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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전주곡〉 작품번호 28, 제15번 Db장조 〈빗방울〉
쇼팽 〈전주곡〉 작품번호 28, 제15번 Db장조 〈빗방울〉
  • 의사신문
  • 승인 2012.07.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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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감흥과 회화적 이미지의 영롱한 선율 

쇼팽의 피아노 작품은 진주처럼 모두 빼어난 곡이지만 이 중 전주곡이야말로 가장 쇼팽다운 영롱함으로 가득 차 있다. 쇼팽이 〈전주곡〉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36년 리스트의 소개로 알게 된 죠르주 상드와 함께 마요르카 섬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날 때였다. 1835년 쇼팽은 드레스덴에서 어릴 적 친구였던 마리아 보젠스카와 사랑에 빠졌으나 결국 헤어져 파리로 되돌아 온 적이 있다.

폴란드에서의 첫 사랑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의 이별과 보젠스카와의 또 다른 이별 뒤 죠르주 상드를 만났을 때는 심신이 모두 지친 상태였다. 이런 쇼팽에게 상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전의 사랑과 달리 남성적이고 직선적이며 사교적인 여류 시인 상드는 쇼팽을 불붙는 정열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사랑의 도피행각을 떠난 마요르카 섬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상쾌하고 아늑한 도피처는 못되었다. 폐결핵을 앓고 있던 쇼팽은 우기에 접어든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 때문에 고생이 극심했다.

평소 쇼팽은 바흐를 몹시 존경하였고 그의 건반 작품들을 즐겨 연주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쇼팽이 가장 자주 연주하는 작품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쇼팽은 〈전주곡〉을 쓰면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처럼 전 24곡으로 구성하였고 각각 다양하게 모습을 표현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완벽한 균형감각과 통일성을 이루도록 하였다. 〈전주곡〉이라고 제목을 붙인 배경은 24개의 조성으로 구성되면서도 각 조성에 대해 작곡자가 가지고 있는 인상 또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주된 곡 앞에 붙는 도입부로 사용되었던 일반적인 개념의 〈전주곡〉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쇼팽은 이 〈전주곡〉에서 시적인 감흥과 회화적인 이미지를 섞어 각각의 곡들이 보석처럼 고아한 빛을 내뿜게 하였다.

쇼팽의 〈전주곡〉은 24개의 모든 조에 걸쳐 작곡되었지만 조 배열순서와는 상관없이 나열되어 있다. 어느 곡을 별도로 연주하더라도 충분히 그 나름대로 아름답고 풍부한 색채를 띠고 있다. 하지만 전체를 연속으로 연주를 하게 되면 형용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에 취하게 된다. 제4번은 애수가 깃든 우아한 곡으로 쇼팽이 매우 좋아하여 그의 장례식 때 연주된 곡이고, 제6번은 비길 데 없이 시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곡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제16번은 과격할 정도로 정열적이고 제3번과 제23번은 목가적이면서 경쾌한 분위기이며, 제11번은 유쾌하고 제17번은 연인들의 환희를 그리면서 제20번은 짧은 장송행진곡의 스케치이다. 제21번은 야상곡처럼 감미롭고 풍부한 선율로 추억을 그리고 있으면서 제22번은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고 제18번은 절망적이다. 마지막 제24번은 연습곡 〈혁명〉처럼 당당하고 정열적인 곡으로 마지막엔 조국 폴란드를 위한 조종처럼 가장 낮은 D음을 3번 힘차게 울리고 막을 내린다. 이렇듯 각각의 곡들은 그동안 충분히 연마되고 영글어진 한 청년의 굴절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 중 제15번 〈빗방울〉은 곡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Ab과 G#음 때문에 `빗방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창문 밖 비 오는 마당을 내다보거나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비를 보듯 지극히 비오는 날의 풍경화 같은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곡이다.
 쇼팽이 마요르카 섬의 발데모사 수도원에서 완성한 이 작품을 듣고 죠르주 상드는 “수도원의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연상케 한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비오는 어느 날 쇼팽의 약을 구하러 팔마로 나갔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길에 돌아와 보니 쇼팽이 아직 자지 않고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쇼팽은 “사랑하는 죠르주, 내 앞에 있는 건 분명 당신 맞지? 난 당신이 급류에 휘말리는 환영을 봤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내 가슴에도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때 처마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쇼팽은 그 소리를 피아노에 넣고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폭풍우 치던 발데모사 수도원의 어느 날 밤 쇼팽 자신은 빗방울 소리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들을만한 음반: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DG, 1974]; 상송 프랑스와(피아노)[EMI, 1959];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노)[EMI, 1934]; 마르타 아르게리치(피아노)[DG, 1975]; 이보 포코렐리치(피아노)[DG, 1989]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오재원 작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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