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극복기<10> 조중생 경희의료원 교수
암 극복기<10> 조중생 경희의료원 교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1.08.1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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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새 삶…봉사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선물 같아” 

 

■두 번의 생사 길…남은 삶은 `덤'
1999년 2월. 겨울답게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부는 금요일 오후 퇴근길, 머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심상치 않게 여기던 조중생 교수는 이틀 뒤 병원에 가 컴퓨터단층촬영(CT)를 했다. 결과는 예상치 못했던 `뇌출혈'이었다.

그러나 조 교수에게 뇌출혈이라는 병명은 마음의 심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단지 내 몸 안에 있는 병을 빨리 고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마도 `의사'라는 직업이 이런 느긋함(?)의 원인인 듯 했다. 

조 교수는 “내 직업이 의사라 그랬는지 당시 의사의 입에서 `뇌출혈'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두려움이나 공포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했다. 단지 그는 “내 머리에서 뇌출혈이라는 친구를 빨리 내 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주도한 학회 준비로 인해 빨리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했다. 조 교수는 최선을 다해 현재 내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대처 해야겠다는 마음을 잡았다. 그러나 그의 강한 마음가짐과 질병의 발병은 달랐다. 뇌출혈 발생 3년 만에 `대장암 1기'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내가 `암' 환자라는 걱정 보다 가족들이 눈 앞에 아른 거렸다”며 당시의 마음을 회상했다. 대장암 1기라고 해도 암은 `공포'와 `죽음'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통한 고통과 싸워야 하는 자신과 이런 과정을 옆에서 봐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국제알레르기비염 기초연구 창립 심포지엄 준비와 무리한 진료·수술, 그리고 충분하지 못했던 수면과 스트레스가 겹쳐 몸이 쇠약해 졌을 때 병이 내 몸을 탐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런 큰 경험을 통해 남은 삶을 `덤'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3시간 숙면과 무리한 진료·수술이 부른 `뇌출혈'
당시 조 교수는 자신이 주도한 국제알레르기비염 기초연구회(ISBAAR) 창립과 심포지엄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이런 국제알레르기 비염 기초연구회는 외국인 연자 8명을 초청할 정도로 규모가 큰 학회였다.

조 교수는 “내가 창립한 학회다 보니 성황리에 학회를 마치기 위한 준비부터 하루 수십명의 환자진료와 함께 7명 이상의 수술을 진행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는 학회 때 발표할 논문 5편을 준비하면서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잠을 청하지 못해 피곤이 겹쳐 몸이 지칠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바쁜 생활 탓에 체력보강을 위해 퇴근길을 차 없이 걸어 다녔다. 이런 노력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나 보다. 어느 날 머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누워서 꼼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조 교수는 “금요일 퇴근길에 증상이 나타났던 것 같다. 머리가 얼마나 심하게 아팠는지 토요일은 하루종일 방콕 신세를 져야할 정도였다”며 “주일에 교회를 가자는 아내의 말을 뿌리 친 채 병원을 찾을 정도였다”고 당시의 심각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고 뜻밖에 `뇌출혈'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국제학술대회를 몇일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치사율 90%(?)…치료하자 `긍정적' 사고 새인생 국면
조 교수의 상태는 치사율 90% 이상이었다. 그는 당황해 하지도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의사였기에 “치료하자”라는 결심 뿐이였다.

그는 “내가 병에 걸렸으니 빨리 고쳐야 겠다“라는 생각 뿐 아무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단지 국제학술대회를 위해 외국연자들까지 다 초청한 상황에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을 까(?)만 걱정이었다.

조 교수의 몸은 그에게 걱정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찾아왔다. 그는 학회 창립자였기에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학회 진행에 빠질 수 없다고 판단, 호텔 숙소를 입원실로 꾸며 치료와 함께 학회를 준비했다.

그는 “왼쪽 신체가 마비가 오다보니 말도 어눌하고 거동하기도 쉽지는 않았다. 내가 발표해야 할 논문도 있었고 학회 창시자인 만큼 아프다는 이유로 학회 운영에 손을 놓을 수 가 없었다”고 했다.

