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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5번 C#단조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5번 C#단조
  • 의사신문
  • 승인 2009.03.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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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성당 같은 질서ㆍ조화 속의 혼돈


“이 교향곡은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며 엄숙한 인간의 모든 감정으로 가득 찼으나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이 곡은 스스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네 개 악장의 교향곡이 될 것이다.”

말러는 교향곡 제5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예전의 교향시나 칸타타 형식의 초기 교향곡과는 달리 절대음악으로서의 교향곡을 쓰고자 하는 그의 첫 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나중에 말러가 부인이 된 알마 쉰들러를 염두에 두고 새롭게 아다지에토 악장을 삽입하면서 곡의 구조는 처음 아이디어에서 조금 벗어났긴 했으나 그 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알마 쉰들러는 좋은 가족 배경을 가지고 있고 지적, 예술적 능력에 걸맞게 부드러운 용모였기에 당시 많은 예술인들과 친구로 지냈다. 구스타프 말러를 비롯, 바우하우스 설립자이자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화가 오스카로 코코슈카, 작가 프린츠 베르펄 등과 가깝게 지냈던 그녀는 결국 말러와 결혼한다.

말러는 교향곡 제5번을 통해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시절로부터 벗어난다. 네 곡의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쌓은 관현악법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그가 완전히 새로운 곡을 작곡하려 했던 것을 여러 자료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그가 이 곡을 작곡할 무렵 바흐 음악에 기울였던 특별한 관심과 연구는 그의 작품이 복잡하고도 다채롭고 정교한 구성을 갖추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곡은 처음부터 표제적인 모습을 없앤 절대음악으로서 작곡되었다. 또한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하여 밝은 코랄로 진행되다 곡 마지막에서 속도를 높이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코다로 끝나는 것도 `고난에서 광명으로'라는 독일 교향곡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사실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도 이 곡만큼 스케르초가 복잡하고 큰 구조로 작곡된 경우도 없다. 말러 자신의 표현에 따르자면 “고딕 성당과도 같이 가장 높은 형태의 질서와 조화 속에 여러 혼돈들이 함께 표현된다.”는 것이다. 스케르초는 폭풍과도 같은 어두움의 첫 부분과 밝은 희망으로 나아가는 부분 사이에서 완벽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말러가 가졌던 내적 갈등에 중심을 두어 거칠고 충동적인 연주로 빠져들 수도 있지만, 스케르초를 지나 론도-피날레로 나아가는 이 곡의 논리적인 흐름을 들여다보면 말러적 요소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제1악장 : `장송행진곡, 침착한 걸음으로'_ 어린 시절 듣던 나팔 소리의 추억으로 시작하면서 장송의 리듬과 격렬한 절망이 교차한다. 변형된 행진곡 멜로디가 플루트 연주로 오싹함을 느끼게 하면서 말러의 천재성을 느끼게 한다.

제2악장 : `폭풍처럼 움직여서, 가장 격렬하게'_ 음악적 갈등이 심화되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순간 극적인 반전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지평이 열린다. 얼어붙은 하늘을 뚫고 한순간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말러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찬란한 대목 중 하나이다.

제3악장 : Scherzo_ 말러가 “삶의 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죽음 속에 존재한다.”라고 표현했듯 삶의 환희 속에서도 죽음에 대한 상념을 뿌리치지 못하는 말러의 이중성을 들려준다.

제4악장 : Adagietto, Sehr Langsam_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으로 현악 파트와 하프만 연주하는 매우 아름답고 고요한 악장이지만 싸늘한 햇살 속에서 꾸는 피곤한 꿈처럼 쉽게 깰 것만 같은 안타까운 아름다움이 있다.

제5악장 : Rondo-Finale Allegro_ 여기에서 기쁨과 환희는 단지 죽음으로부터 도피인 것이다.

■들을만한 음반 : 브루노 발터(지휘), 컬럼비아 교향악단(CBS, 1959); 쥬제페 시노폴리(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DG, 1988); 레너드 번스타인(지휘), 빈 필(DG, 1986);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DG, 1972); 피에르 블레즈(지휘), 빈 필(DG, 1986); 게오르규 솔티(지휘), 시카고 심포니(Decca, 1990)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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