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해부학 교수 - 나복영 
최초의 여성해부학 교수 - 나복영 
  • 의사신문
  • 승인 2012.05.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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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대 발전 산증인으로 여의사회 창립도 앞장

나복영(羅福瑛)
나복영(羅福瑛)은 1924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부터 서울에서 다녔고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1942년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47년 서울여자의과대학(현 고려의대)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학창시절 전쟁과 광복을 거친 선생은 졸업과 동시에 동 대학 해부학교실 조교가 되어 1989년 정년퇴임까지 우리나라 여성으로서 최초의 해부학 교수직을 마쳤다.

1949년에 같은 대학 병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박정규(朴貞圭, 서울의대 1943년 졸업)와 결혼하였으나 1950년 부군이 납북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1950년 피난지 부산에서 태어난 외동딸은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51년 부산 피난지에서 전시연합대학(서울의대, 연세의대, 서울여의대, 이화의대, 서울치대)에서 학생들 120명을 대상으로 해부학 강의를 하였는데 조교생활 3년차의 경력이었다. 당시 부산에서는 실습용 시체가 넘칠 정도로 많았으나 후일 서울 수복 후에는 실습용 시체가 학교 저장탱크에 한 구도 남아있지 않아서 학생실습을 위해 시체 12구를 철도편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운반하여 왔다고 한다.

1957년에 록펠러 재단의 장학금으로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1년여 연수를 한 선생은 해부학 전체에 관한 강의, 실습에 관한 교수법 강의에 참석하였고 학생들과 같이 시체를 만지며 꼬박 1년을 열심히 하여 연구 업적을 낼 수 있었고 논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동물실을 참배하였다는 선생의 술회는 그의 열의와 강인함을 수긍케 한다. 실험용 쥐를 상대로 작성한 연구논문은 당시 미국 학회에서도 발표하고 미국 해부학회지(Anatomical Record)에 게재되는 행운을 가졌다.

선생은 해부학교실에 들어간 연유를 어릴 때부터 남을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천성으로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 시대의 특수 사정(여성이 진학할만한 학교의 부족)으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한 것이므로 학생 시절부터 교수의 길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문학교 5년 3개월을 통해 가장 큰 학점의 무게와 더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해부학이야말로 해볼만한 보람있는 덕목이란 판단하에 해부학교실 문을 두드렸다고 술회하는 선생은 재학시절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의학 공부뿐 아니라 문학에도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주위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장가이고 한참 학생연극이 활발했던 광복 직후에는 학내 연극 공연에서 주역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고려의대 출신 의사들이 선생을 고려의대 역사의 산증인으로 첫 손가락 꼽는 데에는 그의 학문세계 뿐 아니라 많은 선후배, 제자들과의 인간관계에 있다. 선생이 해부학 교수로서 정년퇴임하기까지 선생의 교수실은 후배나 제자들에게 결코 높지 않은 문턱이었다. 예리하면서도 부드러운 성격은 선후배와의 상담역을 맡았다고 생각될 만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서울여자의과대학, 수도의과대학, 우석대학교 의과대학,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존폐의 위기를 겪은 73년(현재까지)의 역사를 가진 현 고려의대의 산 증인이기도 한 선생은 학교 존폐의 위기에서 적지 않은 혼란과 난관을 겪었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1989년 정년퇴임하였다.

1985년 학교가 안암동으로 신축 이전하게 되면서 부족한 건축비를 위한 모금책으로서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은 6년에 걸쳐 10억 5천만원을 모금하였다. 당시의 10억이란 큰 돈이었으며 국내외 동창들에게 2000장의 호소문을 직접 작성하고 발송하여 교우 1200명으로부터 목표액 10억을 넘는 기부금을 받아냈다고 한다.

1988년 고려의대 창립 50주년을 기해 출간한 `명륜반세기(明倫半世紀)'는 선생이 편찬위원장을 맡아 몇 명의 선후배 위원들과 함께 상처 많은 고려의대의 지난 날을 왜곡 없이 집필 출간할 수 있었던 것도 선생의 정확한 판단력과 추진력을 말해준다.

국제여자의사회 회원국으로서 1957년 창립한 대한여자의사회(현 한국여자의사회)의 창립회원인 선생은 1957년 회의 발기인으로서 그 초석과 발전에 앞장섰으며 1960년에는 38세의 젊은 나이로 한국여자의사회 제3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학회 활동으로서는 1973년 대한해부학회장, 1984 대한체질인류학회장을 역임했다. 사회활동으로는 1981년부터 4년간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어 나라일에 참여하였다.

1988년 고려의대 개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모교 명예를 빛낸 자랑스러운 호의상(虎醫賞)을 교우회로부터 받았고 정년퇴임시에는 국민훈장모란장을, 1973년에는 대한의학협회로부터 공로표창을 받았다.

가족으로는 딸 박경아(연세의대 해부학 교수), 사위 홍승길(고려의대 명예교수 생리학)이 있다.

집필 : 김동순(정신치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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