조 교수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강의도 하고 학회 환영에 만찬도 입원실로 꾸며진 방에서 진행하는 등 국제알레르기비염 기초연구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이때 창립한 ISBAAR은 현재 국제적으로 큰 학회로 성장했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조 교수의 재활치료는 학회가 마무리된 이후 진행됐다. 왼쪽 팔과 다리의 마비로 인해 10m 도 걷지 못했던 그는 4개월간 하루에 간신히 5m씩 보폭을 늘리며 걷자 다행히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몸이 불편했지만 일을 안하면 오히려 아팠기 때문에 환자를 진료하고 매일 꾸준한 운동을 한 노력이 나에게 새 삶이라는 선물을 가져다 준거 같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이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조교수에게 3년뒤 또 하나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국제알레르기비염 연구회 창립 준비 중에 뇌출혈 판정 받아
 뇌출혈 발생 3년 후 또 다른 불청객인 대장암 찾아와 `곤혹'
 나머지 삶 덤이라 생각하고 작은일에도 감사하며 일상 보

 

 

■우연한 발견 `대장암 1기'…“안타까운 내 운명”
2002년, 자주 복통이 있었다. 한 달에 한번 나타나던 복통은 한 달에 2번으로 바꿨다. 그는 “모든 사람이 배가 아프면 일반적으로 과민반응 대장증후군으로 알지 않냐”며 “나 또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직원 신체검사 때 일이 터진 것이다.

간초음파를 보다 아래 이상한 것이 보인다는 후배 의사의 말에 검사를 해 보니 대장암이었다. 당시 조 교수의 대장암은 장을 막을 정도로 그 크기가 매우 컸다고 말했다. 암 덩이는 크기에 비해 다행이 1기였다.

조 교수는 대장암 발견 4일 만에 대장을 절반 이상 절제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조 교수는 “처음 뇌출혈이었을 때보다 대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 느낌이 달랐다”고 했다. 그는 “`암'이라는 단어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당시 죽는다는 생각보다 걱정할 가족들의 생각이 앞섰다”며 “이런 가족들을 위안시키기 위해 의사인 내가 잘 고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가족들을 위로했다고 했다.

■가죽만 남긴 항암치료…`청진해장국'과 `운동'이 힘
하지만 대장암 1기라도 항암치료는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는 6개월간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조 교수는 “2∼3개월의 항암치료 기간 동안은 속이 매스꺼워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 그는 항암치료 때문에 얼굴이 검게 변하는 현상과 함께 음식 섭취가 어려워 얼굴이 수척해지면서 핏줄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였다고 했다.

조 교수는 그 때 생각을 하면 힘들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상하게 몸이 아프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랬는지 어릴 적 먹던 청진해장국이 그리웠다고 했다. 그는 자주 청진해장국을 즐겨 먹으며 건강을 유지했다.

이와 함께 조 교수에게 암 극복의 일등 공신은 운동이다. 그는 빠지지 않고 매일 1∼2시간씩 헬스장을 찾아 운동을 한다. 헬스장에 못가면 집에서 런닝머신을 하는 등 하루에 유산소운동을 40분 이상은 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조 교수는 “6개월에 한번씩 정기검사 받을 때 마다 이런 내 운명이 안타깝다고 생각하지만 암은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며 “두 번의 생사를 초월하니 남은 삶은 덤이라는 생각으로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덤'인생 의사로 봉사활동 하며 `살자'
조 교수는 크리스찬이다. 그는 두 번의 생사에서 살아난 것을 하나님이 살려주신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2번의 새 삶은 `의사'인 직업을 가진 내게 나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고치는 곳에 쓰라고 주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경희의료원 의료봉사단 단장으로 의료시설을 갖추지 못한 오지의 마을 찾아 봉사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조 교수는 “몽골, 캄보디아, 태국 등 의료시설이 낙후된 지역을 찾아 진료와 약 처방은 물론 수술환자를 경희의료원으로 데려와 고쳐주는 일을 하고 있다”며 “봉사활동에 발생되는 비용 모두 자비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본'을 보이기 위해 병 발병이후 공부는 물론 학회일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조 교수는 뇌출혈과 대장암 발병이후 환자를 치료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조 교수는 “작은 병도 미리 고쳐야 한다”며 “작은 병도 키우지 말고 초기에 완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엔 치료 선택을 환자에게 맡겼는데 지금은 수술을 많이 권장하는 편”이라며 “초기에 수술로 치료하지 않은 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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