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을 돌아보고 격을 높이는 기회를 가져보자
내 모습을 돌아보고 격을 높이는 기회를 가져보자
  • 의사신문
  • 승인 2012.05.1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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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56〉

“어휴, 어느 병원에서 시술 받았어요? 봉합이 잘못된 것 같은데요. 이런 상처에는 이런 방법보다는 다른 방법이 더 적합한데 시술 선택도 잘못된 거 같고요. 어느 병원에서 받았어요? 아, 그 병원이요? 거기 규모만 크지 실력은 하나도 없어요. 의사들이 경력도 짧고 별로에요. 처음부터 여기로 오시지 왜 거기로 가셨어요?”

종종 다른 의사를 험담하거나 다른 병원을 깎아내리는 의사들이 있다. 심한 경우에는 다른 곳에서 시술받은 것을 지적하거나 혼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환자나 환자 보호자 앞에서 다른 의사를 비방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양해야 한다.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도 이전에 치료받은 내용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전혀 고맙게 생각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욱 찜찜하고 걱정만 늘게 된다.

그 동안 의사들에게 교육을 진행하다 보니 환자들과 소통 잘 하는 의사들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되었다. 첫째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은 의사다. 잘 듣고 명쾌하게 설명 잘 하는 의사라고 할까. 그리고 둘째는 인격적으로 성숙된 의사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환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화가 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현명히 조율할 수 있는 의사다. 그렇게 볼 때 환자들과 소통 잘 하는 의사는 성숙된 인격을 지닌 커뮤니케이션 잘 하는 의사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필자 역시 처음 의사들을 교육할 때는 의사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높이는데 집중했었다. 그런데 실제 오랫동안 의사들에게 교육을 진행하다보니 진정으로 환자와 소통 잘 하는 의사는 커뮤니케이션 스킬만 좋은 의사가 아니었다. 물론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으면 다양한 환자의 특성에 맞춰 소통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많이 접하는 의사에게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곧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할 만큼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행동들이나 평소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어휘들은 커뮤니케이션 스킬 보다는 내면의 인격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곧 스스로 인격적으로 성숙되어 있는 경우에는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감정을 추스르며 적절히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지만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경우에는 화가 나는 것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후회가 남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을 진행하며 필자가 깨달은 것은 `소통 잘 하는 의사'는 커뮤니케이션 스킬 교육을 넘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스스로의 감정을 조율할 수 있는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교통사고가 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달라졌다. 요즘에는 그렇게 몰상식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쉽다. 격이 떨어져 보인다고 할까. 오히려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상황에서도 낮은 목소리로 점잖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숙된 사람'이라고 대접 받게 된다. 스스로의 감정을 잘 조율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않고는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평소 의식하지 않고 나타나는 사소한 언행들, 스스로의 감정을 조율하기 힘든 순간에 나오는 언행들이 그 사람의 참모습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안다는 것이다.

작년 연말 모임에서의 일이다. 모임에 참석하셨던 한 선생님께서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셔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평소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셨던 선생님께서 당시 나이 많은 주차요원에게 차를 늦게 가져온다며 불같이 화를 내셨던 모습이 지금까지 잊혀 지지 않는다. 평소 그 선생님의 중후했던 모습과는 너무 달라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으니까. 화가 나면 순간적으로 감정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연말이라 음식점에 사람이 많았고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 불가피하게 늦어지는 것임에도 대리 주차(Valet Service)를 맡긴 차를 늦게 가져온다고 불 같이 화를 내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큰 목소리로 “우리 차 어디 있어? 왜 빨리 안 갖고 와? 추운데 기다리는 것 안 보여?”하며 반말로 이야기하셨다.


         진정한 소통은 스킬 보다는 배려와 자기 감정 조율에서 비롯돼
         아래 사람에게 반말 또는 함부로 대하는건 자신의 격 떨어뜨려
         대접 받기 위해선 먼저 다른사람을 수평관계로 여기고 존중해야



더군다나 주차요원은 선생님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아 보이는 머리 하얀 할아버지였다. 그래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단지 거기 일하는 종업원이라는 이유로 반말로 명령하듯이 “아니, 아니. 저쪽으로 나갈 거니까 저쪽으로 돌아서 파킹해.”라고 손가락질하며 얘기하는 것은 누가 봐도 자기 스스로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이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실망스러운 눈으로 그 선생님을 바라보았던 것을 보면.

그렇다. 우리가 평소에 무의식중에 행하는 언행들이 바로 우리의 격(格)인 것이다. 격(格)이란 구체적으로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를 말한다. 곧 그 사람의 사소한 언행들을 통해 그 사람이 처해있는 환경이나 형편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늘 얼굴 보는 젊은 비서에게 조차 깍듯이 존대어를 쓴다고 한다. 사실 그러한 높은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돕는 나이 어린 비서에게 깍듯이 존대어를 쓰기는 쉽지 않다.

언젠가 한 대기업 회장님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리더의 자리에 오르니 모든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어서 겸손하기가 참 힘들다고. 곧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자리에서도 지위나 나이에 관계없이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은 성숙된 인격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반총장님 역시 의식해서 행한 모습이 아니라 평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 성숙된 인격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래서 필자는 병원에 강의를 갔다가 종종 원장님이 봉직 의사나 기타 병원 직원들에게 반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수천 년 기나긴 세월동안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야만 했던 유대인들을 결합시키고 지탱해온 원동력이라는 탈무드 속에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야 되는지 깨닫게 해주는 내용이라서 소개한다. 어느 날, 마을의 중요한 일을 상의하기 위해 촌장은 지혜와 덕망을 가진 여러 인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유명한 학자부터 마을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까지. 이튿날 여러 인사들이 촌장의 집에 모이게 되었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촌장이 초대한 것은 여섯 명인데, 일곱 명이 모인 것이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여섯 분만 초대를 했고, 식사도 6인분만 준비를 했습니다. 어느 분이 그냥 오신 것이 분명한데…”라는 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보더라도 그 자리에 반드시 초대받아야 하는 중요한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아, 미안합니다. 중요한 문제를 상의하신다기에 저는 그냥 와본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만 가보도록 하지요.” 그리고는 말을 마친 사람은 바로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사람은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초대를 받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겨 참석한 누군가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대신 자리를 떠난 것이다.

스스로의 대접은 스스로가 받는 것이다. 그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더라도 존경과 권위는 단순히 외적인 조건으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의사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 아무리 임상 경력이 많더라도 실제 환자들에게 존경받는 것은 외적인 조건이나 조직에서 부여받은 지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소 환자를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사소한 어휘 사용, 무의식중에 나타나는 평소 행동들이 모여 결국 그 의사의 격을 나타내고 존경심을 끌어내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TV에서 방영되는 의학 드라마 속에서 조차 의사들이 환자를 부르는 호칭이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의학 드라마 속 의사들은 환자를 `김영숙 환자' `박철수 씨' `903호 환자 보호자'로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방영되는 의학 드라마를 보니 의사가 환자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이제는 병원장님 이하 모든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OOO님'이라는 존대어를 쓰고 있었고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환자에게조차 `OOO님' `OOO님 보호자 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드라마는 현실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야기다. 그러나 드라마의 전반적인 내용은 현실과 다를 수 있을지라도 드라마 속에 나오는 표현들은 대부분 현실과 일치한다. 곧 이제는 실제로 많은 병원에서 환자를 `OOO님'이라고 부르고 있고, 환자나 보호자를 의사와 수평적 관계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이번 한주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한 단계 격(格)을 높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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