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10:07 (월)
의료분쟁<11>
의료분쟁<11>
  • 의사신문
  • 승인 2009.05.21 0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과 계열의 전공의 지원자가 줄어들고 개원의들 대부분이 가벼운 수술도 꺼리는 이유가 낮은 의료수가는 물론 빈번한 의료분쟁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의료분쟁으로 유명한 모 변호사가 국제의학학술대회에서 “의료분쟁이 발생하는 첫째 원인은 의료사고 원인에 대한 불충분한 해명, 의사의 무성의하고 불손한 태도 등 대응 자세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고 했으며 이와 함께 “의료분쟁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의료사고의 원인 규명, 의사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 등 보복적 목적, 경제적 보상” 등을 꼽았다.

오마바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부장관이 상원의원 시절 함께 제안한 `Medic 법안'은 의료사고에 대한 공개와 보상에 대한 법률로서 2006년 이 법안의 핵심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 사설에 발표하였다. 의료사고의 법적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환자와 의사 간의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아 의료사고 환경이 악화되었다고 지적하였으며, 의료 정보공개와 함께 의사가 의료 사고에 대해 사과를 해도 법정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게 배려한다는 내용이다. 의료 정보공개 프로그램을 도입한 미국 대학 병원들의 경우 의료분쟁 발생 시 환자와 가족에게 투명한 정보를 공개, 사과하고 적절한 보상을 제시하면 소송 건수나 소송에 들어간 비용, 소송 기간이 각각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의료소송에서 조차도 환자가 약자라는 이유로 보상적 성격의 배상비를 부과하는 등 의료계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에서는 남의 얘기일 뿐 아니라 법안의 요지가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에게 인용되는 것이 참으로 희화적이다.

미국처럼 의료관련 소송이 일반화되고 비용이 사회문제화 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 수 증가와 함께 우리나라도 의료 소송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치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혹은 예후가 나쁠 수밖에 없는 질병임에도 억지를 쓰는 경우 대충 합의해 보상적 성격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해결 방법이 왜곡된 관행을 조성하기도 했다. 빈번하게 보도되는 진료실 의사 폭행사건도 대화와 소통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의료분쟁의 왜곡된 해결 방법이 뿌리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한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같은 위로나 사과를 함부로 할 수도 없다.

필자에게도 의료사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개원 후 20년 동안 2건의 환자 항의 사건이 있었다. 한 건은 자궁내막조직 검사 후 자궁외임신 건이고 또 한 건은 산전 검사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구순열로 태어난 아기에 대한 것이다. 구순열로 태어난 아기 문제는 임신 5개월까지 진찰을 받고 다른 병원에서 분만한 경우인데 아기 아빠가 항의하러 온 것이다. 가정 형편도 어려운 사람이라 마음도 아프고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위로 겸 사과를 하였다. 보호자는 책임지라고 호통치고 갔지만 다시 연락이 없었다. 자궁외임신의 경우 의사로서 취할 조치를 다했다고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결국은 주변의 권유로 약간의 수술비를 보상해 주었다.

낮은 의료 수가에서 의료분쟁 소송까지 증가하여 소송비를 부담하고 보상적 성격의 배상비까지 부담하게 된다면 의사들은 진료를 포기하거나 철벽같은 방어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의료 분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줄이고 의사와 환자를 모두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된 의료분쟁조정 법안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그 핵심은 입증책임 전환이 아니라 무과실 의료사고의 국가보상이 되어야 한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