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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철원 금학산, 연천 고대산 연계 산행기
산행기- 철원 금학산, 연천 고대산 연계 산행기
  • 의사신문
  • 승인 2012.04.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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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석 <노원·백내과의원>

궁예의 전설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바라보다

백인석 원장
어제는 봄이 곧 올 것만 같은 포근한 날씨더니, 오늘 새벽 날씨만 봐서는 겨울이 쉽게 물러갈 것 같지는 않다. 어둠 속에서도 하늘은 맑아 보이나, 옷 속으로 스며드는 공기는 몹시도 차갑고 바람이 거세다. 며칠 전 서울시의사산악회 총무님으로부터 3월11일 훈련팀 산행 계획이 있다는 전갈을 받고 동행하게 되었다. 평일 기상시간 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 보온병에 넣어 갈 뜨거운 물을 끓이고, 도시락을 준비한 뒤, 전날 밤에 꾸려둔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오전 6시50분경 집결지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 계신다. 오늘도 이 추위와 바람을 가르며 잠실 자택에서 집결지인 압구정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신 선생님도 계신다. 자전거는 버스 짐칸에 잠시 보관.

오늘 산행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 자리한 금학산(947m)과 이에 접해 있어 경기도 최북단인 연천군 신서면과의 경계에 위치한 고대산(832m)을 연계산행 하기로 했다. 금학산은 철원 지방의 대표적인 명산이며, 후삼국시대 궁예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산으로, 산의 형세가 학이 내려앉은 모양을 하고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고대산은 민통선과 근접해 있으나 들머리가 경원선의 종점인 신탄리역에 바로 접해 있어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비교적 쉽게 올 수 있는 곳이다. 산의 정상에 올라서면 철원평야와 철원 시내, 백마고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멀리 북녘 땅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오전 7시에 21명의 서울시의사산악회 훈련팀원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중간에 포천의 국도변 식당(전주해장국집)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한 뒤, 9시30분에 금학산 들머리에 도착했다. 금학산은 멀리서 보아서는 아주 높거나 커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 정상을 향한 능선이 보이지 않고, 경사가 심하며 산 전체가 눈에 덮혀 있었다. 들머리인 철원여중고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예상대로 차가운 날씨와 심한 칼바람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장비를 갖추고 금학산을 뒷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뒤, 금학체육공원을 거쳐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 초입에 햇빛이 비치는 부위는 눈이 녹아있었으나, 이내 눈이 덮인 등산로가 나타났고, 나무계단을 올라 얕은 능선 위에 올라서자 군 작전도로로 사용되어 진다는 비상도로가 나타났다. 이를 가로 질러 본격적인 오르막길에 접어 들었다.

올라갈수록 경사는 더욱 심해지고 얼어붙은 눈길 때문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라야만 했다. 능선길이나 평지가 없이 오르막길만을 계속 오르다보니 이내 몸은 땀으로 젖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잠시 후 금학산의 대표적인 바위인 매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매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모양새 이지만 뒤쪽으로 펼쳐진 철원평야와 동송 읍내는 탁 트인 장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심한 오르막길은 계속 되었고 오르는 내내 곳곳에 참호와 토치카가 연속적으로 보여 이곳이 군사지역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약 2시간을 오른 뒤 비로소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 올라서니 서쪽으로는 오늘 가게 될 고금능선과 보개봉, 고대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포천의 지장봉이 멀리 보이며, 뒤쪽으로는 철원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보인다. 정상은 군 헬기장으로 사용되는 콘크리트 시설물로 인해 수목이 없어 전망은 아주 좋았으나 바람이 심해 벗어 놓은 배낭이 밀려다닐 정도였다. 뒤에 오시는 분들을 기다리는 동안 칼바람에 땀이 식으면서 추위가 심해져 보온복을 꺼내 입고 약간의 정상주를 음미하였다. 실제 정상석이 있는 조금 위쪽의 군 시설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뒤 고대산을 향해서 하산을 시작하였다.


