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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닥터 심파티쿠스'
<시론> `닥터 심파티쿠스'
  • 승인 2005.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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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심파티쿠스'

 

심상덕<서대문 봄산부인과>  

 

인류는 도구를 다루는 호모 하빌리스에서 직립한다는 의미의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슬기로운 인간이라는 뜻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의사의 역할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 하는 것을 추측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발사가 의사의 역할을 병행했다고 할 정도로 의사는 기술자로서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물론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주술사적인 역할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역할에 그치는 것이었다. 이런 시기의 의사는 기술자로서의 인간을 표현한 호모 파베르에 빗대어 닥터 파베르(doctor faber)라고 하면 적당할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의사의 역할이 다소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서양에서는 의사가 단순한 기술자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경험과 실험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추론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를 바탕으로 처방을 하는 단계로 진행하였다.  즉 지혜를 가지고 진단과 치료를 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호모 사피엔스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닥터 사피엔스(doctor sapiens)라고 하면 크게 틀리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의사의 역할은 이런 닥터 사피엔스라고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의사의 역할이 앞으로도 계속 이런 단계에만 머물러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상당한 기간 동안은 고도의 분석과 판단을 동반하는 지혜를 가진 의사로서의 닥터 사피엔스가 가장 큰 역할로 남아 있게 되겠지만 미래 시대에도 이런 역할로서 인간인 의사의 도움이 지금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다음 진화 단계로의 이행이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영역에서 현대 의학의 한계도 노출되고 그 반작용으로 대체의학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지식 기반 컴퓨터의 발달이나 인공 지능 컴퓨터의 급격한 발달이 그런 이행을 재촉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떤 부분에서 의사의 역할이 남아 있을 것인가? 아마도 현재 추측하기로는 고통에 있는 자를 위로하고 그 아픔을 공감하는 위무자로서의 역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역할의 의사를 지칭하기 위하여 닥터 심파티쿠스(doctor sympathicus)라고 하는 용어를 생각해 본다.  

사회의 발달 단계에서 볼 때도 근대 사회에서는 기술자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대우를 받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단순한 기술자 보다는 지식 또는 정보를 소유한 사람이 더 큰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발달하여 복잡해지고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지식이 한계에 다다르면 오히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는 풍부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 더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미 마케팅 분야 등 일부 분야의 전문가들은 감성이 가진 힘을 알고 마케팅에 그런 요소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사실 예술과 스포츠가 발달하는 것도 이런 추세의 다른 표현에 불과할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이런 추세가 곧바로는 아니겠지만 의료 영역에도 예외 없이 밀어 닥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의사도 단순히 지식을 바탕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단계를 넘어서 감성적인 접근에 비중을 늘리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의사라는 직업인에 대한 정의를 때때로 치료하며 자주 고통을 덜어 주고 항상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은 앞날을 내다본 의미심장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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