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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와 소동파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항저우의 서호
백거이와 소동파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항저우의 서호
  • 의사신문
  • 승인 2011.06.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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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에서 항저우로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에 올라섰는데 다시 끝없는 평지가 펼쳐집니다. 어디가 끝일까요. 관광안내원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항저우까지는 거의 3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한산사를 유명하게 만든 시 장계의 풍교야박, 상하이와 쑤저우라는 지명의 유래, 운하이야기까지, 중국의 4대 미녀 이야기까지…. 참 성실한 사람입니다.

퇴근시간이 되어서 항저우에 도착하고 보니 시내 교통이 많이 혼잡합니다. 많은 자전거와 오토바이 그리고 각종 차량들이 도로에 가득해 도무지 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저녁 식사 후 송성가무쇼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공연인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을 보아야 하는데 식사시간이 문제입니다.

결국 늦고 말았습니다. 일종의 테마파크 송성(宋城)이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공연시작 시간도 지났습니다. 일행 모두가 뜀박질을 했습니다. 저녁 공연에는 관람자가 많아 혼잡하다는데 아무래도 예약된 자리에 앉아 편안히 관람하기는 틀렸다고 생각하며 어두운 공연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예약된 자석은 그대로 비어 있었습니다. 무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두 줄이 옆으로 길게. 나의 오만한 선입견이었습니다.

◇소제(蘇堤)위에서 항저우 시내방향으로 본 서호
송성천고정이라는 이 공연은 처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화려함과 웅장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연출이 돋보입니다. 화려한 미녀들이 뒤에서 중앙 통로를 통해 무대에 올라서고 벨리댄스를 추는가 하면 한국 전통의 장고춤이 등장합니다. 비가 내리는 장면에선 객석 위쪽에서 안개처럼 비가 내리고 무대 위에서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서커스를 하듯 외줄에 매달린 남녀의 애절한 사랑 장면이 연출되고 어느 순간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나비가 수만 마리 날아오는 듯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출연하고 있는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정의, 애국심, 사랑을 주제로 역사와 전설이 버무려지고 이러한 이야기가 순간순간 관객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이야기야 진부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진부하지 않습니다. 장면 장면이 긴장감 넘치는 볼거리고 어느 한 장면 길게 늘어지지도 않습니다. 볼만한 공연입니다.

영어자막과 함께 한글 자막도 요소요소에 올리는 것으로 보아 한국 관람객이 꽤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나와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남송의 황제 회갑연에서 우리나라의 장구춤이 등장을 했습니다. 남의 나라 황제 앞에서 우리나라 여자들이 춤을 춥니다. 함께 관람하고 있는 중국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중국의 역사왜곡과 동북공정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냥 화려하고 아름다운 볼거리 중의 하나로 생각하면 될 것을 가지고 공연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일까요.

다음 날 서호에서 눈과 귀를 모두 씻어냈습니다. 부드러운 바람과 햇살, 코끝을 스치는 물 냄새, 호수 위에 잔잔하게 떠 있는 섬과 호숫가의 예쁜 길, 호수 너머로 멀리 보이는 항주 시내 고층 건물들의 스카이라인까지 어느 것 하나 모나지 않고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백성을 사랑했던 관리이자 시인이었던 백거이와 소동파의 이야기가 섞이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아 침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미녀 서시 이야기까지 곁들여지니 서호의 아름다움이 더욱 무르익습니다.

항저우 서호는 백거이와 소동파가 쌓은 제방 백제와 소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제방 위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느릿느릿 걸어야 제 맛이 날법한 이 편안한 둑길을 인파에 치여 걷다보니 소동파는 머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고 앞에 가는 일행을 놓치지는 않을까 노파심만 높아갑니다. 언제고 한 번 편안히 걸으며 소동파의 시 한 수는 읊어야 하겠습니다.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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