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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는 직업에 긍지와 애정 갖는 `장인'이 되자
의사라는 직업에 긍지와 애정 갖는 `장인'이 되자
  • 의사신문
  • 승인 2011.11.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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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39〉

의사들에게 전문 직업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에 과거 필자가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장인'이라는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오늘날 의사가 가져야 하는 의료 장인정신과 소명의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은 2010년 스피노자상, 2008년 게르다 헨켈상, 2006년 헤겔상 등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 리처드 세넷 교수(영국 런던정경대 사회학과 교수)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들을 연결해주는 공통점을 장인의식에서 찾고 있는 내용이다. 인간사회 모든 활동 중에서 물과도 같은 기본 재료인 인간의 노동과 일을 들여다보며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훌륭히 해내려는 욕망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인간이 일하는 모습을 탐구하며 실제적인 일에 임하여 몰입하면서도 일을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한다. 상고시대의 그리스 도공, 로마제국의 이름 없는 벽돌공, 거대한 성당을 지어 올렸던 중세 석공, 르네상스 예술가를 비롯해 근대의 노동자, 리눅스 프로그래머, 건축가, 의사 등 현대 전문 직종에 이르기까지 일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고 있다. 물론 그 모습들은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장인(匠人)의 모습이기도 하다.

현재 의사들을 교육하고 있는 필자는 운이 좋게도 그 동안 이러한 의료 장인들을 많이 만나왔다. 한 평생을 진료와 연구에 몸 받친 진정한 명의(名醫)들 말이다. 그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일 그 자체에 자긍심을 갖고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정밀함을 자랑하는 로봇 수술이 도입되고 최첨단 의료 장비들이 활용되고 있는 현 의료 상황에서도 오랜 진료 경험으로 쌓인 그들의 아날로그적인 진료 노하우들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며 필자 역시 많이 배웠다. 앞서 소개한 `장인'의 저자 세넷 교수가 맡은 일을 잘 해내고자 하는 욕망을 인간의 근본적인 성격으로 규정하였듯이 그들은 모두 최고의 명의가 되고자 평생을 열심히 노력했다. 몸으로, 두뇌로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숙고하고 성찰하였다. 그들에게 환자를 진료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의미였기에 그 누구보다도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는 장인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장인은 숙련된 기술과 기능을 갖고 있는 그 분야 최고의 마스터들만이 자격을 갖는다. 세넷 교수는 장인을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해내려는 욕망으로 사는 사람'이며 `품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장인의 모습을 단지 육체적인 기능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장인 의식을 `면면히 이어지는 인간의 기본적 충동이자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 해내려는 욕구'라고 해석한다.

특히 손과 머리의 긴밀한 관계에 주목하는데 손과 머리는 하나이며, 행동하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장인들이 일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특히 장인 의식에서는 `대충 대충'이라는 것이 없다. 매사에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용의주도하게 일을 처리한다. 아, 그래서일까. 그 동안 필자가 만난 의료 장인들 대부분은 의료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 있는 케어레스 미스(careless miss)까지도 소극적 전조 예측을 넘어 완벽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산업 현장에서 강조되고 있는 ZD 운동이란 Zero와 Defect의 약자로 우리말로 무결점(無缺点) 운동이다. ZD 운동이 지향하는 목표는 각각의 전문 분야나 현장의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구체적인 방식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근본이 되는 핵심의 원칙은 단 한 가지다. 바로 케어레스 미스(Careless miss)를 영(0)에 가깝도록 줄이자는 것. 즉 내가 하는 시술이나 수술에 대해서는 그 품질을 생명을 걸고 보증하겠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장인정신이란 꼼꼼하고 철두철미하게 혼신의 힘을 다해 자기가 하는 일을 마치 예술가가 작품을 다루듯이 최선을 다해 완성도를 높이는 불굴의 의지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사고조차도 사전에 완벽히 조치하여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장인'이라는 책의 부제는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이다. 저자는 진정한 장인(匠人)이 되기 위해 `1만 시간'의 실습을 하고 플라톤이 말한 `아레테' 곧 모든 일의 이면에 자리하는 최고의 품질 목표 경지에 올라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장인을 `craftsman' 곧 기술(technique), 기능(skill), 일(work)이라는 세 가지 용어의 의미장 관계로 해석하며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잘 해내려는 욕망'이 양가적이라고 설명한다.


