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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머리와 함께 따뜻한 가슴으로 환자를 대하자
냉철한 머리와 함께 따뜻한 가슴으로 환자를 대하자
  • 의사신문
  • 승인 2012.05.1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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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55〉

“자기 자신을 이끌려면 머리를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려면 당신의 가슴을 사용하라” 라는 말은 필자가 교육을 하며 늘 강조하는 말이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님은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평생을 그들을 위해 헌신하며 청빈한 삶을 살다간 의사다.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복음병원을 세우고, 그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보냈다. 또 나라의 어려움을 알고는, 청십자 조합을 만들어 한 달에 단 돈 60원(그 때 당시 자장면 값이 50원)이면 한 가족이 언제든지, 원래의 반값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병원비가 없는 환자들에게는 “내가 뒷문을 열어둘 때니 몰래 나가세요”라며 밤에 직원들 몰래 보내주고,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병원비 대신 달걀을 받는 일화는 참으로 유명한 얘기다.

이렇게 수많은 업적에도 청빈한 삶을 살던 그는 정년퇴임 시에는 집 한 채 없이 복음병원이 병원옥상에 마련해준 20여 평 관사가 전부일 정도로 무소유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가난한 시절, 병원에서 촛불을 켜고 진료를 보면서 “주님, 제발 오진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장기려 박사님. “의사는 진실과 동정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면 죽을 때까지 남에게 필요한 존재로 일할 수 있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정말로 진심을 다해서 환자를 대하였고 죽을 때까지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얼마 전 무대에 오른 `장기려, 그 사람'이라는 뮤지컬은 이러한 장기려 박사님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리베이트 문제로 힘들어 하는 한 의사가 책을 통해 장기려 의사를 만나게 되고 “나도 옳은 길을 가야 겠구나”라고 결심하는 것이 작품의 전반적인 흐름이다. 비록 무대에서 뮤지컬로 그려지고 있지만 분명 장기려 박사님의 모습은 우리 현실에서도 후배 의사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준다고 본다.

2009년에 출판된 `그 청년 바보의사'란 책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 책이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 준 것은 많은 사람들을 `바보'처럼 섬긴 한 청년 의사의 희생정신 때문일 것이다. “여러 논리에 밀려 위로 받지 못하고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합니다. 누구보다도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 병원에서 도움이 될 길과 하나님 앞에서 자유 할 수 있는 길을 위해 기도하면서 병원에 남는 길을 택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말은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겼던 글이다. 그가 레지던트 1년 차 때 돌봤던 한 난소암 말기 할머니는 “이 어린 의사가 날 살렸다”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고 하니 그가 어떤 의사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파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주고, 격려의 말을 해주며, 안아 주고 손잡아 주며 미소를 지어주었던 좋은 의사. 이렇듯 환자들을 가족처럼 생각했던 이 젊은 의사가 안타깝게도 33세 나이에 유행성 출혈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 때 그의 영정사진이 걸리기 전부터 장례식장은 물밀듯 밀려오는 조문객으로 들어설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 속에는 그에게 진료 받았던 환자들은 물론 병원 청소하시는 분, 식당 아줌마, 침대 미는 도우미, 매점 앞에서 구두 닦는 분도 계셨다고 한다. 그 한 분 한 분에게는 모두 그가 은밀하게 베푼 사랑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구두 닦는 분은 자신에게 항상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하는 의사는 그 청년 의사가 평생 처음이라며 그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자신을 찾은 환자들은 물론 모든 병원 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 `좋은 의사'였던 그 청년 의사는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많은 의사들에게 `좋은 의사'가 어떤 의사인지 귀감이 되고 있다. 좋은 의사라는 것이 단순히 진료 경험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한평생 참인술 펼친 장기려 박사·이태석 신부 일화에 깊은 감동
   의사, 생명 다루는 숭고한 직업 가진 존재로서 존경받아야 마땅
   한명 한명이 소명의식으로 임하면 의사단체 신뢰 더욱 높아질것



2009년 `한미 자랑스러운 의사상'을 수상했던 이태석 신부님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다. 그는 의대 졸업 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제가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지로 불리는 수단 남부에 위치한 톤즈라는 마을로 갔다.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주민들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흙담과 짚풀로 직접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웠고 병원까지 찾아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척박한 오지마을을 순회하며 진료를 하였다. 나병으로 심하게 발이 뭉그러진 주민들이 맨발로 다니는 것을 보고 직접 그들의 발을 일일이 종이에 대고 그려서 그들만의 신발을 제작해주었다. 안타깝게도 대장암 판정을 받고 2010년에 사망하였지만 그의 생전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우리가 진정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삶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전해준다.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의사의 전문 직업성(professionalism)이 강조되고 있다. 사실 그 동안은 의사라는 직업이 고도의 학문과 수련이 전제되는 직업인 탓에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식을 독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의료 방송과 어려운 의학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의 보편화 등으로 인해 이러한 지식 독점화 현상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특히 과거에 비해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고 있는 오늘날의 의료 환경 속에서 의사 개개인의 전문 직업성은 그야말로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발전하고 정보의 개방성이 높아질수록 전문직업인으로써 사회적 책무성과 스스로의 자율규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곧 의사의 역할과 위치는 사회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을 볼 때 의사의 권위는 의사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의사 스스로가 사회의 신뢰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 의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가 낮아질수록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위치 상실은 물론 환자들과의 관계도 멀어진다. 얼마 전 리베이트 문제로 몇몇 의사들이 처벌받는 모습을 보았다. 과연 환자들은 그런 의사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 동안 필자가 칼럼에서 강조했듯이 의사라는 직업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직업이다. 그래서 의학적 지식과 숙련된 스킬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 요구된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사'라고 하면 병원 밖에서도 `괜찮은 사람일 것이다'라고 신뢰하는 것은 이러한 기대에서 기인된다. 우리나라에 비해 사회적으로 더욱 존경받는 미국의 의사들은 직업 전문성이 매우 높다. 사회적 지위와 존경을 의사 스스로가 얻어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는 의사가 급여를 많이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누구 한 명 의사의 높은 급여를 갖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의사 스스로가 환자들에게 `좋은 의사'로 인식되어야 하며 사회적으로 `존경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의사 한 명 한 명이 소명의식을 갖고 `좋은 의사'가 되려고 노력할 때 결국 의사 집단 전체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다. 필자는 그 동안 의사들을 교육하며 `좋은 의사'를 참으로 많이 만나왔다. 종종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로 인해 일부 사람들이 `이제 의사도 믿지 못하겠다'라는 이야기도 하지만 그런 의사는 소수라는 것을 아직 많은 사람들은 안다.

그렇다면 의사 스스로는 이러한 오해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양한 매스컴 연구에서도 밝혀졌듯이 원래 자신이 경험한 현실과 매스컴 보도가 일치하면 일치할수록 더욱 그 내용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곧 내가 실제 만난 의사가 `좋은 의사'였다면 의사에 대한 일부 좋지 않은 뉴스를 접할지라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지만, 내가 실제 만난 의사가 `좋지 않은 의사'였다면 의사에 대한 좋지 않은 뉴스에 더욱 강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의사들 한 명 한 명 각자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며 그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환자가 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현실 속 의사의 모습이 결국 `의사'라는 전문 직업인의 전체 모습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의사들은 소명의식을 갖고 환자들에게 사랑을 실천했던 좋은 의사다. 흔히 죽음 이후에 자신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의사로 살면서 환자들에게 `좋은 의사'로 기억되며 존경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이것은 의학적 진단을 내릴 때는 냉철한 머리를,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따뜻한 가슴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번 한 주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가 되어보길 바란다.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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