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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리〈바이올린과 비올로네,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작품 5 〈라 폴리아〉
코렐리〈바이올린과 비올로네,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작품 5 〈라 폴리아〉
  • 의사신문
  • 승인 2013.01.0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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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202〉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는 17세기 프랑스음악가 생트 콜롱브와 마렝 마레에 관한 영화로서 속세와 절연하고 자연 속에 은거하는 콜롱브에게 마렝 마레가 사사를 받게 되면서 `예술'과 `인간' 그리고 `사랑'이 아름다운 음악과 짜임새 넘치는 영상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렘브란트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영화다. 마렝 마레가 콜롱브를 찾아가 오디션을 받는 장면에서 `비올'이라는 고악기로 연주하는 진주처럼 맑고 영롱한 테마가 짤막하게 등장한다. 바로 〈라 폴리아〉이다. `라 폴리아'는 `광란'이란 뜻의 이베리아반도의 민속 춤곡으로 중세시대부터 무려 300여년이상 유행하여 타르티니, 마랭 마레, 비발디, 20세기 라흐마니노프까지 수많은 작곡가들이 다양한 악기에 의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중 코렐리의 〈바이올린과 비올로네,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작품 5번 중 마지막 12번째 곡인 〈라 폴리아〉가 대표적인 수작 중 하나이다.

코렐리는 1653년 이탈리아 볼로냐 부근의 작은 마을인 푸시냐노에서 태어나 볼로냐 산 페트로니오 음악학교를 거쳐 17세 때 이미 아카데미아 필하르모니카에 들어갈 수 있었다. 1671년 로마로 진출한 그를 베네틱토 팜필리 대주교나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 그리고 교황 알렉산드르 3세와 오토보니 대주교들이 후원을 하였는데 이들의 저택에 살면서 친교를 나누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코렐리는 바이올린의 연주 기법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가능하도록 현대적인 주법들과 기법들을 고안하고 가르쳤다. 그의 제자 피에트로 로카텔리와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는 더 복잡한 주법을 개발하였으며 이는 파가니니를 거쳐 사라사테에 이르는 기교적인 이탈리아 바이올린 연주의 계보에 있어 원조라 할 수 있다.

코렐리는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 형식을 처음으로 확립시킨 작곡가이다. 이는 `콘체르티노'라는 일단의 독주자와 합주자가 서로 연주를 주고받는 협주 형식으로 당시 트리오 소나타를 부분적으로 합주화해서 음량의 대조를 통해 더 동적으로 음악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1700년에 출판됐으며 바이올린과 같은 독주 악기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훗날 독주 협주곡의 기반이 된다. 이를 계승한 작곡가로 제자인 제미니아니가 있고 대표적인 합주 협주곡으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헨델의 12곡의 합주 협주곡이 있다.

코렐리의 음악은 질주하는 음악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느림의 음악이다. 코렐리는 어렸을 때 먼 시골길을 오가면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때 그는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터득했을 것이다. 지체 높은 사람은 으레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 로마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음악가 코렐리는 능히 마차를 탈 수 있는 지위였음에도 그는 언제나 걷기를 고집했고 누군가 마차로 모시려 해도 그는 걷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하면서 마차를 타지 않았다. 그 걸음의 즐거움이 코렐리의 음악에 가득하다. 느림의 미학은 슬프도록 아름답게 개화한 아르카디아의 화원이다. 언뜻 부는 바람에 가을 색으로 물들어가는 땅으로 떨어진 다채로운 색조의 낙엽 한 잎처럼 잃어버린 추억에 대한 무딘 감각을 일깨워준다.

니체의 주장대로 예술은 아폴로적인 요소와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라는 두 개의 바퀴를 달고서야 달릴 수 있는 수레와도 같다. 디오니소스가 빠름이라면 아폴로는 느림이다. 아폴로가 명상과 관조라면 디오니소스는 도취와 광란이다. `콘체르토'의 어원이 경합과 화합의 뜻을 동시에 내포하듯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도 서로 역행하고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코렐리는 그 두 인자를 주입하여 그의 수레를 쾌적하게 달리게 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빠른 악장에는 느림의 인자가 있고 느린 악장에도 빠름의 인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폴로의 바퀴건 디오니소스의 바퀴건 코렐리의 〈라 폴리아〉는 그 누구의 〈라 폴리아〉보다도 더욱 더 열기로 가득 차 달리고 있다. 질주의 혼탁을 정화하여 드높은 열기로 가득 채운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두 바퀴로 드높게 날아오른 곡이 바로 코렐리의 〈라 폴리아〉이다.

■들을만한 음반: 엔리코 가티(바이올린), 가에타노 나실로(비올론첼로) 귀도 모리니(쳄발로)[Arcana 2003]; 마르크스 멜쿠스(바이올린), 카펠라 아카데미카 빈[Arciv, 1972]; 지그프리드 쿠이켄(바이올린), 비랜트 쿠이켄(비올로네), 로버트 코넨(쳄발로)[Accent 1984]: 조르디 사발(비올라 다 감바), 브루노 코세트(비올로네), 미카엘 베링거(쳄발로)[Allavox, 1988]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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