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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이 없으면 털이 붙어 있으랴 - 장중경
살갗이 없으면 털이 붙어 있으랴 - 장중경
  • 의사신문
  • 승인 2013.04.2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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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의학지식을 널리 알려야 많은 환자 살려”

동상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물만두를 만든 의사 - 장중경(張仲景)

윤아, 군만두 먹을래. 물만두 먹을래. 아빠가 오늘 늦게 오신대.

“물만두 먹을게요.”

에이∼, 엄마는 군만두를 좋아하는데….

만두는 원래 중국의 동북쪽 지방에서 즐겨먹던 커다란 빵이란다. 보통 밀가루 반죽을 그냥 쪄서 반찬과 함께 먹었지. 그 지방에서 일어난 청나라에선 만두가 황제의 제사상에도 빠지면 안 되는 중요한 음식이었대. 글쎄다, 옛날 고구려를 비롯해 같은 지역에 살던 우리 민족도 아마도 그런 빵을 즐겨 먹지 않았을까?

그런데 만두가 중국의 남쪽으로 전해지면서 조금씩 바뀌었대. 점차 크기가 줄어들고 속에 뭔가 넣어 지금처럼 먹게 되었는데, 제갈공명이 풍랑을 잦게 하려고 통만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오는 거야.

윤아, 통만두도 나왔으니 오늘은 물만두를 만든 의사 이야기를 해줄게.

그러니까 때는 2세기 무렵, 제갈공명이 등장하는 중국의 삼국시대였어. 그땐 웬만큼 힘이 있으면 너도나도 나라를 위한다며 들고 일어나 싸우기 바빴어. 잦은 전쟁에 여기저기로 떠도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전염병마저 돌아 난리였어. 게다가 얼마나 추웠던지 알아?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고, 강물이 얼어 천렵조차 어려웠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해 동안 가물더니 억수가 내려 벼이삭이 잠기고, 메뚜기 무리가 덮쳐 남은 알곡마저 갉아먹었대. 참 어려운 때였으나 아무도 가난한 사람들을 챙겨주지 않아 들판에 굶어 죽은 시체로 산을 이뤘어.

“어떡하면 불쌍한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그 의사는 고향으로 돌아와 겨릅대처럼 마른데다 귀가 얼어 없어진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놀랐어.

“그래서 어떡했어요?”

우리 윤이가 궁금한가 보다.

그는 동네 한 가운데 큰 가마를 내걸었어. 거기에 양고기에다 약초를 넣어 끓인 다음, 밀가루로 귀 모양으로 빚어 건더기를 소로 넣어 만두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지.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만든 물만두를 먹자 몸이 후끈해지고 얼은 귀가 감쪽같이 풀려 추운 겨울을 아무 탈 없이 날 수 있게 됐다고 해.

“그 의사가 누구예요?”

윤아, 화타라는 의사는 알지?

화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의사 장중경이야.

장중경은 의사들 사이에선 화타보다 더 유명해. 그는 자신의 처방을 책으로 엮어 널리 알렸는데, 자신보다 아픈 사람을 위하고, 돈벌이보다 병을 낫게 하는데 힘써 `의학의 성인'이라고 불린단다.

장중경은 황허 강 아래에 있는 동네에서 태어났단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대. 하루 종일 책을 크게 읽는 통에 누구나 장중경의 집이 어딘 줄 소리만 듣고 알았대.

“앞으로 우리 아들은 큰 벼슬을 할 거야!”

아버지는 아들이 글을 읽을 때마다 좋아서 자랑했대요.

그런데 책을 많이 읽은 게 탈이었어. 열 살이 되어 사마천이 지은 사기라는 책을 읽더니만 엉뚱한 말을 하잖아.

“편작이나 창공처럼 멋있는 의사가 될래요.”

아버지는 꼬마를 으르고 달랬으나 끝내 고집을 꺾지 못했어.

“의사가 되겠다는데, 왜요?”

그때는 말이다. 어수선한 때다 보니 의사들도 치료는 둘째 치고 가짜 약을 팔아 돈을 벌려고 안달하였고, 덩달아 무당까지 병을 치료하겠다고 나섰지 뭐야.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라면 좋게 보지 않았고, 의학을 배우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여겼던 거야.

