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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을 개척한 - 나세진
해부학을 개척한 - 나세진
  • 의사신문
  • 승인 2011.06.2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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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 연구·교육 및 한국인 체질 규명 온힘

나세진(羅世振)
나세진(羅世振)은 우리나라 해부학의 대부이자 큰 별이다. 그는 1908년에 태어나 1984년 작고하기까지 한 평생을 오로지 해부학자로 살아왔다. 그는 광복 후 갓 태어난 우리나라 의과대학에 처음으로 해부학 교육과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두 학회(해부학회, 체질인류학회)를 창립하여 오늘의 대학과 단체로 발전하도록 공헌한 선구자이다.

1926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같은해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다. 1932년 대학을 졸업하고 1934년까지 그는 경성제국대학 외과에서 부수로 근무하였고, 그 뒤 1934년 경성제대 해부학교실로 들어와 5년에 걸쳐 부수, 조수를 거치면서 해부학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였다.

당시 해부학 주임교수인 우에다쯔네기찌(上田常吉)는 체질인류학과 통계학의 이론과 해석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던 인물인데 그의 영향을 받아 나세진도 교육은 해부학 전반에 걸쳐 받아 왔지만 연구 방향은 체질인류학 쪽으로 그때 이미 방향이 굳어졌다.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1939년부터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의 해부학 교수로 임용되어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6년간을 한국 근대사의 한 부분인 여성의료인 교육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 과정 중 연구에도 힘을 쏟아 그는 1942년 경성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경성여의전에서는 나세진과 이명복이 돌아와 교수와 강사로 각각 해부학교실의 임무를 넘겨받게 되었다.

이명복은 나세진의 경성제대 5년 후배였으며 당시 조수로는 장신요(나중에 서울의대 교수가 됨) 외에도 여섯 사람이 있었다.

경성대학 의학부는 모두 나세진의 지휘아래 일사분란하게 해부학교실을 우리 손으로 재건하였다. 1947년 경성대학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합쳐지고 따라서 구성원의 변동도 생겼다. 경성의전 쪽에서는 정일천 교수, 이현수 조교가 합류되었다.

광복 이후 극도의 사회적 혼란과 빈약한 대학의 시설 속에서도 나세진은 해부학교육에 온 힘을 다하였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1951년에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하여 3년여를 군의관(육군대령)으로 복무하였다.

1955년 전역을 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1973년 정년퇴임하기까지 18년 동안 교수로서 학장으로서 해부학 교육과 대학 운영에 정열을 기울였다. 광복 이후 모든 것이 급변하면서 해부학 책도 짧은 기간 사이에 독일어에서 라틴어로 다시 영어로 바뀌어 갔지만 나세진은 스스로 적극적인 변신을 하였다.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나세진에게서 해부학을 배운 의과대학 학생은 강의실에서 Gray's Anatomy 원서를 한 손에 받쳐 들고(이 책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그 책으로 공부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다) 다른 한 손으로는 흑판에 그림과 글을 써내려가며 돋보기안경을 이마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강의에 열을 내뿜던 광경을 누구나 인상 깊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원래 경성제국대학 시절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대로 연구 분야를 해부학 중에서도 체질인류학으로 정하고 변함없이 그 분야에 집중하여 연구해왔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류에 있어서 반성인자에 의한 유전양식의 연구법: 제1편∼제4편)을 시작으로 한국인의 체질 구명에 온 힘을 기울였다.

어떤 경우에는 한국 전체 민족을 대상으로 때로는 특정 섬사람, 장정 또는 어린이와 태아, 고분 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수제자인 장신요와 함께 1957년 대한체질인류학회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이 학회는 그보다 10년 앞서 세워진 해부학회와 더불어 지금도 해부학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두개의 큰 연구 단체이다.

나세진은 해부학자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세상에는 카메라 수집광으로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집에는 백여 종의 카메라가 보관되어 있고 틈만 나면 손질하고 관리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집은 서울의 전통적인 한옥촌인 안국동 고 윤보선 대통령 고택 바로 옆 고풍스런 집이었다. 나세진은 어렵고 힘든 시절 대학과 학문을 지켜나간 근대 의학사의 큰 인물이다.

집필 : 백상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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