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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최빈국에서 `의료한류'로 키운 땀과 눈물
의료 최빈국에서 `의료한류'로 키운 땀과 눈물
  • 의사신문
  • 승인 2012.09.2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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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신문 5000호 기념 특집 - 주제Ⅰ : 5000호까지의 의료계 변천사

유승흠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
5000호까지의 `의료계 아젠다' 분석

6.25를 치르고 난 후 한국의 의료는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발전하여 왔다. 이에 의료계 어젠다 역시 급격한 변화만큼 다양하다. 전염병이 만연하던 시절에 아래 층에서는 환자 진료, 위 층에서는 살림을 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응급환자가 의원 문을 두드리면 한밤중이라도 진료를 하였다.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다니던 1950년대를 보냈다.

그 후 반 백년! 급격한 경제사회 발전과 더불어 의료자원과 교육훈련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었다. 아프면 동네에서 약 사먹으며 버티던 시절에서 마음대로 의료기관을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는 전국민보험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의사와 의료기관은 의약분업, 보험수가 등 제도에 억눌려서 의료는 처절하게 왜곡되었다. 봉사와 존경으로 점철되던 의사의 위상과 사회적 위치는 예전의 모습에서 일그러졌으며, 피부미용과 성형 등을 선두로 의료한류가 두드러졌다.

의사신문이 창간되던 1960년 즈음에 4.19와 5.16을 거쳤다. 가족계획사업이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여져서 활발하게 시행되었고, 국제적인 성공사례가 되었다. 외화가 매우 귀하던 시절에 가족계획사업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아서 의료계는 다소 활기를 띄게 되었고, 보건소와 보건지소를 잇는 보건망이 구축되어 가족계획, 모자보건, 결핵, 기생충박멸 사업에 중점을 두며 보건관리체계가 수립되었다.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의사들이 뒤늦게 군에 동원되었고, 미국의사시험(ECFMG)과 김정열플랜(킴스플랜)의 실시로 의사들이 미국 이민 행렬에 들어섰다. 1960년대 말 월남전에 군의관이 파견되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대 초에 그 운동의 일환으로 화장실과 부엌 개량, 간이상수도 보급과 우물물 염소소독 등으로 환경위생 개선을 하려고 진력하였다. 의사를 배출하여도 다수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하자 보건소에 1년을 근무하여야 이민을 허가하도록 제도화 하였고, 무의촌 해소의 일환으로 수련의들이 레지던트 과정 중 의무적으로 6개월간 농어촌에 파견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미국 이민정책이 바뀌어 국내 수련이 불가피해 지자 전문의 수련을 받을 기회가 제한되므로 인턴 선발을 하는데 갖가지 문제가 불거져 국회에서까지 논란이 있었다.

한편 병원은 비영리법인이어야 하는 의료법 개정으로 한바탕 소동이 나서, 기존 병원들이 의원으로 간판을 갈아 붙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제4차 5개년계획(1977∼81)부터는 경제개발계획에서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었으며, 보건의료영역에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원(KDI) 경제학자들의 입김이 거셌다. 조금 살만하게 되자 미국제개발처(USAID)가 우리나라에서 떠났으며, 의료보호(현 의료급여)와 의료보험(현 건강보험)이 시작되었다. 남가좌동에 거주하는 환자가 의료기관 6곳을 거치다가 죽었다는 일간신문 기사 내용 등을 매년 봄 제네바에서 열리는 WHO총회에서 북한이 영문으로 자료를 만들어 살포한 것이 의료보험의 조기실현에 자극제가 되는 해프닝이 있기도 하였다.

국민소득이 1000달러를 넘게 된 1980년대를 맞아 정부는 군의관 소요 인력 과잉을 고려하여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서 공중보건의와 보건진료원을 배치하므로서 건국 이래 늘 입에 오르던 `무의촌 해소'가 현실화 되었다. 그리고 헌법에서 건강권과 환경권을 수용하였다.

건강보험의 확대와 아울러 정부는 의료취약지역에 차관자금으로 50여개 병원을 건립하도록 하였는데, 무분별하게 설립된 대부분의 차관병원들은 재정적으로 골칫거리가 되었다. 직장보험은 거의 확대되었지만 지역보험은 시범사업을 하면서 적자였기에 복지망국론까지 들먹였으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농어촌주민들의 건강문제가 부상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977년에 시작된 후 12년만에 전국민의료보험이 성취되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짧은 기간에 된 것으로 각인되었다.


