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비박산행, 1000M 고지의 억새평원, 영남알프스
첫 비박산행, 1000M 고지의 억새평원, 영남알프스
  • 의사신문
  • 승인 2012.12.1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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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관 <강동·노민관가정의학과의원장>

노민관 원장
두려움으로 시작한 비박…억새평원의 여유에 빠져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영남알프스'!

서울의사산악회 훈련팀에서 1박 산행이 계획되어있어 그 이름 때문에라도 궁금하던 차에, 평소 산행을 같이하던 선배 한 분이 먼저 다녀오셨다기에 소감을 물어보았더니, 여태 다니던 산과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르고 1000m 이상 고봉이 연이어 있어 무척 힘들었단다.

호기심과 도전감은 더욱 배가되고 더군다나 이전부터 박홍구 고문님께서 “노 선생, 비박산행 한 번 할까?” 하셨던 터라 긴장감마저 들게 하는 11월 한 달이었다.

드디어, 11월23일! `내일이면 알프스를 간다 !' 부푼 가슴에 배낭을 준비하던 차에 조해석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홍구 고문님과 비박을 하자는 것이다.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 벌써부터 말은 있었지만 특별히 공고도 없고, 등반대장님이 비박산행 계획은 없다고 하여 비박의 부담은 덜고 있었는데….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비박을 하려면 그 무거운 배낭에 추위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하루를 보내야하는 괴로움을 내심 살짝 피해가고 싶었던가 보다. 혹시 몰라, 아는 후배에게 비박(biwak, bivouac)용 비비색(bivy sac)과 겨울용 침낭, 에어 매트리스 등은 빌려놓았지만, 막상 이것들을 집어넣고 산처럼 부푼 배낭을 보고 있으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활은 시위를 떠났으니, 가겠다고 해놓고 안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머리 위로 솟은 배낭을 등에 메고 집을 나와 전철을 타니, 사람들의 눈동자와 입모양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쑥스럽기도 하고, 그런 눈으로 비박배낭을 메고 가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던 내 자신이 돌이켜 기억나기도 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집결장소인 압구정역에 도착하니 양종욱 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오시며 여기가 아니라고 따라오라며 앞서가신다. 내 배낭을 못 보셨을까? 걷기도 힘든데 자전거를 따라가려니 뛰어야할 판이다. 에고 에고.

4시간 이상을 달려왔을까 1박 산행의 느긋함에 취해 버스에서 한참 단잠에 취해있을 때, 난데없이, “비박팀 내리세요!” 등반대장님의 서릿발 같은 호령이 들려온다. 밖을 보니 완전 칠흙 같은 어둠인데 야생 동물을 방생하듯 버스에서 내리란다. 살짝 입가에 흘린 침을 남이 볼 새라 흐읍 들이마시곤 배낭을 대충 끌며 허겁지겁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고 보니 조해석 총무가 이곳에 내려 달라고 한 모양이다. 사실 버스 안에서 콜택시도 전화해보고, 숙박 예정지인 유스호스텔에도 전화해봤지만, 택시도 못가고 길도 없다는 회신만 들었던 터라, 내심 유스호스텔 근처에서 비박만 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조 총무는 한 번 뽑은 칼 확실하게 휘둘러버린다. 이제 달리 방법이 없다. 걸어서 간월재까지 1시간30분 이상 걸어갈 수 밖에 그 곳에 가면 데크가 있고, 비박할 곳이 있다고 한다. 춥고 어둡고 살짝 무섭기까지 하지만, 어쩌랴! `피할 수 없을 땐 즐기라' 했으니 헤드랜턴에 야간산행! 오랜만에 즐겁게(?) 밤산을 오른다.

처음엔 약간의 경사에도 발을 떼기가 힘들더니, 몇 분 걸어가니 어깨의 짐이 그리 무겁지 않다. 금방 적응하는 몸이 참으로 고맙다. 30분쯤 걸어가니 신불산 자연휴양림이 나오고, 포장된 임도가 끝나면서 비포장 임도가 연결된다. 다행히 하늘에 별이 뿌려놓은 듯 지천으로 많고, 달도 보름이 가까운 듯 밝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고 오른쪽 아래로는 깊은 계곡이 있는 듯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배낭은 무거워도 밤바람이 찬 탓에 땀도 별로 흐르지 않는다. 이런 저런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발씩 오르다보니, 어느 덧 눈앞이 트이면서 밤 하늘이 코 앞에 다가선다.

간월재에 도착했나 보다. 시간은 밤 12시가 넘었고,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가 바로 내 눈앞에서 선보듯 마주보고 있다. `북두칠성의 고도가 1000M 정도였나?' 비박자리를 찾아 간월산장 지역과 데크가 놓여있는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려보지만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텐트들이 쳐있다. 정말 대단들 하다. 처음인 나로선 비박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고지에 이만한 비박 인파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이 곳 밖에 없으리라.

