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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문화, 익명의 그늘
사이버 문화, 익명의 그늘
  • 의사신문
  • 승인 2012.05.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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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훈의 世風書風 〈5〉 

뇌의 기능을 분류한 것으로 현재 널리 인정되는 표준 모델은 1952년 폴 매클린(Paul D. MacLean)이 주장한 삼위일체의 뇌(triune brain)다. 그가 분류한 뇌의 세 영역은 생리학적인 원리에도 맞고 뇌의 진화 단계에도 일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중 가장 오래된 첫 번째 뇌 영역은 흔히 `파충류의 뇌' 혹은 R-복합체로 호칭되는 부분이고, 호흡과 본능적인 행동을 포함해 아주 기본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을 관장한다. 두 번째 뇌 영역은 변연계(limbic system), 즉 구(舊)포유류의 뇌로서 감정 반응을 관장한다. 위험이 닥쳤을 때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성욕, 식욕 등을 관할한다. 가장 최근에 생겼고 가장 발달한 세 번째 영역은 `신포유류의 뇌'로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이며 고등한 두뇌작용, 즉 논리적 추론이나 일화기억(逸話記憶) 등을 관장한다. 포유류만이 가지고 있으며 영장류, 특히 인간의 정신적 진화가 발달시킨 뇌의 영역이다.¹

그러나 이는 하나의 모델일 뿐이다. 인간의 뇌를 포유류의 뇌, 파충류의 뇌라는 식으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하나의 기능도 여러 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현대 신경과학자들은 알게 되었다. 뇌의 고차원적인 기능이 저차원적인 기능에 의존하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정신의학적 관찰이 fMRI 등 여러 가지 첨단 뇌 검사 방법으로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인 증거와는 무관하게 폴 매클린의 뇌 과학적 영역별 삼위일체론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자주 거론, 인용되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자아형성이나 인격과 정체성의 발달 과정에 관한 담론들을 모델화하여 설명하기 쉬운 편리함 때문이리라.² 인간은 다른 포유류보다 대뇌피질의 양을 크게 늘리고, 뇌 겉면의 복잡한 주름(groove)으로 표면적을 넓힌 진화적으로 한 단계 발전한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의 뛰어난 인지, 사고 능력은 가족, 공동체, 국가라는 사회적 단위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고 자신이 속하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인적, 물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인 도덕적, 윤리적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학습을 통해 평생 동안 물질적 육신과 비물질적 정신의 `자아(自我)'를 형성해 나간다. 그러므로 주체로서의 사회적 개인의 인격과 정체성은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며 학습과 주위 환경의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기준점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동적응적인 것이다.² 

오늘날 인터넷 혁명은 여러 가지 혁신적인 문화를 창조해왔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만큼의 어두운 뒷골목도 남겨두었다. 사이버 문화의 특성상, 사회적 인간관계가 부족한 은둔형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은 대체로 분노나 화를 참거나 조절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정화되지 않은 사이버 익명성은 그 자체로 참여도를 높이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반면에 허위사실유포 및 선동, 책임감이 없는 인터넷 문화, 마녀 사냥식의 집단 테러 등 다양하고 전방위적으로 그 폐해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악플러들에 의해 자행되는 무분별한 공격성은 특정 인물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서 조차 지금도 피해자를 양산해내고 있는 중이다.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며 쌓아온 인격적 가치, 신포유류의 뇌라는 옷을 벗어버리면 나타나는 것은 역시 원초적 본능의 파충류의 뇌, 충격적인 인격 파괴의 현장만 남게 된다.

사이버 문화의 익명성 문제점을 인격파괴성 후천적 정신질환인 치매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공통적이고 아주 비슷한 양상들을 볼 수 있다. 치매는 정신기능의 전반적인 장애가 주증상이며,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울증이나 인격 장애, 공격성 등에서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치료자인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치매는 일상의 밝은 빛 속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드러내주는 적외선램프 같은 것이 아닐까. 환자가 점진적인 뇌신경 손상으로 인해 전혀 다른 성격으로 바뀌었다기보다, 원래의 성격 안에서 균형점이 이동했거나 균형점 자체를 상실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지켜온 보호막인 정체성과 인격 즉 자아의 기능이 바뀌거나 사라진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감춰진 어두운 부분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여 세상과 연결되지 않는 관계의 끈, 제어장치가 끊어진 나 홀로 판타지를 연출하고 있을 뿐이다.

사이버 문화의 판타지, 마술사의 목적은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이름이라는, 형상이라는 내외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형성하고 보존해온 자아의 얼굴을 팽개쳐 버리면,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만의 세계에서 스스로 조차도 책임지고 감당해낼 수 없는 환각적 판타지의 세상에 들어서게 된다. 그것이 비록 익명의 세계 속에서 토해내는 자기만족의 나르시즘⁴이나 스트레스 해소성의 탈출구라 하더라도 현실 도피적인 마술적 상상과 무엇이 다르랴. 또한 피해자의 아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쏟아내는 언어의 무한 공격성은 치매 환자처럼 어둠 속에 가려진 나체꾼들의 습성화된 일상이 되고, 결국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인격을 황폐화시켜 버린다. 그리고는 마침내 실명(實名)의 밝은 거리에 나서게 되어서도, 굳어버린 습성과 황폐한 인격은 스스로 나체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익명성 문화의 뒤편에서 거친 말과 행동을 유발하는 파충류의 뇌, 자신을 가려 줄 옷 모두를 벗어 버린다면 남는 것은 창세기 성경의 아담과 이브의 낙원일까, 아니면 공룡시대 생존만을 위한 약육강식의 참상일까.

하루 종일 진료실에 갇혀 감정노동(emotional labor)에 지쳐버린 의사들, 인터넷은 평안한 쉼터이며 자유로운 소통과 행복한 나눔의 세상이다. 아름다운 판타지,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익명의 그늘에 가려진 우리들의 모습도 오늘은 한번쯤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참고문헌; 1) 칼 세이건; 에덴의 용(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 사이언스 북스 2006 
                2) 줄리언 바지니; Ego Trick, 미래인 2012
             3) 리처드 리키; 인류의 기원, 사이언스 북스 2005
             4) 크리스토퍼 래시; 자아도취적 문화(Culture of Narcissism), 1979
             5) 앨리 혹실드; 감정노동, 이매진 2010

박송훈〈법무부 대구소년원 의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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