세넷, “장인은 맡은 일을 잘해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사는 사람”
최첨단 기계도 인간이 가진 고유의 `생각하는 손' 따를수 없어
진료 자체에 즐거움과 소명의식 갖고 최고의 작품 만들어 보길


즉 판도라와 헤파이스토스라는 것이다. 판도라가 인류를 공도동망으로 몰고 가는 화려한 해악이라면 헤파이스토스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수줍은 일꾼이다. 저자는 판도라에 대처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인 `문화적 물질주의(cultural materialism)'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물질주의는 물질만능주의와는 다르다. 그것은 우리가 컴퓨터나 자동차 같은 물건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 물건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적 규범과 경제적 이해로만 본다는 것이다. 물건에 담긴 인간의 모습을 외면시한 결과라고 할까. 저자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다는 것'과 `물질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별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물질문화는 장인들의 물질의식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것은 변형, 존재, 의인화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째, 변형(metamorphosis)은 작업자의 조치가 바뀔 때마다 바로바로 나타나는 것인데 이 때 작업자의 생각에 따라 변형된다는 것이다. 둘째, 존재(presence)는 `이걸 만드는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의식으로 물건에 제작자 표시를 남기는 것이다.

셋째, 의인화(anthropomorphosis)는 인간의 특성을 떠올리며 물질을 이해하고 몰입하는 행위다. 이러한 장인의 물질의식 때문에 인간의 신체부위에 있어 손의 가치는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손의 다양한 가치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먼저 무언가를 잡는 행위인 `프리헨션(prehension)'은 우리가 어떤 물건에 대한 감각정보를 획득하기 전 몸이 미리 준비해서 움직이는 동작을 말한다. 정신적으로 우리가 어느 개념을 이해하게 될 때 `파악한다'는 것과 같다. 다음으로 표현하는 감각을 말하면서 작곡가나 연주자가 `내면의 귀'로 듣는다는 것은 허상이며 소리가 울릴 때 진실이 드러나는 데 음악가가 잘못을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손끝에서 잘못을 느낄 때라는 것이다.

실제 장인의 역사를 보면 손과 머리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손의 기술이 좋아질수록 그 일을 지루해하지 않고 즐겁게 느끼면서 오래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이러한 손의 역할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현대문명에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이라 함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생각하는 손을 잃어버린 결과는 인간의 정신적 이해의 단절이다. 그 아무리 최첨단 기계들이 신속함과 편리함을 제공할지라도 인간이 가진 고유의 `손맛' 바로 `생각하는 손'은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인의식은 산업사회에서 기계와 싸움에서 패한 것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며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 충동이며,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 해내려는 욕구라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아름다운 악으로 불리는 판도라보다 굽은 발로 절룩거리는 헤파이스토스에서 자부심을 찾고 있었다. 비록 굽은 발로 절룩거릴지라도 그는 그 자신이 아니라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했기에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장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기능과 의지, 판단을 탐색하는데, 특히 손과 머리 사이의 긴밀한 관계에 주목한다. 뛰어난 장인은 누구나 구체적인 작업과 생각 사이를 오가는 대화를 하게 되고, 이 대화는 반복적인 습관으로 진화한다. 이 같은 습관이 문제를 푸는 일과 문제를 찾는 일 사이의 리듬을 만든다. 손과 머리를 오가는 상호작용은 다양한 일에서 나타난다. 물론 일을 하다가 주저앉을 때도 있고, 충분히 숙달하지 못할 때도 있다. 기술을 적용할 때 생각이 배제된 채 순전히 기계적으로 되는 일은 없듯이, 기능을 닦을 때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렇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 역시 진료나 시술이 생각이 배제된 채 기계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고 의료 기술자가 아닌 진정한 의료 장인이 될 수 있도록 소명의식을 갖아야 한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긍지와 애정을 갖고 앞서 걸어간 의료 장인들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야말로 스스로가 행복한 직업인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이번 한 주는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해내려는 욕망'을 가지고 진료나 시술(수술)에서 최고의 품질을 추구해보길 바란다.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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