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미생물학 교수 - 유일준
최초의 미생물학 교수 - 유일준
  • 의사신문
  • 승인 2012.02.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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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리세균학 초석·발진티푸스 연구 획기적 성과내

유일준(兪日濬)
유일준(兪日濬)은 1895년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 옥정리에서 유진영과 우봉 이씨 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승여(升汝), 호는 포산(包散)이었다.

유일준이 8살 때 콜레라가 전국에 창궐하였는데 부친 유진영은 자본을 대고 그의 친구 한우동은 의술로 봉사하여 안성 인근지역 환자와 가족을 긍휼하는데 거금을 쾌척하였다. 그에 대한 칭송비의 설립과 아울러 유씨 집안의 이야기들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한 선심을 발휘한 흔적이 남아있다.

어린 유일준은 신음하는 환자에 대한 고통과 구제하려는 의료진의 집념 그리고 손 쓸 틈도 없이 죽음으로 실려나가는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가졌으리라 생각되고 그가 후일에 의료계에 뜻을 세우는데 큰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1913년 경성보성고등보통학교(현 보성고)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의학강습소에 입학하였다. 3년 후 이 강습소는 경성의학전문학교로 개편됨과 더불어 제2회로 졸업하였다.

1918년 졸업한 후 교토제국대학 의학부 병리학교실에 1년간 연수 후 이듬해 3.1 독립운동으로 전국이 들끓는 중에 서울로 돌아와 조선총독부 산하 진주 자혜의원 소아과에서 3년간의 근무를 시작하였다. 1921년 독일 후라이부르그대학 병리세균학 교실 우엔후트 교수에게 사사하여 1926년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유일준은 1924년 일시 귀국하였는데 당시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 국내에서 취득한 박사학위만 인정한다는 방침을 고수하여 부득이 다시 1924∼25년까지 일본 게이오대학 의학부 병리세균학교실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결국 독일과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면서 전출하는 시가 교수의 강좌를 책임지게 된 유일준은 1926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세균학 교수로 취임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기초의학교실(미생물학, 위생학)교수가 된다. 유일준의 학문적 성취에 대하여는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1단계는 독일 후라이부르그 대학 시절 연구성과로 ①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및 이질의 변이성에 관한 연구 ② 폐렴균에 대한 지견보유 ③ 특이성 침강반응에 대한 연구 ④ 장티푸스 보균자에 대한 세균학적 및 혈청학적 연구 ⑤ 결핵진단에 대한 지견 보유 ⑥ 장기 단백질 특수성에 관한 연구 등이다.

이후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향후 3년동안 연구한 업적으로는 ① 납두균 효소에 대하여 ② 저온 혈구 응집소의 혈청학적 지견 보유 ③ 키닌 용혈작용과 유지방과의 관계 등이 있다. 이 외에 생애 마지막 2년 전부터 특히 발진티푸스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① 몸이 체내에 있는 발진티푸스 병독의 실험적 연구(1931) ② 발진티푸스의 세균학적 연구(1931) ③ 발진티푸스의 인공배양, 조직배양을 응용한 신 배양법에 대하여(1932) ④ 발진티푸스 병원체의 시험관 내 배양시험 등을 국내에서 발표하였다.

그는 이들 논문을 정리하여 국제학술지에 투고할 원고를 정리하던 중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기회가 무산되고 마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1930년 조선의사협회가 창립되어 회장에 박계양, 간사에 유일준이 활동하였다. 같은 해 조선의사협회 발행 `조선의보' 제1권 1호에 `발진티푸스 병원에 대한 한 고찰'과 제2권에 `발진티푸스 병원체의 인공배양' 등의 2편이 실려있다.

유일준은 1932년 갑작스럽게 서거했는데, 동아일보(1932년 8월 14일자)에 `세균학 권위, 유일준 박사, 수영 중 한강서 익사, 의학계의 일대 손실'이라고 보도되었다. 지금도 그 곳 노인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인근향리와 전국에서 모인 장례행렬이 십리에 늘어져 있었다고 하고 안성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회상한다.

유일준은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발령을 받은 후 성실하게 후배 양성에 노력하는 반면 다수의 연구실험을 통하여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특히 그가 연구하던 발진티푸스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인 독보적 경지에 이르러 국제학술지에 발표하여 획기적인 성과를 공인받을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처지에 미쳐 세상에 펴 내지 못하고 사장되고 마는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선생의 부친 유진영은 장례식 후에 모아진 비용을 아끼고, 본인 집안의 일체 경사를 생략한 비용과 일부 가산을 정리하여 부운장학회를 설립하여 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안성지역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집필 : 이규식(원광보건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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