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유명해 죽을 뻔 했던 의사 - 순우의(淳于意)
이번에도 엄마가 이야기할 거야.
“아빠, 엄마가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엄마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요.”
얘들이…. 아빠가 훨씬 재미있게 이야기해. 자, 엄마가 이야기 시작할게. 오늘의 등장인물은 창고지기를 하다 얼떨결에 의사가 된 `순우의'라는 사람이야. 순우의는 `태창'이라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아주 큰 창고를 맡고 있었어. 그래서 순우의를 `창고를 관리하는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창공, 또는 태창공이라고 부른데. 순우의가 창고지기로 일할 때 이야기야.
순우의는 누구보다 일찍 나오고 늦게 퇴근하는 아주 모범적인 일꾼이었다고 해. 창고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몇 가마가 언제 들어와서 언제 나갔는지 모두 꿰고 있었지.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말했대.
“어디, 순우의만큼만 해봐.”
그러다보니 몇 개월 만에 창고를 관리하는 최고 우두머리가 되었어. 이때부터 창공이라고 부르게 되지.
그러나 열심인 사람에게는 적들이 들끓어. 창공이 지나가면 욕하며 수군거리니 창공도 창고를 지키는 일이 따분하다고 느끼게 되었지.
그때 창공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되살아났다고 해. 그러나 어느 누구도 창공에게 의술을 가르쳐주지 않았어.
“엄마, 공부 잘 하면 의사가 되면 되잖아요?”
글쎄다. 그렇다면 좋겠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할 때도 말했잖아. 그때는 아빠가 의사이어야 아들도 의사가 되는 시대였어. 아빠가 아무도 모르는 비법을 아들에게 전수시켜 아들이 배우면 의사가 되었지.
그런데∼, 창공의 아빠는 의사가 아니었는가 봐.
“엄마! 창공의 아빠는 어떤 일을 했어요?”
무엇을 했을까? 창고지기였을까. 그런 기록은 없네. 창공은 의사가 되고 싶어 멀리 공손광이라는 의사를 찾아가 가르쳐 달라고 떼쓰기도 했대.
그런데 어느 날, 창공에게 기회가 왔어. 엄마가 말했잖아.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적이 일어난다고….
그 시대에 유명했던 의사로 양경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양경은 일흔 살이 넘도록 아들이 없어 비법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지.
“이 비법을 누구에게 알려주지?”
그런데 양경은 창공이 성실한데다 똑똑하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어.
“창공이 정말 그렇게 똑똑해?”
양경은 창공을 불러 떠 보기로 했어. 어∼? 창공은 또렷한 눈빛으로 하나를 가르쳐 주니 열을 아네. 그런데다 다음 날 새벽, 빗자루 소리가 나서 양경이 잠을 깨니 창공이 이미 마당을 쓸고 밥까지 해놓았잖아. 한 마디로 성격마저 좋았던 것이지.
양경은 창공을 불렀어.
“너, 내 양아들 하지 않을래?”
그때부터 양경은 창공을 양아들로 삼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신비한 의술을 하나하나 손으로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가르쳐 주었다고 해. 의과대학도 6년인데 말이야. 창공은 단 3년 만에 졸업했다고 그러네. 그만큼 창공이 똑 소리 날 정도로 똑똑했다는 말이지.
창공은 드디어 실력 있다고 소문난 의사가 되었어. 낯빛만 봐도 병을 알아채 사람이 죽을 것인지 금방 알고, 이때까지 없던 새로운 약을 개발해 쉽게 치료하였다고 전하지
중국 제나라 창고지기 장관 출신 의술 좋아해 `양경'의 제자돼
의술로 유명해지자 모함으로 사형 위기…딸의 간청으로 풀려
창공은 위암에다가 대동맥이 늘어나는 병, 요즘 류머티즘이라고 부르는 어려운 병까지 술술 치료했다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지.
“창공이 스승 양경보다 나아.”
이렇게 소문나 아픈 사람들이 몰려들어 창공은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어.
그런데, 그때부터 창공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어. 갑자기 창공이 집을 떠나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밤, 창공은 잠을 자다 가위눌려 벌떡 일어났어.
“어, 내가 더 이상 잘 고친다고 소문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이름난 의사의 마지막이 모두 좋지 않았거든. 편작 같은 의사도 태의령이 자신보다 이름나고, 의술이 뛰어난 것을 시기해 죽여버렸잖아.
“엄마, 태의령이 뭐예요?”
