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극복기 <12>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교수
암 극복기 <12>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교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1.09.0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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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다시 재발…5년 생존율 0%라는 절망의 숫자” 

 

■2번의 폐암과 함께 찾아온 갑상선 `친구'

2011년 1월, 9개월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폐에 `암' 덩어리가 발견됐다. 그것도 오른쪽과 왼쪽, 양쪽 폐 모두에 말이다. 임 교수는 2번이나 찾아온 폐암에 몹시 당황했다.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며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임 교수는 “2006년 폐암(왼쪽) 진단 이후 5년 만에 그것도 양쪽 폐에 암이 재발이 된 상황이었기에 폐암의 재발이라는 사실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9개월전 CT와 PET-CT 추적 검사에서 괜찮았었다는 사실만 머릿속에서 맴돌 뿐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충격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번 존재하던 갑상선의 병변도 더욱 커져 암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양쪽 폐도 모자라 갑상선까지라니. 그는 또다시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임 교수는 “오른쪽 측 폐에 있는 병변이 전이성 종양이라고만 해도 4기인데 그것이 갑상선까지 갔다면 과연 내 병기는 몇 기인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 까(?) 치료는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생기며 머릿속이 복잡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멍한 상태였다며 “아!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나(?)” 이 생각 뿐 이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의과대학 학장으로 그리고 병원의 의료진으로 학교 행사와 의사회 행사, 논문작성과 해외학회 참석 등 무리한 업무과중과 스트레스, 특히 완치됐다는 진실을 믿으며 건강을 과신한 결과라고 했다.

■폐렴이 폐암으로…“암세포가 우글거리는 내 몸”

임 교수에게 폐암은 불연 듯 갑작스럽게 찾아오지 않았다. 2006년 5월, 당시 계명대 의과대학 학장직을 역임하고 있던 그는 학교 축제로 인해 학생들과의 잦은 술자리와 지역 의사회 행사, 계속되는 회의 등 무리한 스케줄 때문이었는지 쇠약해진 그에게 폐렴이 찾아왔다.

폐렴은 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폐렴을 넘어 암세포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5월까지는 폐렴이었던 병변이 8월 일본학술대회를 다녀온 뒤 암으로 둔갑해 있었다.

임 교수는 “보통 폐렴 진단을 받으면 CT 촬영을 하지 않는데 당시 주치의가 뭔가 의심이 됐는지 CT 촬영을 권했다. 결과는 폐암(오른쪽) 1기 판정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초기라 수술만 하면 완치가 되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임 교수는 다시 학장으로 그리고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의사로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암 진단을 받은 `환자'였다는 것을 잊은 채 생활했다. 오른쪽 폐암을 초기에 수술해 완치됐다는 진실을 믿으며 처음엔 금주를 하다가 테니스 경기를 한 후 목마름의 유혹에 맥주를 한두 잔 마시기 시작해 마침내 한 병 정도는 거뜬히 마셨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속적으로 진행한 추적검사에도 불구하고 5년 뒤 그는 암이 재발됐다. 그것도 양쪽 폐에 모두. 그는 PET-CT 사진을 같이 보며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세우자는 주치의 연구실로 가는 동안 계단이 두개로 겹쳐 보이며 허둥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환자들한테 암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는 담담하던 내가 막상 나의 일이 되니 당황하고 있었다”며 “한 꺼풀 벗긴 나의 나상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PET-CT 사진 속에 아름답게 노란색으로 밝게 빛나는 부분에 암세포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을 보니 다시한번 멍해졌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갑상선 병변은 양성이라 수술할 필요가 없었다.

■양쪽 폐암 5년 생존률 0%, 2년 생존율은 50%

임 교수는 5년전 오른쪽 폐암을 수술한 주치의와 상의를 한 후 수술 날짜를 잡았다. 오른쪽 폐는 1월 25일, 왼쪽 폐는 2월.