들머리에 도착하니 차가운 날씨와 심한 칼바람이 우리를 맞아
금학산서 고대산으로 이동 중 고생하는 장병들 보니 마음 찡해
즐거운 동료들과 조용한 겨울산행의 흥취 만끽한 행복한 하루


다음 목표지인 고대산까지는 능선길이 아니라 금학산 정상에서 대소라치라는 고개 근처까지 심한 급경사로 이루어진 하산길을 내려간 뒤 다시 오르막을 한참 올라 보개봉을 거쳐서 고대산 정상까지 가야한다. 내리막길 내내 많은 눈이 쌓여 얼어 있었고, 중간중간 경사가 심한 구간이 있어 조심히 내려와야 했다. 하산길을 따라 옆으로는 정상의 군시설에 물품을 보급하기 위한 모노레일과 급수관이 설치되어 있었고, 중간에는 펌프장도 보였다. 하산길 도중 몇 명의 군인 장병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아이젠, 심지어는 장갑도 없이 산을 오르고 있었고,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일행을 바라보는 어린 그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찡해 왔다. 비록 도움은 못 주지만 마음속으로 몸 건강히 군생활을 마치고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빌어 주었다.

급경사를 다 내려와서 고대산과 경계를 이루는 대소라치(큰 소나무가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개에 도달했다. 거기에는 대전차 장애물과 방호벽 등의 군 시설물이 있어, 덕분에 바람을 피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둥그렇게 둘러 앉아서 왁자지껄하게 각자 가지고 온 음식물을 나눠 먹었다. 갖가지 음식들이 등장한다. 다음에는 젓가락만 가지고와도 될 것 같다. 그 와중에 회장님은 버너와 대형 코펠에 라면을 끓여서 나누어 드시고 계신다. 한 입도 못 얻어 먹었다.

점심 식사와 휴식을 마치고 고대산을 향해서 다시금 오르막을 올랐다. 하지만 금학산 보다는 경사가 덜 심하고 바람도 많이 잦아들었고 산중에는 우리 팀밖에 없어 겨울산행의 흥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겨울 산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겨울 산중은 너무나 조용하다. 사람들은 추워서 많이 찾지 않고, 물은 얼어붙어 소리를 내지 않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오직 바람소리만이 들린다. 동행들과 이런 저런 얘기 하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르다 보니 보개봉에 도착했다. 보개봉(752m)은 금학산과 고대산의 중간쯤 위치하며, 남쪽으로 난 등산로를 통해서 지장봉에 도달할 수 있다. 계속되는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드디어 고대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곳 고대산 정상은 사방에 축대를 쌓아 헬기장으로 조성하였고, 남쪽 끝에 있는 정상석에 고대봉이라는 글씨가 음각 되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도 널찍하게 펼쳐진 오대쌀의 고향 철원평야와 저 멀리 북으로 북녁땅이 희미하게 보였고, 노동당사와 백마고지가 한눈에 들어 왔다.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격전지 중 한 곳인 백마고지는 말로만 듣고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북쪽으로 장애물이 없이 트인 나즈막한 봉우리였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격렬한 전투를 상상하면서 지금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고대봉으로부터의 하산 길은 심한 경사길은 아니었지만 삼각봉(830m), 대광봉(827m)을 거쳐 산행중에 가장 스릴이 넘쳤던 칼바위 암릉지대를 지나 약간은 지루한 하산 끝에 고대산 날머리에 도착하였다. 고대산 입구는 경원선의 종착역인 신탄리역과 바로 연해 있었다. 현재는 작년 수해로 초성철교가 유실되어 열차운행이 중단된 상태라 인적이 없고 쓸쓸해 보였지만, 3월말부터 운행이 재개된다고 한다. 주위가 녹색으로 변하고, 햇볕이 쨍쨍 비출 때, 다시 와서 그늘에 앉아 눈부신 풍경을 바라보는 한적함을 상상해 본다.

고대산 입구에 오후 5시에 도착하여 총 7시간30분에 걸친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 많아 힘들었지만, 차가운 칼바람, 눈으로 덮인 산길, 고요한 산중, 즐거운 동료들과의 동행 등. 겨울산행의 즐거움을 한껏 맛 볼 수있는 산행이었다. 모두들 다리는 뻐근해 하고, 얼굴들은 햇빛과 눈에 반사된 빛, 차가운 바람 때문에 빨갛게 달아 올라 있었지만, 흡족함이 배어 있는 표정들을 볼 수 있었다.

귀경길에는 임진강변에 있는 민물매운탕 집(어부집)에서 잡어매운탕으로 다함께 맛있는 식사를 한 뒤 아침에 출발했던 자리에 도착했다. 서로들 오늘 산행의 수고를 격려한 뒤 다음 산행을 약속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백인석 (노원·백내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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