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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 크로마 그리고 매니아
피아트 크로마 그리고 매니아
  • 의사신문
  • 승인 2009.06.0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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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카 매니아들의 기쁨 '이베이와 클리어런스 세일'

필자의 친구중에 `피아트 크로마'를 모는 친구가 있다. 요즘 이 친구의 부탁으로 피아트 크로마 부속을 열심히 영국 이베이에서 열심히 사모으고 있다. 요즘 영국은 많은 유러피안 카샵들이 창고 정리 모드에 돌입했다. 불경기 탓도 있고 어느 시점이 되면 돈도 안되는 것들을 모두 정리하기 때문이다. 정리모드 덕분에 NOS(New Old Stock)이라는 것들을 많이 구경하게 되었다.

NOS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악성재고다. 물건이 팔리지 않고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New라는 말은 신품상태라는 뜻이고 Old는 오래됐다는 뜻이다. 20년에서 10년 동안 이 파츠들은 박스에 쌓인 비닐봉지에서 잠자고 있다가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오래되긴 했지만 신품은 분명하다. 이들은 잘 망가지지 않는 소모품인 경우가 많다. 부품을 필요로 하는 차들은 많이 없어져서 특별한 수요도 없다.

차들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새로 구매하는 덕분에 몇 대의 노후차량이나 특별한 애정을 갖는 매니아들이 없는 한 차나 부품은 소용이 없다. 정리모드 세일에는 더 오래된 피아트 124나 알파로메오의 차들도 있다. 124 같으면 40년을 가볍게 올라가는 노후 차량이다. 메이커들이 이 부품을 만들지 않은지는 상당히 오래 되었을 것이고 부품 유통회사의 창고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떤 차종은 부속이 나오는 즉시 경매가가 치솟는다. 크로마는 그런 면에서는 정말 다행이다. 아무도 비딩하지 않는다.

필자가 대행해서 사모으는 부속들은 주인을 빨리 만나지 않으면 아마도 폐품 처리될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사용되지 않고 없어지는 파츠는 의외로 많다. 제품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이 증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파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니아들이다. 결국 나중에 수입을 하려고 해도 없는 놈들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차는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부품을 터는 기간이 클리어런스 세일 기간이다. 그래서 열심히 검색하며 수입을 하고 있다. 덕분에 가격은 운송비를 제외하면 놀랍게 싸다. 100파운드 정도의(업체에서 수입을 하면 40만원 정도 한다) 브레이크 실린더는 10파운드 정도에 팔린다. 이렇게 싼 이유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차들도 가끔씩 깜짝 세일을 한다. 얼마전 에스페로와 르망은 거의 클리어런스 상태로 돌입했었다. 지금은 파츠를 구하려면 전산망으로 조회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검색하다보면 크로마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차들의 이름도 있어 복잡한 피아트의 차들을 더 알게된다. 차의 계보는 미로에 가깝다. 피아트는 100년 정도 차를 생산했기 때문에 차의 계보는 복잡하며 란치아와 알파로메오를 포함하면 심각하게 혼란스러울 정도다. 그 중에는 친퀘텐토(피아트 500이라는 소형차다) 같이 50년 이상의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는 것들도 있다.

피아트는 이번에 크라이슬러의 구제에 참여한다고 알려진 회사이고 회사의 규모에 비래 국내에는 덜 알려져 있다. 잠시 수입하다 딜러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손을 들고 말았다. 복잡한 계보의 차들 중 일부만 타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많이 시승해 본 편에 속한다. 란치아의 테마, 카파, 데드라 피아트의 124, 132, 쿠페, 판다 그리고 알파로메오의 차들 몇 대 정도를 타보았다.(사실 국내에 들어온 차들 중 2∼3 종류를 제외하면 모두 시승해 본 셈이다)

친구의 크로마는 20년 정도 됐다. 꽤 오래됐지만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워낙 이 차를 좋아해서 혹시 파츠를 못 구할 까봐 폐차되는 차들을 2∼3대 정도 분해해서 파츠를 보관하고 있다.(부품이 아니라 차를 절단한 부분도 있다) 여유가 없는 편이 아닌데도 포르세나 마세라티가 아니고 피아트라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차들은 언제나 따로 있다. 크로마를 모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예전 이태리차의 느낌은 분명히 따로 존재한다. 다른 차종을 몰아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사실은 유명한 매니아이고 차를 정비하는 리프터도 갖고 있다. 부품은 따로 개인 창고에 보관한다. 이 정도면 상당한 사치다.

이 친구와 필자와의 공통적인 드림카는 `란치아 델타 인테그랄레'였다. 거대한 프라이드를 생각하면 될 이 차종 역시 피아트의 계열사 제품이다. 랠리의 전설이던 차인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았다. 수입이 되었다면 무슨 수를 쓰던 한 대씩 애지중지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크로마는 타입 4라는 공동개발 차체의 산물이었다. 유럽 회사들이 개발비 절약을 목표로 Saab 9000, Fiat Croma, Lancia Thema Alfa Romeo 164 같은 차종을 공동 개발했다. 사브 9000 같이 흔한 차들의 문짝과 유리는 모두 크로마에 맞는다. 하지만 나머지 부품은 호환성이 없다. 덕분에 차의 느낌은 모두 다르다. 사브 9000과 크로마를 모는 느낌은 모두 다르다. 150마력 밖에 안 되는 차지만 미친 듯이 나가는 느낌, 실제의 마력수 보다 훨씬 빠른 느낌, 자유로운 차의 운동성과 밸런스 그리고 자신이 젊은 날 몰던 차의 기억이 차안에서 함께 움직인다.(1990년부터 몰았으니 젊은 날이 아주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얼마 전 한 영화관계자가 반대로 자신의 기억을 털어 내기 위해 소장하던 차를 이 친구에게 그냥 선물했다.

크로마는 외국에서도 동호회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차종이지만 친구에게는 중요한 무엇이다. 필자 역시 mi16을 열심히 타고 있다. 만약 앞으로 20년 동안 더 타면 차들은 워낭소리에 나오는 소처럼 40년 가까이 되는 노후 차량이 된다. 더 운영하고 싶으면 결정적인 소모품들을 모아 놓아야 한다.(메이커도 이제는 재고를 거리낌없이 줄여 나가고 있다)

요즘은 이베이라고 하는 신기한 상거래 시스템으로 많은 것들이 가능해졌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시간과 용돈 정도다. 그러다 보니 몇 개를 제외하면 소모성 파츠는 거의 다 구했다. 그런데 정작 이 정도로 열심히 구할 만큼 차라는 것이 절실한 것은 아니다. 그냥 좋아할 뿐이다. 사실 더 재미있게 놀려면 요즘 차들 중 매니아급 차들을 고르는 편이 편하다. 일본차들도 재미있는 차종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다른 중요한 일들을 위한 시간과 즐기는 시간 사이의 절묘한 틈바구니 사이의 경계면에서 지내는 동안 시간은 많은 것들을 싣고 빠르게 지나간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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