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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서경석 서울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인터뷰]서경석 서울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 김기원 기자
  • 승인 2013.05.07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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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간이식 가르쳐준 일본 의사들이 이젠 배우러와 '격세지감' 느껴"

서경석 주임교수
1988년3월 서울대병원 외과 김수태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14세 여아 환자에게 간이식을 성공적으로 시행한지 25년이 지났다.

이후 우리나라의 간이식 수술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급성장했으며 현재 세계 간이식을 선도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이식의 아버지’로 불리던 김수태 교수에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서경석 서울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겸 서울대병원 외과과장이 우리나라 '간이식 수술의 1인자'로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서경석 주임교수를 만나 ‘간이식 현황과 전망’ 그리고 ‘향후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간이식 성공 25주년의 의미라면?
“간이식은 미국에서 1963년 첫 번째로 실시됐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올해가 50주년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도에 실시, 25년이 됐다.
장기이식을 잘하면 오래 살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김수태 선생님도 정년하신 지(1995년) 오래돼 5년 뒤인 30주년에 앞서 지난 3월15일 ‘국내 간이식 성공 25주년 기념식 및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됐다.”

-간이식 초창기 국내 간이식 상황은 어땠나?
“그때만 해도 뇌사자의 간을 받아서 해야 하는 등 간이식은 법적으로 해결이 안된 시절이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하지말라고 제지했다. 그러나 김수태 선생님 등은 그런 어려움을 딛고 감행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느 누구도 김수태 선생님을 고소하지 않아 별다른 문제없이 간이식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특히 간이식 초창기에는 B형 간염이 큰 문제였다. 그래서 B형간염이 아닌 애들만 했다. 성적도 안좋았다. 1년에 4-5개 하면 잘했다. 이 와중에 첫 번째 간이식 환자가 장기생존하고 있는 것은 김수태 선생님의 뛰어난 의술과 철저한 준비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수술상황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김수태 선생님 시절에는 '사느냐 죽느냐'가 관건이었다. 즉, 생사가 반반이었다. 수술 테이블에서 하도 피가 나 수혈하다가 피 부족으로 환자가 죽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요새는 그렇게 하면 큰일난다. 오늘도 수혈 한 파인트 없이 수술했다. 20~30%는 수혈안하고 간 이식을 한다. 굉장한 진전이다.”

-그후 간이식 발전과정은?
“1999년부터 생체 간이식이 급속히 늘었다. 최근에는 외국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성적이 굉장히 좋아졌다. 미국이 간이식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인데 최근에는 미국의사들도 와서 배우고 간다. 지금도 캐나다와 에콰도르 의사가 한국에 와 있다. 내 메일에는 한국에 배우러 오겠다는 각국의 의사들이 너무 많다. 모두 다 오게는 할 수 없다. 이를 감안해 작년에는 대만과 중국 등 아시아권 의사들을 대상으로 라이브 심포지엄을 두 번 개최, 큰 호응속에 마쳤다.

내 자신을 비롯한 우리나라 의사들 대부분은 생체 간이식을 일본에서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일본 스탭들이 배우러 와 1년 정도 머물면서 배워간다. 격세지감이다.”

-국내 병원별로 간이식은 상황은 어떤가?
“케이스는 병원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병원 규모가 워낙 크고 환자들이 많아 제일 많은 300개 넘게 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해 180개 정도 했다. 국내에서 간이식 초반에는 병원들이 수자로 경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우리병원 정도로 하는 병원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일본이나 대만사람들은 우리 병원에서 3명이 간이식을 전담하고 있다고 말하면 놀란다.“

-서 주임교수님의 일상은 어떤가?
“일주일에 3번 수술한다. 하루는 외래이며 수요일은 리서치 데이다. 오늘처럼 복강경을 쓴 날이면 정신이 없고 신경이 많이 쓰여 예민해 진다. 공여자는 뭐하나 잘못 건드리면 큰 일 나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 혼자서 800개를 하면서 수술 중에 피가 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말하면 믿지 않았다. 논문을 쓰면 거짓말 하지 말라며 퇴짜 놓은 적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적으로 믿는다.”

