다. 처음에는 약탈을 묘사한 음악이 나오지만 나중에는 의지할 데 없는 탄식을 묘사한다. △제2곡 〈아라비아의 춤〉 4막 6장에 나오는 아라비아 추장이 추는 경쾌한 활기를 띤 춤곡으로 마치 예언자처럼 가장하고 춤을 구경하면서 동양의 이국적인 매력에 빠진 페르귄트의 심리를 묘사했다. 아라비아의 소녀들은 “예언자가 나타났으니 플루트와 탬버린이여, 기뻐 소리를 외쳐라”며 합창하며 춤을 춘다. △제3곡 〈페르귄트의 귀향〉 5막 1장에 나오는 폭풍 치는 해안의 저녁이다. 페르귄트는 미국 금광에서 많은 돈을 벌었으나 귀국 길에 폭풍을 만나 배가 부딪혀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만다. △제4곡 〈솔베이지의 노래〉 4막에서 페르귄트의 귀향을 애타게 기다리는 솔베이지의 심정을 노래한다.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아! 그대는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느님,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기다림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 널 찾아가노라.'

■들을만한 음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71); 오이벤 피엘스타(지휘),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Decca, 1958); 에사 페카 살로넨(지휘),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Sony CBS, 1987); 네르미 예르비(지휘), 예테보리 심포니오케스트라(DG, 1987)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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