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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자크 피아노삼중주 제4번〈둠키〉E단조 작품번호 22
드보르자크 피아노삼중주 제4번〈둠키〉E단조 작품번호 22
  • 의사신문
  • 승인 2012.11.02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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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195〉

드보르자크는 19세기 민족주의 음악의 정점에 서서 변색되지 않은 강한 슬라브적인 개성을 지닌 보헤미아 최고의 작곡가이다. 외향적인 화려함보다는 음악의 진수를 간직한 실내악 분야에 그가 집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14곡의 현악사중주와 함께 피아노오중주, 피아노사중주, 현악오중주 그리고 피아노삼중주가 있다. 그 중 피아노삼중주는 모두 네 곡을 남겼으나 악보를 분실한 두 곡까지 하면 모두 여섯 곡이다. 특히 이 중에서 `둠키'라는 제목이 붙은 제4번은 현악사중주 `아메리카'와 함께 드보르자크 실내악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명작이다.

피아노삼중주 `둠키'는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독일 정통파 실내악과 교향곡의 구성을 따르지 않고 슬라브적인 체질에 보다 걸맞은 독자적인 절대음악의 구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소나타 악장의 구성이 아닌 흡사 `둠카 모음곡'이라 할 수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형식은 피아노오중주 작품 81이나 피아노사중주 작품 87에 이미 그 전조를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이 두 곡은 고전주의 전통인 4악장의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1889년 완성된 교향곡 제8번을 거쳐 피아노삼중주 `둠키'에서 그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는 그가 미국으로 가기 1년 전인 전성기로 그만의 독특한 보헤미안적인 특성을 완성하게 된다.

`둠키'는 원래 우크라이나 반두라 지방 등지에서 민속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민요인 `둠카(dumka)'의 복수형으로 슬픈 선율과 정열적인 선율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마치 헝가리의 차르다슈(czardas)와 비슷하다. 둠카의 말뜻은 `슬픔'이나 `한탄'이란 뜻이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 드보르자크는 민요형식인 둠카를 쓴 것이 아니라 `관조하다', `명상하다'란 뜻의 체코어 두마티(dumati)란 말이 둠카와 유사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고, 둠카에 이런 명상적인 요소를 주입시키게 된다. 음악학자 크래팜은 “드보르자크는 본래 민요 형식의 둠카의 특징을 모르는 채 둠카를 하나의 음악형식으로 만든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래서 드보르자크의 둠카는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이지만 즐거움도 대조적으로 덧붙여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곡 바로 전에 작곡된 피아노삼중주 제3번을 작곡하기 한해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오스트리아의 폭정에 체코의 저항이 거세게 일던 암울한 상황이 반영되어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7년 후인 1891년 작곡된 이 피아노삼중주 제4번 `둠키'는 이전과 달리 프라하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는 등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한 시기였던 만큼 곡은 힘차고 아름답고 그리고 슬라브 특유의 정서가 한껏 피어오르고 있다.

이 곡은 모두 6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 2악장을 한 악장으로 보아 전 5악장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며 어떤 형식이나 주제가 아닌 세심한 심리적 배려가 있는 독창적이며 자유로운 모음곡 형식이다. 처음 세 개의 악장은 쉬지 않고 아타가(attacca)로 계속 연주된다. 곡 전체가 슬라브 민족의 선율이 물씬 풍기는 둠카의 집합체라고 할 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이지만 그 내면에는 드보르자크의 행복한 감흥과 민족적인 애수가 교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제1악장 Lento maestoso-Allegro 애수에 찬 서주 후 어두운 정열의 선율이 격렬하게 나타나면서 제1주제의 변형이 악기마다 계속 된 후 바이올린에 이어 첼로가 제2주제를 조용하게 노래하면서 막을 내린다. △제2악장 Poco adagio-vivace non troppo 첼로가 차분하게 주제를 노래한 후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첼로를 밝은 선율로 맞이하며 서로 대화를 나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세 친구의 뒷모습을 보는 듯하다. △제3악장 Andante-vivace 우아한 선율이 서정적인 시골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제4악장 Andante moderato 소박하고 애수를 띤 선율을 첼로가 노래하면 경쾌한 선율로 바이올린이 답을 한다. △제5악장 Allegro 첼로가 서주를 노래한 후 바이올린과 함께 활기차게 슬라브풍의 춤을 추고 있다. △제6악장 Lento maestoso-vivace 아름다운 무곡풍의 선율이지만 어딘가 쓸쓸하고 적적한 분위기로 보헤미안의 애환을 그린 후 활발하게 춤을 추면서 점차 사색에 잠기다가 다시 마지막엔 빠르고 힘차게 막을 내린다.

■들을만한 음반: 수크 트리오[Supraphon, 1978]; 보자르 트리오[philips, 1969]; 김영욱(바이올린), 요요마(첼로), 에마뉘엘 엑스(피아노)[CBS, 1987]; 보로딘 트리오[Chandos, 1986]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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