산업화 개발 논리에 의료계 무한 희생으로 급성장 이뤄내
대국민 신뢰 회복·올바른 의료제도 확립 등 숙제 남겨져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은 한국을 널리 알린 가장 큰 이벤트였다. 그 중 도핑으로 벤죤슨을 잡아낸 것은 한국 의료 수준을 인정받은 셈이어서 어깨가 으쓱할 수 있었다. 두 대회의 의료지원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필자가 도핑을 비싼 돈 주고 외주를 주지 말고 우리가 직접 하자고 제안하여 재미 전문가를 추천한 것이었기에 흐뭇하였다. 소득의 증가와 아울러 해외여행 자유화 물결로 열대병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지방자치제 도입에 따라 공공보건이 강화되고, 의료의 균점과 형평이 강조되었다. 민간에서 환경보호운동이 펼쳐졌으며, 건강증진법이 제정되었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설립되었다. 의료개혁위원회가 설치 운영되었으나, 정권이 바뀜에 따라 유야무야되었다. 소득 1만 달러 시대가 되어 삶의 질과 웰빙을 입에 올리게 되었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한층 커졌으며, 의료 이용의 증가 등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규모가 계속 불어났다.

의과대학 신설 붐이 고조되었다. 이를 막기 위하여 의학교육에 관련되는 각급 단체를 묶어 의학교육협의회를 만들어 의대신설 반대를 하였고, 양적인 반대로만은 불충분하기에 의학교육의 질적인 점을 강조해서 의학교육인정평가제도 도입을 주창하여 실시하였다. 가천의대를 마지막으로 지난 15년 동안 의대 신설이 거론만 되었을 뿐, 현재까지 신설은 없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의료계는 의약분업 반대를 시작으로 정부와 계속 맞부딪쳐 오고 있다. 장충단 모임, 의료대란, 의쟁투 활동 등등 귀에 쟁쟁하다. 의료계의 상징적 총수인 의협 회장들이 임기를 못 마치고 교체되는 등 불상사가 발생하는가 하면, 법적 송사가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회장 직선제 도입의 후유증이 아닐까? 민주화 열풍과 함께 시작된 대학총장 직선제가 20년 지나 스르르 없어졌으니, 의료계는 아직 10년은 더 기다려야 될까 보다. 이 무렵에 국력의 향상과 함께 세계의사협회와 국제병원연맹의 회장, 그리고 WHO사무총장 등에 선임되어 한국의료계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총리 산하를 대통령 직속으로 우겨서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가 설립운영되었으나, 효과는 없었다. 총리가 위원장으로서 의료계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이해하기라도 하였을 것이었는데, 굳이 대통령직속을 강조한 결과라 아쉬운 사례라 하겠다.

의학의 발전과 함께 세계적인 학술잡지에 논문이 게재되고, 국제학회에서 종횡무진하게 되었다. 도하개발어젠다(DDA) 바람에 의료시장 개방이 거론되었으나 몇 년 간 말만 오고가다가 유야무야되었으며,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중심으로 관광의료가 부상하게 되었다. 국제보건의료재단이 설립되어 개발도상국의 의료지원이 활발해졌는가 하면, 민간사업으로 대북의료지원과 장단기 개발도상국 의료지원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보편화하였다. 2002월드컵 때에는 큰 돈 들여서 전국의 공중화장실을 개선하였기에 요즈음 지방 여행을 할 때 수준이 높은 화장실 시설에 외국인들도 놀라곤 하는 것을 보니 즐겁다.

소득이 2만 달러 수준이 됨과 아울러 의료의 질적인 면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되어 환자들은 세칭 빅5병원으로 쏠림이 본격화되었다. 의학의 발달에 힘입어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어 단순한 수명연장에 반하여 죽음에 대한 의료의 윤리적 측면을 염두에 두게 되었으며, 이에 따른 의료비의 급증이 커다란 과제가 되고 있다.

제약업체의 과당경쟁이 불가피함에 따라서 오랫동안 거론되어오던 불법 리베이트 이슈가 수년 째 문제가 되고 있어 매우 아쉽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의료계를 보는 눈이 아직도 곱지 않다. 의료 관련 법인이나 의학 학술단체 등의 활동도 재정적으로 제약을 받게 되었다.

재단법인 한국의학원에서 6년간 심혈을 기울여 `우리나라 의학의 선구자' 단행본을 세 번에 걸쳐 출판하였으며, 의사신문과 공동기획으로 게재되고 있음은 매우 기쁜 일이다. 사회에 기여한 의사들을 소개하고, 의학과 의료를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국민들과 원활하게 소통함으로써 의료계의 위상도 높이기 위하여 재단 자체 자금으로 강원도 양양군 남대천 강변에 메디칼 아카이브(의학문화원)를 건립, 의사신문 5000호 발간에 즈음하여 준공식을 갖게 됨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보건복지부 예산이 국방부 예산 총액을 이미 넘어섰다. 내년에는 100조원 규모라고 한다. 아무쪼록 국민과 의료계가 힘을 모아 노력하여 의사신문 6000호가 발간될 즈음에는 국민과 의료인이 다 같이 흡족한 마음을 가지는 사회분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유승흠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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