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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산행기 〈하〉
백두산 산행기 〈하〉
  • 의사신문
  • 승인 2012.09.0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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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관 <강동·노민관가정의학과 원장>

노민관 원장
이틀간 구름 한점 없는 천지 4번 보는 행운 누려

다시 2시간여 버스를 타고 송강하로 이동, 점심을 먹고 백두산 서경구로 향한다. 마찬가지로 125위안의 입장료와 85위안의 버스탑승료를 지불하고 다시 3∼40분 뱀길을 올라 서파주차장에 내리면, 이 곳에선 천지를 만나기 위해 1442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이미 비가 올 걱정도 전혀없는 쾌청한 날씨여서 배낭도 없이 발걸음도 가볍게 사뿐사뿐 계단을 오른다. 마지막 계단만 오르면 출입을 막는 울타리 뒤로 또 다른 모습의 천지가 펼쳐진다. 남파의 천지는 좁고 길었다면, 서파의 천지는 넓고 푸짐한 느낌이다. 남파에는 없는 울타리들이 옥에 티이지만,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조망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곳이 서파종주의 출발점이었을테지만, 넉넉한 양의 사진으로 위안을 삼고, 올라온 계단을 내려가며 내일의 북파종주를 기대해본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들른 금강대협곡 트레킹은, 간만에 빽빽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phytoncide 향에 젖을 수 있는 기분 좋은 코스였다. 또한,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들어진 대협곡의 웅장함도 서파종주를 못한 아쉬움을 어루만져주는 멋진 광경이었다.

8월14일. 북경구(북파)에서 천지와의 조우.

호텔 뷔페에서 아침을 먹고, 이제 마지막 남은 북파를 향해 출발! 7시 이전 아직 개방시간 전에 북파산문에 도착하였으나, 그야말로 인산인해! 백두산을 찾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이 곳으로 오는 모양이다. 개방시간 이전에 도착했건만, 1시간 여를 기다려서야 겨우 버스를 타고 백두산 정상부로 향한다. 정상 주차장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천지 주위에는 발디딜 틈이 없다. 서파종주가 무산된 마당에 우린 아무런 의욕이나 바램도 없이 그저 가이드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철문봉 아래에서 다른 일행을 기다리며 대기하던 우리들에게, 여행사 주 이사님께서 “자 내려갈 준비하시고, 신호하면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세요!” 하면서 울타리 하나를 살짝 위로 들어올린다. 아마 달문(천지물이 나가는 곳. 중국사람들은 대궐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으로 갈 모양인데, 원래는 금해진 것이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뛰지 않게 빨리 이동해야 하는가보다. 우리는 일단 빨리 철문봉에 오른 사람들의 시야에서 먼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어디가려고 저러나 하는 듯 멍하니 우리를 바라본다. 아무렴 어쩌랴! 우린 이제 천지를 만나러 간다.

달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300여m의 고도를 30도 이상의 경사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이다. 낙석에, 잘 부서지는 현무암, 부스러져 미끄러운 모래들… 게다가 공식적으론 통행이 불허된 곳을 가는 것이라 여러모로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주위경관은 눈을 한 곳에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이 없고, 정해진 조망구역을 벗어난 곳이라, 백두산의 또다른 모습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수목한계선 위쪽이라 풀과 야생화가 지천에 그 자태를 뽐내고 있어, 집사람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며 사진에 그 모습을 담느라 일행들의 발걸음을 자꾸 느리게 하여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1442 계단 올라 서파의 천지 바라보며 종주 못한 아쉬움 달래
8월 14일, 북경구 천지 찾기 위해 북파산문 도착하니 인산인해
달문 지나자 펼쳐진 백두산의 아름다운 경관·위용에 가슴 벅차


1시간 정도 내려왔을까.. 천지물이 내려가는 물줄기가 보이고, 서서히 달문과 천지가 가까워진다. 한걸음에 내달려 일단 흐르는 물줄기에 손을 내밀어 본다. 아! 맑고 시원한 그 느낌이란! 조그만 물고기도 보이지 않는 천지물은 청량음료 같은 상쾌한 느낌이 들어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올까 잠깐 얼굴을 대고 기다려 본다.

약속이나 한 듯 물가에서 다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이제 달문으로 출발! 왠지 곧바로 달문으로 향하는 것은 범접하기 힘든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몸도 단정히, 마음도 가다듬고…. 드디어 눈으로 맞을 때의 흥분보다 더 큰 벅찬 가슴으로 천지를 몸으로 직접 만났다. 저절로 두 팔을 벌려 저 장한 천지를 맞이하게 된다. 찐한 감동이 밀려오고, 잔잔한 물결이 거센 파도가 되어 내 가슴 속 깊은 곳을 퍼∼억 때리는 느낌이다.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강국의 틈새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그 긴 세월동안 백두산 천지에는 이런 드넓은 기상이 계속되고 있었을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음을 백두산에 올라보니 저절로 깨닫게 된다.

이렇게 장한 천지를 가진 백두산을 가진 나라가 작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백두산의 화산폭발 위력은 봄베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우스 화산폭발의 수십배에 달하는 위력이었다고 한다. 10세기경의 백두산 폭발은 한반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지만, 우리는 아직 건재하고 있다. 그 만큼 우리나라는 작지 않다는 반증이 아닌가!

천지와의 감동스런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내려온 길을 올라갔다. 장백폭포로 이어지는 북파길을 완료하면 좋을 테지만, 중국 공안의 금지령에 어쩔 수가 없단다. 천문봉에 올라, 북백두에서 보이는 천지를 다시 한 번 감상하고 이젠 정말 이별을 고해야할 시간이다. 아쉬움을 달래려, 천지물이 내려오다 만들어진 64m의 장백폭포(천지폭포, 비룡폭포)를 관람하고 이도백하를 떠나 8시간 버스를 타고 장춘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빡빡한 3박 4일 여정의 마지막 밤은 아쉽지만 버스에서 지나버리고, 2시간 취침 후엔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한다. 서서히 날씨가 흐려지는 것이 이 날은 백두산 천지가 안개에 덮여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다.

같이 동행한 여러 분들 덕분에 2일간 천지를 4번이나, 그것도 구름 한 점 없는 티 없이 맑은 천지를 눈이 시리도록 볼 수 있어 행복했던 이번 백두산 산행 ! 당분간은 이만한 감동을 받을 리 없어 잠시 보류해야겠지만, 최고봉(2744m, 장군봉, 백두봉)에 올라 모두들 시린 마음 없이 따뜻하고 흐믓한 마음으로 천지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을 고대해 본다.

노민관  <강동·노민관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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