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연극·영화계의 팔방미인 - 유한철
스포츠·연극·영화계의 팔방미인 - 유한철
  • 의사신문
  • 승인 2011.10.1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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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예술계와 체육계 발전에 크게 기여

유한철(劉漢徹)
유한철(劉漢徹)은 본시 그의 본직이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였지만 그는 병원의 원장일 뿐 아니라 당시의 음악과 영화와 연극 등의 예술계와 체육계를 선도한 분인 동시에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가, 영화인, 영화·음악평론가, 체육인 등으로 보다 유명한 삶을 산 사람이다.

유한철은 1918년에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출생하였으며 1938년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는 재학시절에 그가 좋아하는 음악과 연극과 아이스하키를 마음껏 즐겼다.

의사가 되어서 그는 한때 신설동에서 개원한 적이 있었으나 그의 대부분의 일과는 병원 일보다는 음악과 연극과 체육활동에 더욱 분망하였다.

유한철은 1958년에 시나리오 `낭만열차'를 발표한 이후로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당시의 유한철은 가장 바쁜 시나리오 작가의 한사람이었다. 이러한 공로로 1965년에 그는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한편, 그는 체육인으로서 우리나라 아이스하키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1968년에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지금도 유한철배 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와 전국중고아이스하키대회 등으로 그의 이름이 기념되고 있다.

이밖 에도 1969년에는 대한올림픽위원회 문화위원으로 1971년에는 대한체육회 이사 겸 전국체전위원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각각 임명되었으며 1948년의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에는 의무담당 본부임원으로 참가하였고 1964년의 제 18회 도쿄올림픽대회에는 섭외담당 본부임원으로 참가하는 등으로 체육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타고난 탤런트로 음악을 좋아했던 유한철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시절에 남성사중창단원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분주한 병원 일과와 영화인, 극작가, 체육인 활동의 틈을 타서 영화와 음악평론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음악회에 초대를 받으면 의례히 일찍 무대 뒤에 들러서 연주자를 격려하였고, 곧 이어서 다른 연주자를 찾아서 음악을 경청하였다.

막간에 무대에서 연주자와 이야기하고는 또 다른 연주회로 발을 옮기는 등으로 하루에도 여러 곳을 찾아다니는 부지런한 분이었으며 또한, 빠짐없이 신문과 전문지에 평론을 써주는 성의를 보여준 그 분의 열정을 아무도 따를 자가 없었다. 그는 오페라 연출에 관해서 말하기를 오페라는 음악을 아는 연출가가 맡아야한다고 역설하였다.

1973년에 그는 방송윤리위원으로 위촉되는 한편 가요심의위원장으로서 우리나라 가요의 건전화에도 힘썼으며 1976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고, 서울시문화상, 국제영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생전 그의 서재에 들러보면 초등학교 시절의 사진과 성적표를 비롯해서 수많은 각종 신분증과 여러 경기단체에서의 기념메달 등이 고루 잘 정리되고 간직되었음에 모두를 놀라게 하였고 언제나 그토록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한번도 남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는 꼼꼼하고 빈틈없는 분이셨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예로부터 천재는 단명한다고 하였지만 선생은 1980년 연말저녁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한창 일할 나이인 62세로 세상을 떠나셨음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선생의 장례식은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예술인장으로 엄수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재생', `푸른 하늘 은하수' 등 시나리오 여러 편과 `유한철시나리오선집', `한국영화를 말한다', `미스코리아', `대한체육회사'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집필 : 김기령(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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