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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우는 그곳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우는 그곳
  • 의사신문
  • 승인 2012.01.1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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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넓은 집
옥천 구읍은 그리 크지 않은 마을입니다. 작은 도로를 따라 소박한 건물들과 낡은 집들이 이어져 있을 뿐이니 길가 집집마다 남아 있는 정지용의 시가 아니었다면 굳이 찾아올 일은 없는 평범한 곳입니다.

차 한 대 겨우 지날 만한 길가의 기와집 구멍가게, 식당, 미용실 그리고 우편물 취급소에도 창에, 벽에, 출입문에 정지용의 시 한 구절이 자리 잡고 눈길을 끕니다. 그래서 천천히 걷다보면 실개천 얼룩백기 황소, 사철 발벗은 아내 말고도 장미꽃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나는 입춘 때의 밤, 알을 품고 있는 산꽁과 제철에 우는 뻐꾸기가 보이고 이윽고 오동나무꽃으로 밝히고 나면 구름이 머흘머흘 골을 옮기며 다가옵니다.

기념관을 나와 길을 따라 걸으며 기웃거리다 근사한 한옥을 한 채 발견했습니다. `영업중'이라는 간판을 보니 식당인 듯합니다. 길 가의 꽤 넓은 바깥마당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고 한옥 기와와 이런저런 것들을 쌓아 만든 야트막한 담장으로 안마당을 적당히 가렸습니다. 안마당은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 있고 마루로 오르는 댓돌에는 신발 몇 켤레가 놓여 있습니다.

가게와 정지용 시
처마 아래의 현판 글씨와 나무 기둥마다 걸려 있는 주련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 있는 목재 기둥 중간 중간 새로 짜 맞춘 문의 나무 색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같이 낡게 되겠지요.

`영업중'이라는 간판은 세워져 있는데 도무지 인기척이라곤 없습니다. 주련과 현판을 카메라에 담고 슬며시 용기를 내 댓돌 너머의 미닫이문을 열고 보니 마루와 방에 놓여 있는 식탁이 보입니다. 수더분하면서도 깔끔한 안주인이 점심 주문을 받으며 이곳이 예전에 옥천여중의 교사로 쓰였던 곳이라 일러줍니다. 식탁은 정갈합니다.

조금 이른 식사를 하며 다리쉼을 하고 마당을 나서는데 한결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이곳에 들어설 때는 보지 못한 제법 큰 한옥이 아래쪽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예사롭지 않아 보여 찾아가 보니 마당이 이렇게 클 수 없습니다. 마당 끝에 자리 잡은 고목은 여전히 위풍당당한데 이 집 분위기는 공허합니다.

1700년대 기와집 85칸과 초가 12칸으로 지어졌다는 고택 문향헌(文香軒)은 위태한 모습으로 스러지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많던 건물들은 사라지고 남은 건물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주인의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주인 내외가 춘주민속관이라는 이름으로 전통혼례, 민박, 한옥마실음악회, 한옥학교 등 전통한옥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합니다.

이곳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죽향초등학교도 옛 시골학교의 아련한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곳입니다. 정지용문학관에서 안내를 하시던 지긋한 연세의 할머니도, `마당넓은 집' 식당의 안주인도 육영수 여사 생가도 가까운 곳에 있으니 한 번 들러보라 권합니다.

가게와 정지용 시
옥천향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나섰습니다. 길 따로 조금만 가면 된다기에 좁은 곳이니 쉽게 찾으려니 했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마침 오전 밭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돌아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에 옥천 향교 위치를 물었더니 무심합니다. `우린 그런 것 몰라요'하는 대답과 함께 싸늘하게 지나칩니다. 오지에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지간히 귀찮게 하는 듯합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작은 도로에서 산 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우뚝 서 있는 향교가 보입니다. 인적은 없고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몇 걸음 옮기다가 돌아 나왔습니다.

옥천은 추위 속에 겨울잠을 자고 있는 듯합니다. 정지용의 시를 주제로 대청호수가에 꾸며 놓았다는 장계 유원지 역시 잠들어 있을까요?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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