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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반구절제술을 최초로 성공시킨 - 심보성 
대뇌반구절제술을 최초로 성공시킨 - 심보성 
  • 의사신문
  • 승인 2012.06.1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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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수술기법 도입 등 신경외과학 발전 주도

심보성(沈輔星)
지강(芝崗) 심보성(沈輔星)은 1924년 의사인 심영용과 김점순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서울 마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이주하여 하루빈 중학교와 여순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뒤 1945년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였다. 광복 후 194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서울여자의과대학에서 외과 공부를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신경외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중위로 임관되어 부산에 있던 제3육군병원과 양구에 있던 미군 신경외과 이동병원에서 본격적으로 뇌 및 척추손상 환자들의 치료에 전념하게 되었다. 제대 후 1953년 부산에 임시로 자리잡았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외과에서 의국장으로 활동하였고 환도 후 1954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로 임명되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수술 시설 복구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신경외과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신경외과의 필요성을 병원 당국에 역설하였다.

휴전 후 미국 미네소타대학과 서울대학교 사이에 교환교수제도가 체결되어 선생은 1955년 첫 팀으로 미국 미네소타대학으로 유학하여 Peyton 교수와 French 교수의 지도하에 약 2년 반 동안 신경외과의 정식 수련을 받으면서 `Comparative study of the pyramidal tract following hemispherectomy in man, dogs and cats'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외과는 1957년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마취과로 분과되어 신경외과는 임시로 흉부외과 이영균이 책임자로 있었는데, 동년 8월 심보성이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함에 따라 1957년 9월부터 그가 신경외과의 책임을 맡아 한국 신경외과 분야의 발전을 주도하였다.

선생은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뇌종양, 요추 추간판 탈출증, 뇌폐흡충증 등 병변에 대하여 고난이도 수술적 치료를 성공적으로 시행하는 등 혼신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신경외과학 분야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958년 수련의 제도가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신경외과를 이끌게 될 인재들을 육성하였다. 뇌폐흡충증으로 인한 약물 불응성 간질 환자를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대뇌반구절제술을 통해 치료하였으며 이러한 업적은 중앙 일간지에 크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미세수술기법을 국내에 소개하였고, 1974년에는 8.15 기념 행사 도중 피격된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수술을 집도하였으나 손상이 워낙 광범위하여 생명은 구하지 못하였다. 어려운 여건 중에서도 동물실험을 포함한 기초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그 중 `대뇌반구적출술에 관한 실험적 연구'로 1963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선생은 3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특히 신경계 기생충 감염에 대한 연구와 한국의 신경외과를 세계에 소개한 것들은 대표적인 업적으로 알려져있다. 1990년 정년 퇴임까지 계속하여 후학 양성에 힘써서 60명의 신경외과 전문의와 35명의 의학박사를 배출하였는데 대부분이 국내 유수 대학과 병원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한신경외과학회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선생은 대한신경외과학회 창립 멤버로 1961년 학회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다년간 총무로 활약하였고 1962년에 제2대 부회장, 1969년에는 제9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국제 활동으로는 1965년부터 4년간 World Federation of Neurosurgical Societies의 대의원, 1971년에는 Asian Australasian Society of Neurosurgical Surgeons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선생은 큰 키에 지와 덕을 겸비한 침착한 의학자로 늘 흰색 셔츠에 정장을 반듯하게 입고 다녔다. 테니스와 스키, 골프를 즐겼고, 장기와 바둑을 좋아하여 후학들과 대국을 벌이곤 하였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관현악단을 지도하였다. 선생은 2001년 9월 지병이 악화되어 향년 78세로 별세하였다.

진료 및 교육 현장에서는 매우 엄격하여 원칙에서 벗어나면 크게 나무랐고, 특히 수술장에서는 약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으나 사석에서는 후배들이 편히 함께 즐기도록 배려하였다. 선생은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신경외과학을 창설 발전시키고 평생을 대학병원에서 연구, 진료와 후학들의 교육에 헌신한 참 스승이었다.

1951년에 소아과 의사 정규숙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차남 기범이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제주대학교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으로 교수의 대를 잇고 있다.

집필 : 김동규(서울의대 신경외과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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