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력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력을
  • 의사신문
  • 승인 2011.11.17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38〉

■나쁜 소식 전하기

며칠 전, 필자의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남편이 며칠 전 위 내시경을 받았는데 검사 결과에서 헬리코박터 균이 나왔다며 약을 지어왔다고 했다. 후배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필자 역시 걱정이 되어 아는 의사들에게 물어보니 웃으면서 그리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헬리코박터 균이 있다며 특별히 위암이나 위염과의 관계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으므로 처방받은 약을 잘 복용하면 된다고 안심시켜주었다.

다시금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할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니 후배는 필자가 전하는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의사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한 숨을 내쉬면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순간 의사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하고 있는 필자는 또 한 번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다. 즉 의사가 환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와 의사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 어조 등이 일치하지 못해 생기는 오해였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가 앞서 칼럼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의사의 비언어적 메시지는 환자에게 그 어떠한 언어적 메시지보다 강력한 효과를 미친다. 환자나 보호자가 의학적 지식이 별로 없거나 의사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에는 더더욱 의사의 비언어적 메시지를 보면서 의사의 언어적 메시지를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의사의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표정 하나가 그야말로 사람 한 명을 잡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골드미스였던 필자의 친구가 재작년 결혼을 하였다. 평소 무척이나 아이들을 예뻐하는 친구였는데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녀 계획을 물으니 냉정한 목소리로 “생각이 없어. 남편과 자아실현하며 후회 없이 살고 싶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친구의 의외의 반응에 좀 놀랐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친구가 자녀 계획에 그렇게 냉정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 당시 그녀를 진찰했던 의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하고 계획한데로 아기가 생기지 않자 친구는 동네 한 산부인과를 찾게 되었고 불임과 관련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를 진찰했던 의사가 아주 애매모호하게 “글쎄. 불임이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하지만 호르몬 수치에 이상이 있어서 쉽지 않겠네요. 그냥 마음 비우고 사시면서 혹시라도 하늘이 주시면 무조건 감사하게 받으세요”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물론 친구 부부는 의사의 이야기를 “당신 부부는 불임입니다. 아기를 갖기 힘드니 그냥 마음 비우고 사세요”라고 선택적으로 주목하고 지각하여 전달받았다. 그리고는 그 다음부터 누가 자녀 계획을 물으면 아예 먼저 방어막을 형성하며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들 부부의 속이 까맣게 탔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놀랍게도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친구는 그 의사를 찾아가, 웃으면서 자신이 임신했다고 이야기하자 그 의사는 “그것 보세요. 제가 불임은 아니라고 했죠? 마음 비우면서 기다리시니까 좋은 소식이 생기잖아요”라고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이야기했다는 것이 아닌가. 즉 그 의사는 자신이 환자에게 얼마나 부정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는지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긴 의사 입장에서는 “불임이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하지만…”이라는 말과 “불임입니다”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환자에게 부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메시지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불임이라고 보긴 좀 애매하지만…”과 함께 곧 이어 “쉽지 않겠네요” “그냥 마음 비우고 사시면서…”라는 의사의 생각이 덧붙여지면서 최종적으로 메시지를 지각하는 데 있어 “불임입니다”로 각인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앞서 소개한 사례는 일개 의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필자 역시 이러한 경험을 했으며 필자의 연구소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했던 결과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많이 제기되었다. 초기 당뇨 환자에게 합병증에 대해 너무 겁을 주어 지레 겁을 먹는 경우도 있었고 완치된 갑상선 암 환자에게 암은 한 번 생긴 사람에게 더 잘 생기니까 건강관리 잘하라고 이야기한 것이 오히려 환자에게는 완치의 기쁨보다 평생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표정·목소리톤 등 의사의 비언어적 메세지는 언어보다 강력해
환자가 되묻는 경우가 많다면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검토 필요
형식적인 말투의 단순 전달 넘어 환자 보듬는 마음 함께 담아야


