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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고그라드(스탈린그라드)를 다녀와서 〈하〉
볼고그라드(스탈린그라드)를 다녀와서 〈하〉
  • 의사신문
  • 승인 2011.08.1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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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의협 남북의료협력위원회 고문) - 러시아 고려인 진료봉사와 의료실태

김인호 고문
유랑민으로 살았던 고려인의 아픔이 가슴 울려

100여명의 진료가 마감되고 축제도 끝날 즈음 “선생님”하며 또렷이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우리와 기념사진 찍어 주실래요?” 하며 손을 이끄는데 가족 친지들이 모인 할머니들이 현수막 앞에 모여 있었다. 울컥하는 감정이 북바쳤다. 외로움에 젖은 이국땅의 노년기에 만난 같은 핏줄의 의사들을 끌어안으려 하는 사진 한 컷!

고된 여정으로 피로했지만 우리들에게는 큰 보람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동안 진료하였으나 우리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의 조상은 한 맺힌 역사에 유랑민처럼 살았다. 항일운동이나 새 농경지를 찾아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정착하다가 일족 사회주의를 선언한 스탈린의 탄압으로 중앙아시아 벌판에 버려졌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그 때, 가축용 화물열차에서 반수는 얼어서 굶어서 죽었다. 그 후손들이 소련연방의 해체 후 눈물겨운 잡초생활로 토막 굴에 기거하며 한국인답게 부지런하고 끈질긴 근성으로 농사짓고 살아왔다.

이미 우리말을 잊었는데 러시아 인민으로 등록도 못한 채 유목민처럼 다녔기에 러시아 정부의 기본 의료혜택도 못 받아 질병이 있어도 근치하지 못하고 고통과 함께 참고 견뎌내고 있다. 2만5000여명이 거주한다는 볼고그라드. 그들의 아픈 세월의 흔적은 검고 거친 주름과 상처들로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진료 2일째 심장병 어린이 진찰하는 필자.
볼고그라드의 마지막 날 7월 9일(토)아침은 한결 가벼워진 짐을 정리하며 떠날 채비를 해 두고 우리민족본부 사무실로 향했다. 어제의 행사장 현장에 오지 못한 환자들의 요청으로 특별 진료를 진행하여 20여명의 환자를 보았는데 4살 여아가 대동맥협착증을 앓고 있어 현지 심장센터에 정기 검진하도록 알선하고 마무리하였다.남은 약품은 본부에 위탁하여 요긴하게 쓸 수 있도록 설명서와 용법 용도를 기록하고 봉사를 마무리하였다.

오후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현지 사무실에서 고려인 4세 중 유능하고 성실한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공식 자리를 마련하였다. 장학금 수혜자는 4명이었는데 홍 블랏 / 국립볼고그라드 의과대학 4학년, 이 안드레이/어문학부 3학년, 박 따냐/사범대학 석사과정, 김 이고르/경제학과 4학년생이다. 어려운 여건아래 밝고 미래 희망적인 사고로 최선을 다하는 젊고 유능한 대학 및 대학원 재학생에게 대한의사협회 명의의 장학증서와 장학금 5000루블을 각각 전달하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지들은 이 뜻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하며 고마워했다.

볼고그라드 역까지 이봄철 현지 책임자와 관계자가 배웅하며 수속해 주었다. 운동본부의 파견 근무 형식이지만 주재원으로 3개월, 한국에서 3개월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그런데 생활하다 보면 양쪽 다 떠나기 싫어진다고 하는 그와의 이별, 이런 국민이 있기에 글로벌 한국 위상을 높이고 있다고 위로하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모스코바까지 22시간이 걸린다는 종단열차는 2평 남짓 방의 좌우에 위아래 소파 형 침대에서 기식하며 간다. 내 위 칸에는 100kg 정도의 잘 생긴 건장한 러시아 해군 병사와 하룻밤 인연을 맺었는데 그는 불라디 보스토크 까지 간다며 모스코바 역에서 환승, 무려 8박10일 정도를 그 좁은 곳에서 다닌다고 하여 어디서든 역시 젊음이 부러웠다.


