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서 인술을 펴면서 이웃을 도운 - 최해관
오지에서 인술을 펴면서 이웃을 도운 - 최해관
  • 의사신문
  • 승인 2012.02.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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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도 오지의 의료사업 체계 마련·헌신적 봉사 펼쳐

최해관(崔海官)
최해관(崔海官)은 최상준과 김용성의 아들로 1940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46년에 월남하여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육사특별7기로서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근무처를 따라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려서부터 질병이 인간의 큰 불행임을 몸소 체험한 그는 의사가 되고자 연세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하였다.

1967년 연세의대를 졸업한 최해관은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원주기독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받았다. 그리고는 강원도 양양에서 2년간 최외과의원을 개원하였다. 막상 시골로 내려가자니 갈등도 많았지만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신부들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다고 회상하였다. 원주기독병원에서 근무할 때 몇 푼 안 되는 봉급마저도 쪼개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신부들의 삶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전문의사가 없던 양양으로 내려가 외과의원을 개원한 최해관은 평소 소망했던 대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무료진료도 열심히 했고 어려운 이웃들도 틈틈이 도왔다.

1977년에 대우문화복지재단에서 신안, 진도, 완도 등 낙도지역과 무주 구천동 오지에 병원을 건립하게 되었는데 김효규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 병원설립기획위원장의 책임을 맡았고, 필자는 간사로 일하였다. 1978년에 4개의 병원을 설립하면서 낙도와 오지에 근무할 전문의사를 찾게 되어 수소문 하던 중 최해관에게 참여를 권유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최해관은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차원에서 비영리적으로 운영될 대우문화복지재단의 의료사업은 어떤 면에서 개인적인 활동보다도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힘을 발휘할 것만 같기도 하여 그 해 가을 무주로 옮겨와서 무주대우병원을 건립하는데 산파역을 맡았으며, 병원 개원 후에는 원장으로서 병원 운영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초기에는 보건의료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부족과 오해 등으로 인해 갈등도 많이 겪었으며, 주민들의 비참한 경제적 수준, 불편한 교통사정, 자녀교육의 어려움, 유배지와도 같은 지역 특성으로 인한 정서적 삭막함도 심했다. 아울러 혈액 운반의 어려움과 마취의사의 부재 등은 여러 번 그를 안타깝게 했다. 수백 리 떨어진 큰 병원으로 갈 차비조차 없는 수많은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여 살렸으며, 대량 출혈로 곧 죽을 지경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직원들의 헌혈과 헌신적 봉사로 살려내기도 하였다. 건물도 없는 가난한 교회에 사재를 털어 건물도 지어 주었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물론 휴가도 없었으며 밤낮의 구별도 없었다. 그러나 낙도오지의 의료사업에 대한 역사적 사명감과 아울러 고통과 죽음에 처한 환자를 구한다는 자부심과 보람 의식이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20년 동안 이곳에서 의술을 베풀 수 있도록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무주병원은 당시로써는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추어 양질의 진료를 하며 최해관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자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개원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최해관은 공적인 일에만 자신의 역량을 국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비를 털어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어려운 이웃들을 많이 돌보았다. 개인적으로 성당을 세웠으며, 천주교 공소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오고 있다.

최해관은 무주대우병원에서 1998년까지 일하다가 완도대우병원이 직원들 간의 문제와 경영 상의 어려움이 있어 대우문화재단의 요청으로 완도대우병원으로 옮겨 3년 간 근무하였다. 대우문화재단 소속 병원들이 2001년에 들어서 매각 처분하게 됨에 따라서 최해관은 평생 의업에 종사하여 온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연세외과의원을 개원해 현재까지 인술을 이어가고 있다.

최해관은 전북대상 사회봉사부문(1989), 국민훈장 석류장(1990), 보령의료봉사상(1991), 무주군민의 왕 사회봉사부문(1994), 자랑스러운 군성인(1994) 등을 수상, 수훈하였고 기타 다수의 표창장을 받았다. 명동천주교회 신부의 소개로 서울성가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던 홍명표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집필 : 유승흠(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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