임 교수는 “주치의가 오른쪽과 왼쪽 수술을 따로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우울했다”고 했다. 오른쪽 폐까지 전이가 됐다면 4기일텐데 암세포가 활동을 중단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임 교수의 생존율은 5년은 0%, 2년은 50%에 불과했기에 한꺼번에 수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양쪽을 한꺼번에 수술할 경우 폐 기능이 떨어져 위험했기에 주치의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임 교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2년 생존율이 50%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의 눈물을 보자 더욱 `희망'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다짐했다고 했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번 수술도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 하지만 수술 후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아픔이 심했다고 했다. 임 교수는 “기침을 할 때마다 상처부위가 뜨끔거려 나 자신을 긴장시킬 정도였다”며 “더욱이 두 번째 수술이라 유착도 심하고 늑골도 골절돼 더욱 힘들었다”고 했다.

임 교수는 “아프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지만 매우 괴로웠다”며 “당시 평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죽음과 환자들의 심정과 고통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2006년 폐암 1기로 수술…올해 1월 다른쪽 폐에도 전이돼
2년 생존율 50%의 희망만으로 양쪽 폐 순차적으로 수술받아
5개월간 항암치료 마치고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최선



■몸속으로 스며드는 화학물질…동물만 남은 `나'

그도 항암치료로 오는 고통과 공포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처음 오른쪽 폐에 암이 발견됐을 땐 약물치료로 그쳤지만 이번엔 달랐다. 항암주사를 진행했다. 5개월간 5번의 항암치료가 진행됐다. 그는 겪어보지 않으면 항암치료의 고통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고 했다.

임 교수는 “항암치료가 들어가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고통이 밀려온다”며 “매일 정해진 스케줄대로 손발이 묶인 형체로 가만히 웅크리고 참아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항암치료와 화학성분 반응으로 오는 메스꺼움과 구토까지. 그 결과 피부는 물기가 없고 검고 쭈글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마치 나무 껍데기를 만지 듯 감감이 어둔했다고 했다. 검게 변한 얼굴색, 초점없는 눈동자, 흐느적거리는 몸놀림 머릿속은 멍해져 가는 현상을 겪었다.

그는 “인간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며 “인간은 인간적인 고귀함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저 울부짖는 동물적 본능만 남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래도 일주일간의 항암치료가 끝날 때면 몸의 기운을 찾기 위해 폐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고기가 많이 생각났다며 항암치료 이후 후각과 미각이 발달 돼 고기의 등급을 느낄 정도였다며 웃었다. 그는 대구지역에서 진짜 좋은 한우고기집은 3곳에 불과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음악, 글쓰기, 산행 `암'을 극복의 `일등공신'

임 교수는 지난 6월 5개월간의 긴 항암치료를 마치고 신체는 물론 생활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처음 폐암이 발견됐을 때 보다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고 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는 요즘 진료와 수술 외 `음악'과 `글쓰기' 그리고 `산행'을 즐겨하고 있다. 그는 “음악은 멍한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정리를 해주고 메스꺼움을 가라앉히는 치유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진료가 없는 날이면 산문은 물론 한시 그리고 수필 등 글씨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그는 나뭇잎의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울려퍼질 정도의 조용한 새벽 4시, 정신 집중이 잘되는 이시간에 약 2시간동안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임 교수가 쓰는 글은 지역신문인 매일신문에 게재되는 수필과 비평 그리고 암 진단을 받은 후 진단부터 항암치료 등에 대해 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세세함을 전달해주는 글을 쓰고 있다.

이와 함께 산행도 즐기고 있다며 암 진단 받고 자주 가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고 했다.

■걷기의 소중함 일개워…스트레스는 암의 원인

임 교수는 `뇌'를 수술하는 신경외과 교수다. 그는 암 판정이후 수술 스케줄을 일주일에 한번으로 줄였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다. 임 교수는 “대부분의 질병은 스트레스로 인해 오는 것 같다”며 이 같이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이번 경험을 통해 `걷기'의 중요함도 느겼다. “몸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움직이고 눕고자는 것, 그리고 걷는다는 것이 행복한지 처음 알았다”며 “태어난 후 자연스러운 소유로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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