기본 의료혜택도 못받고 눈물겨운 아픈 세월의 흔적에 울컥
7월 9일 특별진료와 장학금 전달식을 끝으로 공식일정 마쳐
이젠 해외동포 의료현황 분석 근원적 접근해야 할 시기 절감



볼고그라드 한민족 4세 우수 대학생 장학금과 장학증서 전달식 후 함께.
한잠을 자고 난 후, 내다 본 차창 밖 풍경에는 서사시 같은 러시아의 웅대함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행렬, 대 평원을 물들인 유채꽃 같은 야생화 무리, 눈 쌓인 들판 위를 방향 없이 헤매던 `닥터 지바고'를 연상하게 하였다. 준비해 간 빵과 라면, 과일 등으로 요기하며 동행한 KBS 연예팀 가수 장미화씨 일행들과 담소 중 종착역 모스코바에 도착하였다.

모스코바의 일정은 예약한 근교 민박 아파트에서 마지막 밤을 지내고 `한민족학교'를 방문하여 그 곳 실정과 의료 실태를 보는 것이다.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서 클레물린, 바실리 성당, 모스코바 국립대학, 볼쇼이 극장, 시내를 가로 지르는 모스코바 강, 현대·삼성의 대형 형광간판을 주마간산으로 구경하였다.

백야의 오후는 짧은 여행객이 쓰고 싶을 만큼 길어 좋았다. 한국여자가 운영하는 숙소는 시내에서 일산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숙식제공 하고 호텔의 절반 가격이라 비싼 러시아 물가 때문에 한국 비즈니스 숙박객이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허가없이 소규모 한국 관광객 상대의 민박 사업은 서로가 필요조건이 부합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세상 좁은 것이 민박 주인여자가 임세영 원장의 15년간 떨어져 산 이종사촌 동생의 부인이었다.그 넓은 러시아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우리는 그 덕에 떠나는 날 아침을 진수성찬으로 대접받는 행운을 얻었다.

마지막 미션인 `모스코바1086 한민족학교'는 1992년에 엄 넬리(여,82세) 한국인 3세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초·중·고 과정이 통합된 슈콜라 공립학교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8대 민족학교로 인증을 받고, 전 러시아 공립학교 중 최우수학교로 선정되었으며 40여개 민족학교 중 최우수 표창을 받은 가히 해외 동포 교육의 선두라고 한다. 현재는 50여 민족의 학생 600여명이 수학 중인데 65%가 고려인 동포학생으로 채워진다.

교장실로 안내되어 교육, 의료, 재정실태를 브리핑하는 엄 넬리 교장은 이미 한국 교육계에서 잘 알려져 있었으며 한국어로 그간의 러시아 일생과 고난을 저술한 자서전도 직접 사인하여 주신 노익장이었다. 사범학교를 나와 평범한 러시아 주부로 있다가 50세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학교를 설립할 때 주위에서 모두 말렸다고 한다. 까다로운 인허가 과정과 일족주의 스탈린 정책아래 한민족 학교라니 위험하고 고생이라는 것인데 그녀는 연방정부를 설득하려 밤낮으로 밀어 부쳤다는 일화와 함께 각 학년 교실을 다니며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가을 동화'같은 드라마를 수십 편 직접 보고 즐거워하는 한국 드라마 수집가인데 그것을 복사해 우수한 한글 교육 선생에게 선물하여 실생활을 익히도록 도와준다고 하였다. 요즘 한국 드라마가 너무 인기가 좋아 그것을 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대학생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모스코바에 거주하는 대학동기는 누구라도 문호를 열어 놓고, 민족사 역사도 교육시키는데 전통 한국 가구를 입구에 전시하고, 민속놀이, 음식, 가무 등을 사진과 모형으로 전시하고 그 유래를 기록하고 있었다. 학교 주치의가 없어 아프면 대책이 없어 뜻이 있는 은퇴의사가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면 여러 면에서 상담할 수 있다고 의사회에 홍보해 주도록 부탁하기도 하였다.