아버지는 고민하다 열여섯 살이 된 중경을 데리고 이름난 어른을 찾아갔어. 아마도 그 어른이 아들을 말려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른은 어린 꼬마와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더니 말했어.

“넌 똑똑하고 예민하니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어른마저 의사를 시키라고 하니 아버지도 더 이상 막지 못었어.

중경은 이제 마음 놓고 책을 구해 공부했으나 스무 살이 되자 회의에 빠졌어.

“아니, 편작도, 창공도 스승에게 배웠잖아. 나는 왜 혼자 공부하고 있지?”

그는 자신을 가르쳐 줄 스승을 원했으나 찾지 못하자 사람들에게 누가 가장 훌륭한 의사인지 물어보았어.

“단연 우리 마을에선 장백조지. 그냥 약을 주지 않고 자세히 진찰부터 하잖아.”

중경은 그 의사를 찾아갔어.

장백조도 게으르지 않고 겸손한 중경을 가르치니 쉬지 않고 공부해 신이 났다고 해. 그도 하나하나 깨우칠 때마다 신바람이 나 어쩔 줄 몰랐어.

“야, 이런 어려운 병도 술술 낫는구나! 의사가 되길 정말 잘했어.”

중경은 심한 병을 가진 사람들이 스승의 손이 닿으면 쉽사리 낫는 것을 보곤 꼭 스승 같은 훌륭한 의사가 되고자 맹세했대.

그러던 어느 날 말이야. 스승이 그를 불렀어.

“이제 직접 아픈 사람을 치료해도 돼.”

스승은 실수하지 않도록 반복해서 연습시키곤 그가 직접 아픈 사람을 치료하게 배려했어. 드디어 젊은 장중경은 고향에서부터 유명한 의사라고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지.

그러나 그는 공부할수록 더 깊이 알고 싶어졌어. 그래서 양려공이라는 스승을 찾아가 궁금했던 것을 일일이 묻고 배웠어. 그런데 멀리 양양이란 곳에 등에 난 부스럼을 잘 치료한다고 소문난 명의가 있다 하잖아.

너무 손놀림이 재빨라 사람들이 그 의사를 왕 신선(神仙)이라고 불렀어.

“우와∼, 우리 아빠도 신선이면 좋겠다!”

얘는∼, 지금도 아빠가 얼마나 엉뚱한데….

장중경은 이 소문을 듣자마자 봇짐 하나만 메고 몇 백리를 산 넘고 물 건너 달려가 왕 의사에게 넓죽 절했어.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반응은 좋지 않았어.

“이름을 나도 들을 정도로 유명한 의사인데, 왜 나에게 배우려 하오?”

당시 의사들은 서로 견제하면서 나쁘게 말하고, 진료하는 방법을 다른 의사에게 절대 가르쳐주지 않았어. 더욱이 아름이 알려진 의사가 찾아오자 왕 의사는 더욱 의심하게 된 거야.

“제가 수술에 서툴러 스승님께 배우고 싶습니다. 수술 방법을 배워 이익을 찾지 않고 아픈 사람을 돌보겠습니다.”

그 의사는 장중경이 유명한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자 누그러졌어.

장중경은 내과와 외과를 모두 깨우치고도 겸손했어.

“요즘 선비들은 의술을 공부하지 않는다. 위로는 임금과 부모의 병을 고치고, 아래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을 닦아주고, 중간으로는 스스로의 몸을 보살피려고 하지 않는다. 돈이랑 권력을 좋아하여 힘센 사람이라면 아부하고, 헛된 이름으로 돈을 벌려고만 한다. 겉치레에만 힘쓰고 스스로 가꾸지 않으니, 살갗이 없으면 어찌 털이 붙어 있으랴?”

“정말 멋쟁이예요.”

그렇지? 그런 장중경이 잠시 추천으로 뽑혀 관리로 나선 적이 있었지. 그때도 한 달에 두 번씩 종일 의사로서 진료했는데, 그날이면 아픈 사람들이 줄을 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해. 그러나 역시 의사 체질이었어. 곧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아픈 사람을 돌보았지. 물만두를 만든 것이 바로 그때야.

고향에는 호된 추위와 함께 전염병이 휩쓸어 열 집 가운데 아홉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었어. 장중경의 집안도 비껴갈 수 없었어. 이백 명이 넘는 가족도 십년 동안 무려 백삼십삼 명이나 죽었다고 해.

