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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홍매화를 찾아 나서다 (1)
선암사 홍매화를 찾아 나서다 (1)
  • 의사신문
  • 승인 2013.05.0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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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92〉

선암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승선교와 강선루. 아치를 이룬 돌의 크기와 모양이 다 다른데도 절묘하게 서로를 떠받치고 의지하며 버티고 서서 찾아오는 이들을 위로한다.
굳이 어딜 가지 않아도 때가 되면 눈길 가는 곳마다 꽃은 피는데 그 기다림마저 지루해 사람들은 꽃을 찾아 나섭니다. 아직 겨울이 그대로인데 어느 산 양지쪽에서는 눈을 녹이며 노란 복수초가 피었다 하고, 양지바른 돌담 너머로 기품 넘치는 매화가 꽃잎을 열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내 남쪽에서 동백꽃이 뚝뚝 진다는 말이 들리면 아직 오지 않은 봄이 벌써 가버린 듯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매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매실을 따기 위해 산비탈 가득 심어진 나무마다 눈 내린 듯 화들짝 피어난 그런 매화가 아니라, 하얀 자태에 은은한 향을 풍기며 세속의 때가 없는 매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이미 사월이 시작되고 있으니 올해는 늦었다 생각하며 이리저리 알아보니 승주 선암사의 홍매화가 곧 핀다합니다. 서울서 승주까지 부지런히 달려도 그럭저럭 4시간은 더 걸리니 선뜻 나서지지 않았습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리 저리 갈아타며 거기까지 가자면 차 기다리며 길에서 사라지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길 떠나면 기다림도 여행의 과정인데 아스팔트 위에서 살면서 이래저래 마음이 많이 조급해졌습니다.

결국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여행길이 마음에 들면 순천과 강진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로 마음먹고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의 휴가를 냈습니다. 가는 길 안내까지 내비게이션에 맡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이정도 호사는 누릴 자격이 있다고 교만도 떨어봅니다. 토요일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뒤라 일요일 고속도로는 한산했습니다.

호남고속도로 승주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선암사까지는 잠깐입니다. 아침 햇살의 온기가 퍼질 무렵 선암사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서 있습니다. 선암사 홍매화 축제기간이라고 하더니 일찍부터 사람들이 몰려온 모양입니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하니 주차료가 선불이랍니다. 지갑 찾아서 주차료 내고 거스름돈 받고 하느라 시간이 걸립니다. 사람들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내 잘못도 아닌데 공연히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선암사를 향해 걸으면서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 길을 따라 선암사를 지나 조계산을 넘으면 그 너머엔 송광사가 있습니다. 유쾌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산을 넘어도 좋을 듯합니다.

길가의 작은 꽃과 시냇물 건너 저쪽에 핀 진달래가 새삼스럽습니다. 집을 떠나면 눈에 들어오는 풀과 꽃과 돌이 다 달리보입니다. 사리탑과 부도는 어느 절에 가든 늘 보던 모습인데 문득 작달막한 장승이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 무섭지?' 하는 표정입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짐짓 무서운 척하는 이웃집 할아버지입니다. 빙긋 마주보고 웃고 보니 이미 저 아래 세상일은 다 잊었습니다.

선암사에 아름답게 피었다는 홍매화는 언제 볼 심산인지 걸음이 마냥 늦어집니다. 그리고 시내를 가로 질러 돌로 쌓은 무지개다리 앞에서 딱 멈추어 섰습니다. 아직 풀과 나무의 푸른 기운이 없어 돌투성이 시내 위의 다리가 삭막할 법도 한데 편안하고 따뜻합니다. 사람들이 다리 아래에서 보이는 정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여기 다녀간 사람들 모두 한 번쯤은 찍고 가는 곳이니 조심스럽게 바위를 딛고 내려섰습니다. 승선교에서 강선루를 바라봅니다. 조심조심 신선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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