특히 필자가 소아과 의사들을 강의하다보면 의사들은 “아기가 크게 걱정할 상황이 아닌데도 보호자가 제 말을 믿지 못하고 흥분하며 큰 병원에 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자꾸 같은 이야기를 물어볼 때 힘이 빠집니다”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실제 소아과에 가서 의사가 환자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모니터하다보면 그러한 상황이 환자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의사가 환자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환자에게는 “아기가 크게 걱정할 상황이 아닙니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의사들 중에서 환자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정말 괜찮아요? 정말 아무 문제없을까요?”식으로 환자가 되묻는 경우가 많다면 한 번쯤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행태에 대해 꼼꼼히 모니터해 볼 필요가 있다.

칼럼의 앞부분에서도 밝혔지만 특히 의사들이 주의해야 할 커뮤니케이션 모습은 바로 ‘나쁜 소식 전하기’이다. 즉 나쁜 소식이야말로 의사가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환자가 전혀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나 남편 혹은 아내가 매우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거나 앞으로 얼마 살지 못 한다는 기막힌 상황을 이야기해야 할 때는 더욱 커뮤니케이션에 주의해야 한다.

언젠가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의사들 교육을 갔다가 중년의 한 아저씨가 레지던트 정도로 보이는 젊은 의사의 멱살을 잡으며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뭐? 가망이 없어 치료를 중단한다고? 그 따위로 밖에 말을 못해?”식의 이야기를 하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제 3자로서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보호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필자가 대충 짐작해볼 수 있는 상황은 당시 환자에게 행하고 있던 치료가 효과가 없어 중단을 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레지던트가 너무 형식적으로 전달하여 생긴 상황 같았다. 즉 환자가 치료 효과가 없어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인정하기 싫은 상황에 대해 너무나 형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의사에게 모든 울분을 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까. 만약 그 상황에서 의사가 좀 더 따뜻하게 공감하며 이야기했다면 환자 보호자는 오히려 의사를 붙잡고 흐느꼈을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의사의 태도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는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현재 EBS TV에서 방영하는 인기 프로그램 중 〈명의〉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국내에서 명의라고 손꼽히는 의사들을 찾아 그들이 환자를 진료하고 돌보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며 늘 왠지 어렵고 거리감이 느껴졌던 의사들이 대중에게 좀 더 가까운 의사로서 느껴지게 하고 그들이 전문으로 보는 병이나 시술(수술)에 대해 알게 하고 때로는 병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어 예방 교육을 시켜주기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필자 역시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인데 언젠가 대장암을 전문으로 보는 선생님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까지 생생한 모습은 바로 의사 선생님이 대장암이 걸린 환자에게 “요즘은 항암 치료가 워낙 좋아져서 옛날처럼 머리가 빠지는 경우가 드물어요. 즉 외적으로 보면 암 환자라는 것이 전혀 티가 나지 않아요. 물론 암 환자라고 누워만 있을 필요도 없어요. 그냥 예전과 똑같이 열심히 생활하고 항암 치료 때만 정확히 시간 지켜서 병원에 나오세요. 자신을 암 환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 몸 안에 암이라는 친구가 들어와서 나와 공존한다고 생각하세요. 그 친구를 잘 다스리면서 잘 지내면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선생님 환자들 중에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부터 현재 지방에서 병원을 개원하여 진료를 보고 있는 의사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환자들 표정들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암 환자의 핏기 없는 얼굴이 아닌 열심히 살고 있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당시 방송에서 완치를 앞둔 한 환자가 “이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저에게 있어 가장 큰 행운입니다. 이 선생님을 만나 암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암이라는 것을 무조건 내쫓아야 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잘 다스리면서 공존해야 되는 친구로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던 말은 지금도 필자가 의사들을 교육하며 종종 떠올리는 말이다.

이번 한 주는 언어, 비언어적으로 조금 더 환자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