몇 년 후 봄날 고향에서 가까운 큰 도시에 다시 전염병이 돌았어. 죽은 사람들로 우는 소리가 넘쳐났고 그를 찾는 아픈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어.

어느 날 멀리서 부자 한 사람이 찾아왔어. 그를 만나선 아들이 아프니 자기 집에 꼭 들러달라는 것이야. 장중경은 할 수 없이 천리를 걸어 도착하니 아들은 온몸에 두드러기가 퍼져있고, 몸이 불덩이였어.

“처방을 적어 드릴 테니 그대로 하세요. 아픈 사람들이 기다려 가야 해요.”

부자는 갈대 뿌리를 비롯한 너무 간단한 처방이어서 조금 실망했지만, 그대로 약을 지어 아들에게 먹였어. 그런데 어쩐 일이야. 놀랍게도 아들이 이틀이나 사흘이 지나자 정신이 돌아오고 밥을 먹을 수 있었어.

보름 후 아들은 완전히 낫자 부자는 너무 기뻐 그를 초대하여 잔치를 크게 열었어. 하지만 장중경은 떠들며 잔치를 즐길 여유가 없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일어서려고 하자 부자는 치료비를 듬뿍 내밀었어.

“의사가 아픈 사람을 살린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신 부탁을 들어주세요.”

부자는 치료비를 거절하는 장중경이 뭐라고 부탁할지 궁금했어.

“지금 아드님이 앓았던 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있어요. 제가 드린 처방을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거리에 붙여주세요.”

부자는 부탁대로 아들이 어떻게 아팠는지, 어느 의사가 처방했는지, 어떻게 달여서 어떻게 먹였는지 아주 자세히 적어 거리에 내걸었어. 그래서 비슷한 병을 앓던 사람들이 똑같이 치료하여 그 동네에 전염병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짱이예요!!”

어느 날 장중경은 한 나라의 서울에서 자신을 의사의 길을 가게 해준 어른을 다시 만났어. 그때 그는 최고의 의사로 이름이 세상에 자자했어. 어른은 옛날 기억이 떠올라 그를 안으며 감정이 북받쳐 말했대.

“장중경의 의술은 장백조의 의술보다 뛰어나다. 귀신도 알지 못하는 병을 척척 알아내니 하느님의 경지에 이른 의사가 아니겠는가?”

장중경은 새로이 약을 개발해 다른 의사들에게 알려주었어. 많은 의사들이 그의 처방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 `편작이나 창공일지라도 장중경보다 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들었어.

그는 일찌감치 지식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가르쳤어. 그는 가르칠 때 언제나 이런 말로 시작했대.

“아픈 사람의 증상대로 세심히 진단하지 않으면 작은 대롱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사람을 살리는 눈을 갖추기란 정말 어려워.”

그는 두도와 위신이라는 뛰어난 제자와 함께 의학지식을 모두 정리한 책을 펴내게 되었어.

그는 병이 어느 정도까지 들어갔는지에 따라 태양, 소양, 태음, 소음 등 여섯 가지로 구분해 각각 다르게 치료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어. 증상을 보고 병을 알아내는 진단법도 여덟 가지, 치료법도 또 여덟 가지로 나누었어.

이 책을 읽은 의사 화타도 내용이 너무 정확해 깜짝 놀랐다는구나.

지금도 중국에는 이런 민요가 있대.

“동짓날 물만두 먹지 않으면 귀가 얼어 떨어져도 탓할 수 없네.”

윤아, 우리도 장중경을 생각하며 어서 물만두나 먹자.

*효렴(孝廉)

중국 한 나라 무제가 학자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만든 관리를 채용하는 제도로 효행과 품행이 뛰어난 사람을 추천받아 관리로 임명하였다. 무제는 해마다 효자와 청렴한 사람을 20만 명에 한 사람씩 지방에서 추천하도록 하였는데, 주로 유교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 뽑혔다. 효렴에 천거된 사람은 중앙에 파견된 후 바로 관직에 임명되지 않고, 궁궐에서 숙직을 하며 실무를 익힌 다음, 현령 등에 임명되거나 조정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후한 말기에는 선발 과정의 공정성이 사라져서 좋은 집안의 자제가 관리가 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조조 , 화타 등도 모두 효렴으로 선발된 관리다.

김응수 <한전병원 흉부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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