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약리학자 - 이광수
세계적인 약리학자 - 이광수
  • 의사신문
  • 승인 2012.03.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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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 바탕 약리학 연구 새로운 방향 제시

이광수(李光秀)
이광수(李光秀)는 1918년 이승경(李承慶)과 부인 김(金)씨 사이의 3남 중 2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광수는 1935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여 1941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 동 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약리학교실에서 오자와(大澤) 교수의 지도하에 194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복과 더불어 경성제국대학은 서울대학교로 바뀌었고 이광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에서 2년간(1946∼48) 조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1949년 더 큰 무대에서 연구 하고픈 열정을 억누를 수 없어 청운의 꿈을 안고 당시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

미국에서도 이광수는 실력을 인정받아 첫 임지인 제퍼슨 의과대학에서 강사(1950∼51)와 조교수(1952∼54)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1954년 의화학(medicinal chemistry)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제퍼슨 의과대학에서 부교수(1954∼56)를 역임한 후 콜롬비아 의과대학으로 옮겨 부교수(1956∼57)로 재직 하였다. 이때 이광수는 이미 상당한 학문적 업적을 쌓았고, 그 업적을 인정하여 1957년 뉴욕주립대 의대(Downstate Medical Center) 약리학교실 교수로 취임하였고 여기서 그는 1982년 까지 재직하였다.

뉴욕주립대 의대를 떠날 무렵 1년간은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재직한 바 있다. 이광수는 화학분야의 이태규 교수(유타대학교)에 이어 한국인으로써 두 번째 미국대학 교수이고 의학분야에서는 첫 번째이다. 뉴욕주립대에서 5∼6년 근무하면서 이광수는 이미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다. 그 결과 1963∼64년에는 하이델베르크 의과대학의 초청으로 동 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냈고 이때 그는 국제적으로 그의 학문적 연구역량을 펼쳤다. 그리고 1978∼96년에는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주임교수를 역임하면서 국내 후진 양성에도 힘써왔다.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이광수는 미국연방정부의학연구심사위원(1961∼71), 미국약리학회 편집위원(1958∼70), 국제약리학회편집위원(1959∼71), New York Academy of Science 회원(1960∼71)을 역임하면서 미국의학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광수는 104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였다. 이광수 연구의 특징은 `한국에서 공부한 약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 미국에서 첨단학문으로 등장했던 생화학을 강심제의 작용기전 규명에 접목하여 심장약리학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광수는 강심제 digitalis의 강심작용 규명에 흥미를 가졌고 이를 심근 에너지 대사 관점에서 연구해 보고자 하였다.

이광수는 digitalis가 심근 세포의 에너지 생성에 영향을 주어 심근 수축력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이를 검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digitalis가 ATP 생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대신 심근 세포막에 있는 Na-K-ATPase를 억제함을 세게 최초로 발견하였다. 이 효소의 활성억제로 세포내에는 Na 농도가 증가되고 이로 인하여 Na/Ca 교환이 장애를 받아 세포내 Ca 농도가 증가되어 심근 수축력이 증가한다는 강심 작용 기전을 제시하였다. 당시로서는 생화학에 근거한 획기적인 연구 결과여서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광수의 생화학을 바탕으로 한 약리학 연구는 약리학 연구의 새로운 방법, 방향 그리고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광수가 뉴욕주립대 의대 약리학교실에 있을 때 한국으로 부터 여러 후학들이 그곳에서 공부하였다. 대학원에 입학하여 PhD를 받은 사람은 강두희(연세대 의대 생리학 교수 역임), 유대현 (오츠카 부사장), 차영남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연세대 의대 약리학 및 인하대 의대 약리학 교수 역임)이 있다. 그리고 서울대 의대 약리학 교실의 홍사악, 박찬웅, 김명석 그리고 조선대 의대 임동윤이 이광수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귀국하였다. 서울대 의대 정명희는 1년 간 연구한 후 이광수의 주선으로 동 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생화학 교실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PhD를 받고 귀국하였다.

이광수는 첫째 부인으로부터 1남, 둘째 부인으로부터 1남 1녀를 두었으며 큰 아들은 미국에서 피부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이광수는 200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운동장애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2006년부터는 수원에 있는 노블카운티에서 생활하다가 2009년 별세하였다.

집필 : 정명희(서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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