-간이식 선도병원으로서 향후 서울대병원의 계획이라면?
“표준화다. 예전에는 생체간이식은 아트라고 생각했다. 아트는 누구만 할 수 있고 누구는 할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제 그것을 프랙티스로 바꾸어야한다. 어느 정도 트레인닝 받고 원칙만 지키면 즉, 1~2년 트레이닝 열심히 하면 그만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의 표준화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표준화가 되면 루틴 프랙티스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단기간에 되는 것이 목표다. 방법 등을 단순화시키고 절제 테크닉을 정확히 하는 것 말이다. 100% 무수혈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잘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장처럼 되게 말이다. 수술이란 것도 딱 분업으로 해서 조립돼서 나오게 루틴화가 되야 한다. 너무 어렵거나 하는 것은 수술에 있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또 그런 수술은 오래가지도 못한다.

제일 문제는 공여자가 큰 상처가 나고 데미지가 크다는 점이다. 복강경 아니면 세밀한 로봇수술로 공여자가 고통없이 아주 일부를 떼서 주어도 거의 표시가 안나는 것. 왼쪽 간의 일부만 떼서 주는 것 등 이런 것이 중장기적인 목표다. 지금 복강경 담낭절제술 처럼 공여자는 바로 회복해서 2-3일이면 아프지 않게 활동하도록 말이다. 아마 빠르면, 방향이 맞는다면 10년 안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내에서 간이식은 주로 어느 병원에서 하고 있나?
“큰 병원은 물론 작은 병원들까지 간이식을 다하고 있다. 간이식에서 중요한 것은, 간이식 환자들의 상태가 다 나빠 신장과 콩팥 등 수술만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마취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문제가 생길 때 내과의 서포트가 중요하다. 옛날에는 수술을 혼자했지만 분야별로 깊숙이 들어감에 따라 지금은 분야별로 서포트하고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간이식후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 때문에 차이가 난다. 70~80%는 대부분 괜찮지만 10%라도 더 살 수 있게 생존율을 올리는게 중요하다. 문제를 하나하나씩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미국에서는 생체 간이식을 못한다. 간이식을 했던 사람일지라도 생체간이식을 하려면 적어도 10개 이상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배우러 온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기준이 좀 있어야 할 것 같다.“

-간이식 환자가 생존한지 25년 됐다. 이 환자의 계속 생존이 가능한가?
“간은 다른 이유가 없는한 괜찮다고 본다. 즉, 문제 없다는 생각이다.“

-최근 간이식 문제점과 향후 연구계획은?
“요즘 B형 간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간세포암 환자를 고르느다. 예전에는 너무 겁을 내서 조금만 했다. 물론 성적은 좋았다. 이런 것들을 임상적으로 스터디하고 있다.

공여하겠다고 온 건강한 사람 중에 30%가 지방간이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지방간이 많은데 전세계적으로 문제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지방간 때문에 간이 나빠지는게 간이식에 있어 문제가 될 것이다. 미국은 넘버원 인디케이션이 5년안에 지방간이 될 것이다.”

서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초창기 미국에서 간이식을 배울 때의 서러움을 들려주었다.
“미국 피츠버그에 가서 서러움 속에 간이식을 배웠다. 당시 연수는 한번 보면 그만이었다. 카메라도 없던 상태여서 일단 숙소로 내려오면 다시 못 올라 갔다. 그래서 12시간 동안 안내려오고 수술장에서 머문적도 있었다. 그때는 밤도 새워야 되고 참 서러웠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그러나 “외과의사들 중에는 성취감으로 인해 그런 고생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며 “아직은 외과의사를 그런 사람들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못한다. 고생하겠다고 작정한 사람만이 할 수가 있다.”며 '외사의사'로서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김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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