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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제125호 신인상 수상작 - 고자촌(鼓子村)
`수필과 비평' 제125호 신인상 수상작 - 고자촌(鼓子村)
  • 의사신문
  • 승인 2012.03.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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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서울시의사회 수석 감사>

김인호 서울시의사회 수석 감사(김인호소아청소년과의원장)가 수필문예지인 `수필과 비평'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2년 3월호(통권 125호)를 통해 `고자촌'이라는 수필로 문단에 정식 등단했다.

김 감사는 수상소감을 통해 “감칠맛 나는 수필 한편을 읽고난 후 한참을 멍해져 안개속 같은 여진에 빠질 때가 있다. 그것은 숙련된 프로페셔널리즘이 보여주는 감동깊은 연주이거나 강렬한 그림, 객석을 떠날 줄 모르는 한편의 잔잔한 영화를 본 후의 잔상과 같다. 이제 그 심오한 영역의 늪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담그려 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 감사는 “이 시점에서 다짐하건대 `내 수필 중 딱 한문장만이라도 독자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길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깊이 고뇌하고 노력하여 보답하겠다”며 단단한 각오를 내비쳤다.

본지는 의사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을 격려하고 문학에 관심이 많은 전국 독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신인상 수상 수필을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주]

세째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아쉬움 떠올라

김인호 감사
결혼 35주년날 저녁이다. 멋진 이벤트를 계획하고 예약한 식당으로 차를 몰고 가 있는 내게 아내가 느닷없는 엉뚱한 제안을 한다. “여보, 우리 거기 한번 가 봐요. `짱구 만두집!'”

나는 그 옛날 만두집이 금세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좋지, 하지만 예약해 놓은 식당은 어떻게 한담. 그럴 마음이었으며 미리 전화라도 해줄 일이지, 하는 생각에 속이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내색할 수 없다. 오늘은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이 아닌가.

내 속은 아랑곳없이 아내는 더 크게 회상의 날개를 펼친다.

“힘들었던 그때 말이에요. 그 집은 우리 단골 외식집이었잖아요. 이제 그 동네가 어떻게 변했을까도 궁금하고…. 오늘 같은 날 양식보다는 짱구만두에 단무지가 어때요, 더 좋잖아요?”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두 살 터울의 작은 애는 시도 때도 없이 밖으로만 나가려 하던 무렵이었다. 군의관을 마치고 소아과 전공의를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빠듯했다. 하루 건너 당직이어서 집에 돌아오면 곯아떨어지기 바빠 식구들과 어울리는 건 겨우 한 달에 한 두번 뿐, 그것도 토요일에나 아이들과 함께 조금 여유롭게 저녁식사를 했다. 그때 간 곳이 아파트 단지 앞에서 버스로 세 번째 정거장 앞 고갯길에 있던 분식집이었다. 음식 맛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딱 들어 맞아 주말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었다. 들창코 주인아주머니는 마음이 넉넉했다. 우리들이 들어설 때마다 “고자촌 가족이 납시었네”하는 인사로 반갑게 맞고 겨울철이면 따뜻한 우동국물에다 밥도 말아주는 등 아이들을 퍽 살갑게 대했다. 아이들도 “안녕하세요?” 답인사를 하면서 집에서보다 더 편안하게 밥을 먹었다. 메뉴라고 해 봐야 짱구만두, 우동, 오무라이스 정도였지만 우리에겐 즐거운 만찬이었다.

어느새 30년이 지난 그 힘들었던 시절을 아내는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있는 모양이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건설 붐이 한창 일던 때였고 서울시가 강북의 경계를 벗어나 강남 개발을 시작한 때였다. 지금의 강남고속터미널 근방 신반포 주공아파트를 건설하여 분양하는 대규모 국민 주택 보급 프로젝트가 발표될 시점으로 우리나라가 부흥의 기치를 내걸 때였다.


결혼기념일 맞아 아내가 30년 전 집 앞 만두집 찾아보자 제안해
오랜만에 주인 아주머니의 “고자촌 가족 납시었네” 인사에 감회
군사정권 인구억제와 현 출산장려 정책 통해 세상의 변화 느껴



`고자촌' 아파트를 분양받는 우선 조건 때문에 한두 자녀만으로 단산 수술을 받았던 신반포 단지를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고자촌이라고 불렀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면 고자와 마찬가지란 말이었을까? 군주시대 내시처럼 성적 장애자로 보이는 흉한 이름을 그들은 별칭처럼 아무렇지 않게 불렀지만 입주자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집 없는 서민의 애환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인구증가 억제정책을 서민 아파트 입주자에게 강요하는 주택 플랜이 통했던 그 시대는 군사정권 특유의 일방적인 명령하달식 사회였다. 자원부족과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인구 억제정책을 시행하여 마침내 여성 1인상 합계 출산율이 1960년대 6명에서 1995년 1.65명으로 줄었다. 이제는 출산율 1.08명으로 홍콩,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다음으로 세계 네 번째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으니 우리 가족도 고자촌 입주로 큰 기여를 한 셈이다.

근래에 와서는 인구증가 억제책보다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책이 필요해졌다. 육아휴직 급여를 올리고 3세 미만 자녀를 둔 근로자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육아 휴직' 등을 도입하여 OECD 평균치인 1.6명까지 올려야겠다는 것이다. 가족계획용으로 임의 선택을 강요했던 출산억제 주택분양 조항도 이제는 다자녀 우선으로 변했다. 그러나 요즘 사회상의 변모는 아무리 출산을 장려하는 유인책을 펼쳐도 젊은 세대 특히 직장 여성들이 받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는데 필요한 시간과 정력을 자신들의 인생을 즐기고, 자아실현 요구를 키우는 데 투자하겠다고 가치관이 바뀐 것이다.

지금 `고자촌'은 재개발한다고 인근에 공사파일기둥이 잔뜩 올라가고 있다. 아마 `다산촌'으로 이름을 바꿔 불러야 할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옛날 집터 앞에 내려 주위를 걸으며 회상에 잠겼다.

“여보! 그때 둘째가 유치원을 빼먹고 여자애들과 소꿉놀이 하던 곳이 저 모퉁이에요. 그날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가 오질 않았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던지 원….”

그렇게 뛰놀던 애가 벌서 그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30년 전 이 고자촌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뛰어놀던 추억이 향수가 되어 가슴이 아련해진다.

“아주머니, 우리 알아보시겠어요?”

짱구집은 제법 근사한 홀에 종업원이 많은 칼국수집으로 변해 있었는데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의 들창코가 낯이 익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한동안 기억을 더듬던 아주머니가 “아니, 그때 그 고자촌 가족이시네”하고 반색을 하며 손수 자리를 마련해준다. 또렷하게 우리를 기억했다.

“그때 토요일마다 만두 파티하던 두 아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컸겠네요”하고 세월까지 가늠해준다. 두 아들이 장가를 가서 자식들을 얻었다는 것과 가족이 모이면 뜨뜻한 우동국물 같던 아주머니의 정을 이야기한다며 결혼기념일인 오늘 여기를 찾아온 사연까지 아내가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래. 결국 아들 형제로 끝이었군요. 딸아이가 있었으면 했었는데…”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머니는 그 당시 셋째 딸을 가졌으면 했던, 그래서 집사람의 단산수술을 후회했던 우리들의 아쉬움을 대신 떠올려주고 있었다.

김인호 <서울시의사회 수석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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