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극복기<2> 최경숙 동서산부인과 원장 
암 극복기<2> 최경숙 동서산부인과 원장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1.05.3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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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으로부터 새 삶을 받기 위한 운명의 날” 

 

■진료실의 `침묵'…그리고 `긴 정적'

1999년 오전 8시, 이른 여름의 아침 강남세브란스병원 유방외과 진료실은 다른 진료실과 달리 긴 침묵으로 오랫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그날의 진료실은 오직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의 따스한 햇살과 작은 새소리만이 들릴 뿐 사람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 나이 51세, 아직 의사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역할이 이제 `시작'인 시점에 불연 듯 찾아온 `유방암'이라는 판정이 의사의 입에서부터 그녀의 귀와 머리까지 전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최경숙 원장은 당시 암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사실이 현실화되자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모태신앙으로 기독교를 믿어온 집안에서 자란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왜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 원망 아닌 원망을 했다.

하지만 현실을 원망하고 후회를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절망할 시간이 없었다. 빠른 시간 내 `암 조직'을 몸에서 때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때 깨달았다. `암'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새 삶을 받기 위한 `운명의 날'
“지금 돌아보면 아마도 그날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새 삶을 받기 위한 운명의 날이었던 것 같다”
당시 최 원장은 병원 내원환자의 불임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찾은 후배의 방사선병원에서 `유방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만일 후배의 말을 무시했다면 지금쯤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엑스레이 결과를 살피던 후배는 창백한 낯빛으로 타 병원에서의 재검을 권유했다.

최 원장은 “이때 까지만 해도 설마, 내가 암 일 것이라는 생각은 물론 후배의 걱정 어린 시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바쁘다는 핑계로 재검사를 계속 미루며 암이라는 위기의식 없이 아까운 시간을 하염없이 보내고 있었다.

이런 최 원장이 답답했는지 후배는 진료 받을 병원과 주치의를 지정해 예약을 해 놓고 통보를 할 정도였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꼭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때의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그의 미련함은 결국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를 불러왔다.

■`바빠서'가 부른 재앙
그는 의사이기에 나를 기다리는 환자 생각에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진료 받는 날도 `바쁘다'는 단어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강남세브란스병원 이희대 교수(유방전문의)의 도움으로 검사는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최 원장은 검사를 받고 의료진의 최종 통보를 들을 때까지 초초함과 불안함이 크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한다. 결과는 유방암 2기 말기였다. 하지만 `암'은 그를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유방암이 임파선을 타고 자궁까지 탐 냈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암일 수 있다는 짐작은 했지만 막상 의료진의 입을 통해 전달된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만큼 충격이 온몸을 휩쓸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유방암 2기 말로 전이까지 된 상태라 유방 절제수술은 물론 자궁과 난소 적출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현실'이었다. 최 원장은 “암 수술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미룰 만용은 없어 빠르게 진행해 나갔다고 말했다.

■봉사를 하기 위해 `남겨진 인생'
환자들에게 기다림이란 악몽과 같다고 한다.`절망'이라는 감정이 순서처럼 찾아오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 중에 왜 내가 암 일까?” “암으로 인해 열심히 노력한 대가를 보답 받지 못할꺼야” “더 이상 사람답게 살지 못할꺼야”라는 등 희망대신 공포를 키우기 마련이다.

그는 진단이 내려지기 무섭게 암세포 제거를 위해 한쪽 유방암과 자궁과 난소를 적출하는 수술이 결정 돼 빠르게 진행됐다. 절망이라는 단어는 키우지 못할 정도록. 최 원장은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나를 안정시키기 위해 하나님께 당신이 날 살려준다면 소외받는 자들을 위해 이 생명 쓰겠다고 기도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최 원장은 6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는 “51년 인생길 중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암 환자가 아니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역경의 날 들이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여자로서 견디기 힘들었던 건, 외면적인 변화였다. 항암치료를 시작할 당시 처음엔 조금씩 빠지던 머리카락이 어느 날 부터인가 뭉텅뭉텅 빠지기 시작했고 이런 머리카락을 보면 죽음의 길로 다가서는 자신을 보는 것 같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절망과 고통은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울 때마다 `손'에 미세한 떨림으로 이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거울속에 비춰진 텅 비어버린 가슴 부근을 볼 때면 애써 괜찮다 되뇌며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유방의 상실을 외면하던 둑이 터져버리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후배 권유에 유방 엑스레이 찍고 자궁까지 전이된 것 알게 돼
 뭉텅 빠진 머리카락·텅빈 가슴 보며 애써 참던 울음 터져버려
 기도원 맑은 공기·물 큰도움…보다 좋은 의사된 것 같아 감사


 

 

 

■먹어야 산다…`물·맑은공기·믿음'으로 암 이겨최 원장은 음식을 멀리 할수록 결국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 원장은 머릿속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거나 된장이나 청국장 등 구토를 완화시키는 음식 등을 생각했지만 그녀에겐 편안한 마음가짐, 맑은 공기와 자연이 구토를 완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그녀는 이것으로 모자라 찾아간 곳이 기도원이었다. 최 원장은 하나님과의 기도를 할 때 가장 편안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기도원에 있던 `물'이 구토를 줄이는 큰 공신을 했다. 이때 물의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고. 최 원장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밀려오는 구토를 참으며 기도원을 찾아가곤 했다.

특히, 최 원장이 암을 극복할 수 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환자'였다. 그녀는 수술후 3주만 쉬고 다시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최 원장은 “환자를 진료하다가도 구토증상이 나오면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진료를 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천상 의사라고 생각했다. 환자를 진료하니 살아있다는 즐거움이 힘이 솟았고 환자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삶을 느꼈다. 그리고 암에 걸렸지만 여전히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데 감사하며 자신감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암환자들이여 위축되지 말고 희망을 가져라”
최 원장은 힘겨운 유방암 환자를 비롯한 암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 주고 싶다고 했다. “다시 얻은 생명 더 이상 낭비하거나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암 판정이후, 세계 각지와 국내 의료사각지대를 돌며 의술을 전파하고 있다. 국내 쪽방촌과 베트남, 중국, 인도, 케냐 등 다양한 인종과 국가에 의료의 손길을 뻗고 있다. 또, 이를 계기로 고려대 의과대학 의료봉사단과 한국기도교의사회 등 여러 의료단체 수장 역할을 맡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남은 인생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 원장은 “암은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가족과 생명의 소중함, 봉사의 즐거움,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 등 새삼 깨달아 인생 전체를 새롭게 체인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은 영·혼과육이 함께 하는 존재이다. 육은 물론이고 지식 감정 의지를 포함하는 혼과 하나님과 소통 할 수 있는 영이 건강해야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무엇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속성인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이어 “암이라는 회오리가 자신의 인생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을 이해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게 됐다고 한다. 비록 몸은 아팠지만 혼과 영이 건강했고 결국 몸의 건강까지 되 찾은 것 같아 참 조화로운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보다 좋은 의사가 된 점도 내가 얻은 큰 결실, 암치료를 받으며 환자의 입장에 서보니 그동안 내가 환자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자만이었는지. 환자로서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보았기에 마음으로 환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의사가 됐다”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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