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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 E단조 작품번호 64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 E단조 작품번호 64
  • 의사신문
  • 승인 2013.04.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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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15〉

1888년 작곡가에 의해 이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평론가와 일반 청중들의 반응은 엇갈려 평론가는 비판적이었으나 청중들은 큰 갈채를 보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6개 교향곡 중 가장 변화가 많고 가장 열정적인 곡으로 순수 음악형식을 취하면서도 표제악적인 요소가 짙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고뇌하여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인간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치는 운명의 마수이어서 듣는 사람에게 처참한 느낌을 던져준다. 극도의 우수에 찬 감정과 광분적인 정열사이의 갈등, 또는 회의와 낙관사이의 갈등은 차이코프스키의 본성이었다.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온 패배의식뿐만 아니라 불같은 열정의 분출은 그의 창작열에 불씨를 당겼다. 차이코프스키의 독특한 특성인 선율의 어두운 아름다움과 구성의 교묘함, 그리고 관현악의 현란한 표현 등이 이 곡의 가치를 도드라지게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민족주의적인 면모 뿐 아니라 독일 낭만주의 전통도 따르고 있는 작곡가이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에서 광활하고 화려한 슬라브적인 정서를 분명히 느낄 수 있지만 무소륵스키나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의 음악만큼은 아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다른 러시아 작곡가와 달리 독일 낭만주의를 공부하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서유럽 낭만주의를 따르는 음악을 썼다. 그는 독일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러시아의 정서를 표현했던 것이다.

그의 음악은 `센티멘털리즘'으로 특징지어지며, 사람들은 그를 `고독과 우수의 작곡가'라 부른다. 그는 결코 밝은 성격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동성연애자였다. 그 사실을 평생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결혼했으나 결혼 2주 만에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모스크바의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었으나 미수에 그친다. 아내에 대한 동정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혐오감, 그리고 삶에 대한 절망이 그를 심한 신경 쇠약으로 몰았다. 결국 그는 아내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게 된다.

이 곡을 쓸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작곡가로서 최고의 정점에 있었다. 전 유럽에서도 인기가 좋아 자주 해외여행을 하였고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재발하는 우울증으로 괴로워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찾은 것은 폰 메크 부인이었으며, 그녀에게 열렬히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녀가 건강이 나빠져 요양을 위해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의 니스로 갔을 때 그는 너무 힘들어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의 글씨를 그리워했는지 아십니까?” 이때 작곡된 곡이 바로 교향곡 제5번이다. 그녀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애증과 미련과 갈망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이 교향곡은
내적으로 침잠하는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걸작으로 이 곡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으로 대단하며 어두운 색채가 주는 질감은 부드럽고 그 직조는 탄탄하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선율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세련되기 그지없다. 차이코프스키만큼 인간의 슬픔을 그토록 처절하게 그린 작곡가도 흔치 않을 것이다.

△제1악장 Andante - Allegro con anima 첫 부분에서 클라리넷에 의해 제시되는 이 주제가 적절하게 반복되면서 폴란드 민요풍의 아름답고 밝은 주제가 주를 이룬다. △제2악장 Andante cantabille, con alcuna licenza - Moderato con anima -Andante mosso - Allegro non troppo - Tempo I 느린 템포의 자유로운 형식으로 곡 전체의 주요 동기가 웅장하게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제3악장 Valse. Allegro moderato 발레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느끼게 하는 환상적인 분위기의 왈츠로 관현악이 연주하는 왈츠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이다. △제4악장 Finale. Andante maetoso - Allegro vivace - Molto vivace -Moderato assai e molto maestoso - Presto 다시 제1악장의 주요 동기가 장엄하게 나타난다. 저음부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공포감을 자아내면서 팀파니의 연타는 더욱더 장엄하고 또한 격렬한 감정을 표출한다. 사랑스러운 느낌의 제2주제와 조화를 이루면서 늠름하고 빠른 행진은 승리에 찬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들을만한 음반: 에프게니 므라빈스키(지휘), 레닌그라드 필[DG, 1960]; 에프게니 스베틀라노프(지휘), USSR 국립교향악단[Canyon, 1985]; 발레리 게르기예프(지휘), 빈 필[Philips, 1995];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DG, 1975]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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