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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적은 여자?
여자의 적은 여자?
  • 의사신문
  • 승인 2011.12.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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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숙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박인숙 교수
나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남자들이 만들어 낸?)은 여자들을 폄하하는 아주 나쁜 말이라고 생각해 아주 싫어한다. 이 말은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 안에서 용기를 갖고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아주 부정적인 말로써 그래서 나는 여자들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이 말은 절대 여자들 스스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강력히 주문하곤 하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말이 들어맞는 대단히 안타까운 상황들을 목격하면서 여자들의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선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첫째는 아기가 심장기형을 포함한 어떠한 종류의 선천성 기형이라도 가지고 태어났을 때 아기의 친할머니, 즉 아기엄마의 시어머니가 아기엄마인 며느리를 대하는 싸늘한 태도를 목격할 때면 안타까움을 넘어서 같은 여자로써 분노마저 느끼게 된다.

기대와 축복 속에 갓 태어난 아기에서 선천성 기형이 발견되어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족 모두 큰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히 산모가 받는 충격과 절망은 아기의 할머니나 다른 친척들이 받는 실망감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출산에 따르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데 아기가 심장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산모가 깊이 절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로는 못해줄 망정 설상가상으로 기형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로 인하여 산모가 시댁으로부터 원망과 비난을 받는다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는 산모의 친정엄마까지 죄인 취급을 당하는 경우, 그리고 산모가 시어머니의 주장 때문에 반 강제로 이혼을 당하는 경우도 목격하였다.

너무나 당연히 아기의 기형이 산모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잘못을 산모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은 비과학적인 아주 잘못된 생각일 뿐 아니라 대단히 비윤리적인 처사이다. 아기의 부모를 중심으로 하여 시댁과 친정 가족 모두 합심하여 산모를 위로하고 산후조리과정을 돕고 아기의 쾌유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가족을 보면 아기의 주치의로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안타까운 사연은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들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업주부 아이 엄마들이 직장에 다니는 아이 엄마와는 정보교환도 거부하고 심한 경우 자기 아이가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아이와는 함께 놀지도 못하게 한다고 호소하는 직장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또한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직장여성들이 남성위주의 회사 분위기에서 어렵게 승진의 사다리를 올라간 후 결국 아이 교육의 어려움 때문에 중도 하차하는 경우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일들 때문에 직장과 육아, 그리고 가사를 병행하면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 그리고 지친 몸 때문에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애초부터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직장여성들이 실제 이런 일을 당하면 마음의 상처와 죄의식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경쟁이 더욱 심해지면서 이런 문제들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하게, 그리고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위 두 상황에서 보다시피 여자들이 어려움에 처한 여자들을 밀어주고 이끌어 주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여자들이 이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이런 상황은 참으로 안타깝다. 적극적인 계몽과 사회의 인식변화, 그리고 우리나라 보육지원제도와 교육 시스템의 개선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

박인숙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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