음∼,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 주치의라고 할까. 창공은 아픈 사람이 몰려올 때마다 자신도 편작처럼 죽을까봐 겁났던 것 같아. 그래서 창공은 일부러 아픈 사람들을 멀리하고 이곳, 저곳으로 도망을 다녔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그날도 몰래 도망 다니는데 누가 창공을 고발했대요. 의사가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지 않고,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이야.
“창공이 아직도 창고지기인 줄 알고 있습니다.”
결국 창공은 사로잡혀 꽁꽁 묶여 서울로 끌려오게 되었어,
참, 그러고 보니 편작은 아픈 사람을 너무 열심히 진료하다 죽었고, 창공은 너무 게을리 하여 죽게 된 것이잖아.
그런데 창공에게는 딸이 다섯이나 있었다고 해. 그런데 막내딸이 아버지가 죽는 것을 그냥 볼 수 없었어. 황제에게 아버지의 죄를 대신해 딸이 평생 여종으로 살겠다고 글을 올렸어.
“아버지가 잘못했다면 제가 죄값을 치르겠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황제는 “요즘 세상에 이런 딸도 있구나!” 하며 기특하게 생각했어.
“그럼, 창공이 놀지 않고 아픈 사람을 돌보았다는 기록을 적어오라.”
드디어 창공이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날이 되었어. 하늘은 대낮인데도 어둡고 추적추적 비까지 내렸다나.
“번개도 쳤을 거예요. 엄마?”
우리 윤이가 추임새를 잘 넣어주네. 호호∼.
창공은 자신이 치료했던 사람들에 대해 조곤조곤 말했어. 창공이 말하는 이름이 너무 많아 황제가 말을 끊었어.
“누군가 창공이 죽는 날짜를 틀리게 말했다고 돌팔이라고 하던데….”
“의사가 일러준 대로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감정을 조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공이 대답하자 황제는 더욱 궁금했어.
“제나라 왕이 아플 때도 당신이 치료하지 않고 도망갔다고 하던데….”
“제가 왕을 낫게 하면, 벼슬을 내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의사로서의 일을 못하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황제가 다시 물었어.
“결국 치료하지 않아 문왕이 죽지 않았소.”
“왕은 살쪄 숨 가쁘고, 머리도 아픈데다 눈이 어둡다고 말했습니다. 스무 살도 안 된 왕이 이미 걷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럴 때는 약이나 뜸을 뜰게 아니라 운동을 시켜야 하는데, 다른 의사들이 뜸만 떠 아주 나빠졌다고 들었습니다. 젊을 때는 알맞게 먹고, 몸속에 있는 기를 발산해야 됩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나니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어.
“창공이 그렇게 유명하던데, 정말 실수한 적은 없소?”
“저는 증상을 묻기 전에 아픈 사람의 맥박을 먼저 짚어봅니다. 맥박이 순조로운 사람은 치료가 쉽지만, 약하거나 불규칙한 사람은 어렵습니다. 저도 맥박을 잘못 짚으면 실수를 저지릅니다.”
황제는 창공에게 말했어.
“당신은 뛰어난 의술과 효녀인 막내딸 때문에 산 것이오.”
창공은 막내딸 덕분에 풀려나 원하던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었대.
윤아, 우리 짜장면이나 시켜 먹을까? 탕수육도 시켜 줘?
“예∼.”
아빠, 빨리 전화하세요.
가만 있자, 전화번호가 어디 있더라?
순우의 (淳于 意)
서기전 215년 출생하여 서기전 150년 사망했다.
중국 의사로 제나라 태창(나라의 창고)의 장관을 지내 창공이라고 한다. 진시황 7년에 산동성 임치에서 태어나 한나라 경제 7년에 사망했다. 젊었을 때부터 의술을 좋아하였고, 한나라 고후 8년에 같은 고을의 공승(8품의 벼슬) 양경에게 배워 의사가 되었다. 창공은 얼굴에 나타난 오장의 빛을 관찰하여 병을 진단하고 사람이 죽을지를 알았고, 약물에도 정통하였다. 한나라 문제 13년에 시기하는 의사들이 고소하여 육형(손발과 코를 베고 먹실을 넣는 형벌)을 받기 위해 장안으로 압송하게 되었으나 딸 제영의 간청에 의해 풀려났다. 이로 인해 문제는 육형의 법도 폐지하였다. 딸과 함께 자유롭게 살다 서기전 150년에 사망했다.
김응수 (한일병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