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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제8번 C단조 작품번호 110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제8번 C단조 작품번호 110
  • 의사신문
  • 승인 2012.02.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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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과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위로

쇼스타코비치는 1938년에서 1975년까지 15개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했다. 15곡의 교향곡과 더불어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한 이 곡들은 작곡된 시기의 러시아 사회상이 잘 반영되어져 있다. 그는 구소련 독재 권력자들의 압력에 굴복하는 듯 하면서도 자신의 도덕적 의지와 예술적 사상을 작품 속에 스며들게 하여 양극의 대립 속에서 위대한 음악적 걸작을 남긴 시대적 비운의 천재였다.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변화가 많아 서정적인 것, 극적인 것, 이성적인 것 등 다양하다. 표현은 간결, 명쾌하면서 그리스 선법, 유태 선법, 러시아 민요 선법 등을 사용하는 독창성을 보였다. 15곡 중 1966년 이후 만년에 작곡된 제11∼15번은 후기 교향곡과 같이 `생과 사'를 주제로 한 원숙한 작품으로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곡처럼 철학적 모색을 탐구하고 있다.

1960년에 작곡된 제8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비에트 당국의 요청으로 영국과 미국 연합군의 폭격으로 황폐화된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하던 중 받은 충격으로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를 생각하며'라는 이름으로 작곡된 작품이다. 이 작품 안에서 그는 자전적인 요소를 넣었는데 이러한 동독 폐허의 참상을 보고 구소련을 위한 곡을 쓰라는 명령을 내린 권력자들에 대한 역설적인 왜곡을 이 곡 속에 집어넣었다.

작곡 당시 그는 친구 이작 글리크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의 본질을 이렇게 언급하였다. “이 작품은 이름의 이니셜인 DSCH(Dmitri Schostakovich)를 주제로 사용하였으며 이미 작곡된 교향곡 제1, 5, 10번, 피아노삼중주곡, 첼로협주곡 제1번 및 오페라 〈K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등에 등장하는 혁명적인 노래인 `비탄한 속박으로 괴롭힘을 당함'의 주제를 인용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이 곡을 쓸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하였다. 친구인 레프 레베딘스키는 쇼스타코비치가 당시 자신에 대한 정치적 압력에 의해 강요당하는 계획된 자살에 앞서 이 작품을 자신의 묘비명으로 써달라고 제안하였던 것을 회상하였다. 이 곡은 황폐화된 드레스덴을 빗대어 과거 체험을 상기시킨 자서전적 작품으로 전 악장을 중단 없이 연주하게 된다.

△제1악장 Largo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적 서명인 DSCH 주제로 시작하면서 이 주제는 계속 반복된다. 그의 교향곡 제1번을 인용하고 있다. 제1바이올린은 마치 희생자들의 곡을 묘사하고 있다. 자유를 뺏기고 억압받고 구속된 쇼스타코비치의 심정이 악장 내내 매우 어두운 분위기로 그리고 있다. △제2악장 Allegro molto 이 악장은 전쟁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드레스덴에 가해진 폭격의 참화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매우 빠르며 DSCH 주제가 배경에 선율로 깔리면서 두드러진다.

△제3악장 Allegretto 이 악장의 빠른 템포는 죽음의 춤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죄수들이 그들이 곧 묻히게 될 무덤 앞에서 왈츠를 추다가 곧 총격에 의해 쓰러져간다는 것이다. 어떤 평론가는 시민들이 술을 마시며 그들의 슬픔을 달래는 것이라고도 한다. 혹은 쇼스타코비치가 누릴 수 있었던 극히 짧은 행복한 순간들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왈츠 주제는 DSCH 주제를 근간으로 한다. 첼로 솔로는 울부짖으며 바이올린은 암시적인 색채로 연주된다. 첼로협주곡 중 한 부분이 인용되고 있는데 이 곡에서 바이올린이 그 부분을 연주한다.

△제4악장 Largo 쇼스타코비치는 이 악장에서 그를 체포하기 위해, 혹은 죽이기 위해 한밤중에 그의 집에 들이닥쳐 거칠게 문을 노크해대는 KGB 요원들을 네 개의 현악기가 3박자로 강력하게 통일하여 연주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폭발적 표현 중간 중간에는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상실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섹션이 포함되어 있다. 교향곡 제10번과 혁명가요인 `비탄한 속박으로 괴롭힘 당하며'가 인용되고 있다. △제5악장 Largo 마지막 악장에서 DSCH 주제는 두 개의 반음 위의 푸가토로 분리된다. 이 악장은 곡의 첫 번째 부분으로 순환되면서 마치 모든 것이 소진되어 지친 듯 호흡이 긴 음표로 마무리된다.

■들을만한 음반 : 보로딘 사중주단[EMI, 1975]; 베토벤 사중주단[Melodyia, 1965]; 타니예프 사중주단[Melodyia, 1968]

오재원〈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클래식이야기 전편은 〈필하모니아의 사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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