우리는 좀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비박 준비를 시작했다. 각자 가져온 텐트와 비비색을 설치하고, 늦은 저녁을 나름 거하게 준비했다. 조 총무가 준비해온 버너와 코펠에 라면 3개를 끓이고, 다시 햇반을 넣고 소세지를 넣어 잡탕밥(박 고문님 말씀에 의하면 꿀꿀이죽)을 안주삼아 준비해온 보드카를 한 잔 들이켜니, “캬!” 차가운 밤공기에 곱던 손도 시리던 코도 금방 화기가 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얼른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내 비비색은 공간이 없어 조 총무 텐트에 웬만한 짐을 넣고, 신발만 머리맡에 얼지 않게 넣었다. 동계용 침낭 안에 몸을 넣으니 얼굴만 살짝 시린 듯 견딜만 하다. 머리 위로는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이제 새벽 3시가 가까워오니 잠을 청해야한다. 머리 윗 부분도 지퍼를 닫고 잠잘 준비는 마쳤는데 아까 밥먹을 때 들었던 이상한 동물 울음소리가 신경이 쓰인다. 성인 남자가 크게 흐느끼는 듯한 이상한 울부짖음! 조 총무는 고양이 울음소리일 거라는데 소리도 이상하거니와 그렇게 큰 고양이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둠 속에 누워있으려니 텐트가 흔들리는 소리인지 야생동물이 어슬렁거리는 소리인 지 쓸데없이 소리에 집중이 되어 잠을 못 이루겠다. 이러다간 도저히 잠을 못잘 것 같아, “에이 모르겠다. 날 잡아먹던가 말던가 일단 잠부터 자고 봐야 겠다” 비니를 코 끝까지 푹 눌러쓰곤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나을 던져버렸다.

어느 덧 해가 뜨는가 보다. 바깥이 밝아오고, 인기척 소리가 들린다. 집에서라면 조금 더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보내겠지만, 일출 광경도 궁금하고, 일어나 움직이는 게 덜 추울 것 같아 침낭을 열고 아침을 맞았다. 아직 달이 떠 있고 여명이 밝아온다. 몇 시간 사이인데 달이 훨씬 커진 것이 느껴지고, 일출은 아무래도 신불산에서나 볼 수 있는 지, 봉우리 너머가 붉게 물들어온다. 신불산은 너무 멀어 간월산 쪽으로 올라가면 일출을 볼 수 있으려나 올라가보았다.

간월산 쪽으로도 데크만 있으면 텐트가 쳐있는 것을 보니 이 사람들에게 추위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가 보다. 조금 오르다보니, 벌써 사방이 환해진다. 이미 일출을 보긴 늦은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적당한 곳에서 간월재 쪽으로 되돌아 내려오며, 간월산장과 우리가 묵은 자리를 한 컷 찍어본다.

억새숲에 둘러쌓여 쳐진 텐트들이 아늑한 보금자리 마냥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춥고, 바람소리 등 외부환경에 잠 못이루는 민생고는 전혀 느낄 수 없고 그저 편안하게만 보이는 것이 꼭 우리네 인생살이 겉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텐트를 접고 이제 신불산 쪽으로 출발! 등반대장님께는 먼저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드리고 물이 없어 세수도 못하고 이도 닦지 못한 꿉꿉한 상태로 발길을 옮긴다. 약간은 철이 지나 숱은 적지만 억새평원이 계속되고, 억새평원 가운데 위치한 데크와 평지에는 어김없이 텐트족들이 평온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바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이 느긋하게 아침을 맞고 있는 사람들. `저런 여유로움도 없이 여기까지 와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어갈 이유가 있으랴'싶다.

약 1시간 정도 오르니 신불산 정상이다. 울산 앞바다가 보이고, 동쪽으론 공룡같은 리지 코스가 있고, 안쪽으론 억새평원이 펼쳐진 이중적 모습을 지닌 신불산! 말 그대로 신령스럽기도 하고, 밝기도 한 산이다. 본대와 전화통화를 하니, 아직 간월재에 도착하지 못한 것 같다. 어차피 어디선가 만날테니 다시 출발!

다시 한 시간 여를 더 가면 계속되던 육산과 달리, 머리 부위만 바위를 이고 있는 모양의 영축산에 이른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막걸리와 소주, 라면 등을 판매하는 포장마차가 있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대도 높은 곳이라 짐을 올리기도 힘들겠거니와, 위험할 수도 있는 곳인데 소주까지. 판매를 위한 가건물 설치가 보통 산에서는 어려운 법인데 여하튼 대단한 사람들이다 싶었다. 다시 본대와 통화를 하고 영축산을 조금 내려온 지점에서 점심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통도사로 내려가는 하산경로를 고민하던 중 선두조인 이석기, 최무성 선생님과 조우했다.

조철현 선생님이 넘어지면서 팔목에 통증이 발생되어 하산하셨다 하여 걱정이 된다. 워낙 강인한 분이니 별일이야 없겠지만, 지나는 대구시 등산학교 조교의 충고대로 비로암으로 가는 길은 위험하여, 좀 우회하지만 함박재-백운암으로 하산하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함박재까지 가는 길은 꽤나 아찔한 코스였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위를 계속 걸어가는 하늘길이라고나 해야 할까. 아마 비로암으로 바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면, 그 경사도가 굉장했겠다 싶었다.

언제부턴가 박윤석, 이석기, 최무성 선생님과 같이 일행이 되어 1시간 이상을 우회하니 함박재가 나온다. 잠시 후엔 드디어 본대도 합류하여 하루 만에 이산가족 상봉! 처음으로 모두 다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하산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도 2시간 이상을 더 내려와서야 겨우 통도사로 가는 도로에 닿았으니, 오늘 아침 배내고개부터 출발한 본대는, 하룻밤 간월재에서 쉰 우리보다 더 힘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깨에 맨 짐의 무게보다 얼마나 먼 길을 가야하는가가 사람을 더 힘들게 하지 않을까?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알고만 있는 것보다는 좋아하고, 좋아만 하는 것보다는 즐기는(실천) 것이 후회 없는 삶의 자세라면 영남 알프스를 온 몸으로 느끼고 돌아온 뿌듯함은 꽤나 오래갈 것 같다. 비박까지 가능케해 준 박홍구 고문님과 조해석 총무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노민관 <강동·노민관가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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