일행이 이번 일정을 강행하면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러시아 해외 동포의 삶과 애환 그리고 질병으로의 고통 등을 체험하였다. 북측의 동족이 겪는 고통을 분담하려는 대한의사협회 남북의료협력위원회의 순수한 대북사업이 이제는 활동 방향을 선회하여 글로벌시대의 해외 동포들을 직접 도우며, 그 현황과 의료실태를 분석하여 근원적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본다.

필자는 조선의학회 초청 `평양 의과학 토론회'와 정부 주도의 `사리원 인민병원 현대화 사업' `금강산 인민병원 의료지원'에 관여하여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여 북측 인민들의 의료 시혜에 일익을 담당하려 한 바 있었으나 정치적 한계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의료봉사에서 우리 의협은 과감히 범세계적 동포애로 협력하고 도약하도록 그 범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였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의협회원 누구라도 참여하여 봉사할 수 있도록 그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동참할 의도가 확실한 `참여회원 등록제'를 시행할 것을 제시해 본다.



〈자료보고〉

■러시아 9대 질병
 1위 예기치 못한 사고(교통사고)
 2위 허혈성 심질환(심장)
 3위 뇌혈관성질환(뇌졸중)
 4위 알콜 과다로 인한 정신학적 문제
 5위 단극성 기분장애(정신병)
 6위 관절염
 7위 간경변
 8위 영양실조
 9위 결핵

■러시아인 진료 및 의료 협력 요양기관
 1) 2009년 8월 삼성서울병원과 블라디보스톡 주가 환자의뢰를 체결
 -의료기관 연구 및 학술교류-블라디보스톡 시 의료수준 향상을 위한 협력
 -삼성서울병원과 블라디보스톡 시 간의 환자의뢰 체계 검토 특히 삼성서울병원은 국제진 료소를 운영해서 가장 많은 러시아인을 위해 통역을 따로 배치.
 2) 차병원에서 국제진료소를 두어 러시아환자들이 치료를 하러 옴.특히, 불임치료.
 3) 건국대병원에서 국제진료소를 2010년에 개소. 러시아 환자 유치계획이 있음.
 4)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 러시아환자 방문중.
 5) 서울성모병원 국제진료소 러시아환자 방문중.
 6) 동아대의료원 러시아환자 유치 협약.
 7) 동서신의학병원 양한방 협진이라는 특성화된 방법을 통해 유치.
 8) 선병원(중소병원)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와 의료협약 체결.
 9) 좋은강안병원(부산) 한국 관광공사와 공동으로 사할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치설명.
 10) 한림대의료원 또한 러시아 환자 유치 계획중. 러시아 홈페이지 설립.
 11) 서울아산병원 러시아환자 급증.
 12) 닥스투어 의료관광분야에서 선점하고 있음. 러시아시장.
 13) 우리들병원 러시아환자 유치.
 14) 양산부산대병원 러시아환자 유치.
 15) 한양대국제병원 러시아환자 유치.
 16) 청심국제병원 러시아환자 유치.
 17) 하나투어에서 의료관광상품 출시.
 18) 인하대병원 외국인진료센터에서도 러시아환자 유치.
 19) 세화병원(부산) 러시아에서 불임치료 환자들이 찾아옴.
 20) 현재 설립되어있는 한국 의료기관은 메디피스 연해주 외래병원. 서울대병원, 서울대치과병원, 경희의료원 협력. 내과 치과 한방과 약국.
 21) 호호호 일침한의원 모스크바에 진출. 상트 뻬쩨르부르그에도 분점을 개소할 예정임.
 *현재 국내로 많은 러시아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가는 추세임. 입소문을 타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임. 그리고 작년부터 한국관광공사가 러시아 극동지방을 중심으로 한국의료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홍보를 펼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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