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극복기<1> 홍영재 산타홍 클리닉 원장
암 극복기<1> 홍영재 산타홍 클리닉 원장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1.05.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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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 암 선고…죽음 문턱서도 희망 포기 안해”
최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 교수 314명 중 10명(3.18%)에게서 암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는 일반인 암 진단율이 1% 안팎인 것과 비교해 3배에 달하는 수치다. 결국 의사도 `암'을 비켜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결과다. 이 같은 수치는 아마도 의사들이 바쁘게 돌아가는 환자진료 시스템으로 인해 자신의 몸을 돌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신이 의학 지식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한 몫하고 있는 듯 하다. 이로 인해 의사들은 질병에 대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다.  의사신문은 `암' 판정을 받고 적절한 치료와 항암요법, 민간요법을 통해 암을 극복한 의료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그날의 하늘은 청명했지만…내 앞은 암흑 뿐”

10년전, 그날의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그에게 만은 달랐다. 그의 나이 58세, 동료의사에게서 대장암 3기와 신장암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이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주일에 3∼4번은 병원 앞 호텔 피트니스 클럽을 찾아 운동을 하고 주말엔 골프를 즐기는 등 누구보다도 건강에 자신 있었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러면서 평생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온 대가가 암이라는 현실에 하늘을 원망했다.

그러나 원망은 1분1초가 아쉬웠던 그에겐 `사치'일 뿐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암 판정 후 그의 소망은 의과대학에 재학중인 아들의 혼사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2∼3개월 밖에 살 수 없을 줄 알았던 그는 유언장을 준비할 정도였다.

홍 원장은 `암'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자 구별 없이,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암을 발생할 수 있고 그 역시 암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됐던 것이다.

■갑작스런 아랫배의 통증…육식 식습관이 부른 대장암

2001년 10월. 홍 원장은 지인들과 부부 동반으로 강화도를 방문, 식사 도중 갑자기 아랫배의 통증을 느꼈다. 이 통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됐고 그는 건강에 문제기 생겼다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음 날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대장암 3기라는 진단이었다. 이런 비극은 한번에 끝나지 않았다. 대장암 치료를 위해 정밀 진단을 받던 중 신장에도 암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홍 원장은 “한 가지 암도 수술·치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 2가지의 암을 수술·치료해야 한다고 했을 땐 `대장암' 선고 때보다 몇 배 가중된 절망이 다가왔었다”고 말했다. 또 “대장암의 원인은 `40년동안 육식해 온 것·잘못된 식습관'이 큰 화근이었다”고 했다.

홍 원장은 “'암'은 조기 발견 시 완치가 가능하고 발견 시기가 늦어질수록 생명을 위협한다는 조기 발견을 위한 정기 검진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다행히 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암의 재발방지를 위한 항암치료였다. 그는 항암치료는 안 겪어본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며 의사인 그도 겪어보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다고 했다.

■육체의 고통 항암치료 …생과 사를 넘나든 사투에 `홍영재'는 없었다

많은 암환자들은 수술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항암 치료라고 말한다. 항암제가 워낙 독해 부작용을 겪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그 또한 피해갈 수 없는 난제였다. 더욱이, 의사인 홍 원장의 경우는 일반인 보다 고통이 2배에 달했다. 의사이기에 항암제 투여량에 따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홍 원장은 “암 재발을 줄이기 위해 투여량을 높였지만 항암치료 과정은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며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면서 입 안 전체와 목 안까지 물집이 잡혀 물 한 모금 먹기가 힘들 정도였다”며 “77∼78kg를 유지해 오던 체중이 61kg까지 줄어드는 등 항암치료가 진행될수록 우울증에 빠지면서 하루하루가 악몽과 같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암치료 시작 후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산송장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산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항암제 치료는 입과 목의 염증으로 음식을 거부해왔고 이로 인한 구토도 날로 심화돼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러 `죽음'을 눈 앞에 둔 듯 했다.

대장암 3기·신장암 진단에 충격…정기검진 소홀히 한 것 후회
항암치료 부작용 너무 잘알기에 일반인보다 고통 더 크게 느껴
눈앞의 고비 넘기면 또 다른 꿈 있을거라 믿으며 암 극복 전진

■암 극복의 큰 역할 공신자 `청국장'

홍 원장의 몸이 `죽음'의 문턱에 다가갈수록 그의 아내와 지인들은 홍 원장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식욕은 쉽게 늘지 않았다.

그는 “이대로 내 생을 마감하는 구나”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던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릴 적 끓여주신 청국장을 먹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홍 원장은 “무엇에 이끌렸는지는 청국장의 구수한 냄새가 느껴지면서 식욕이 돋는 것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 순간 홍 원장은 아내에게 청국장을 부탁했고 어머니와 손맛이 가장 비슷한 이모님이 만들어주신 청국장은 홍 원장을 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청국장이 자신에게 꽤 잘 맞는 음식이던 것 같다고 한다.

홍 원장은 “첫 숟가락을 떠 먹는 순간 놀랍게도 그 동안 있던 심한 구토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그 동안 목으로 넘어간 음식은 대못처럼 식도를 긁어내리고 통증을 겨우 참고 삼켰다 싶으면 위가 요동을 치면서 구토가 일어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과정을 겪었다”고 했다. 그 후로 홍 원장은 암 투병기간 내내 청국장을 빠지지 않고 챙겨먹었다.

홍 원장은 “단지 청국장만 먹고 암이 완치가 됐다고 할 수 없다”며 “암 선고를 받고 의사의 진료와 처방에 따라 수술과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한 것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절망 아닌 희망 볼 때 `암' 이길 수 있다”


현재 홍 원장은 암을 100% 완치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전국을 돌며 지역주민들과 병원 환자들을 위해 `암'의 대한 건강강좌와 봉사활동, 산타홍 클리닉 경영, 청국장(식당) 운영 및 분점 개업 준비로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홍 원장은 `암'은 얼마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그는 “나도 암 선고를 받았을 당시 하늘을 원망하며 절망에 차 있었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하지만 그때 강한 마음을 갖지 않고 포기를 했다면 현재의 홍영재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 눈앞의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꿈을 펼 칠 수 있는 시간과 삶이 기다리고 있다”며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암'을 질병이 아닌 내 몸의 일부라 생각하고 암과의 사투에서 싸워 이기며 치유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암 환자들은 식습관과 생활습관 그리고 운동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홍 원장은 자신과 같이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하며 진료에 임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했다. “의사들이여 자신의 건강에 무심하지 말라”. 그도 낮·밤 가리지 않고 밀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하다보니 건강검진을 할 시간을 놓쳐 암이 자라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살아왔다며 `찬스'가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다며 건강검진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고.

홍 원장은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지역 개원의들을 위한 50% 건강검진 상품을 판매, 의료진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있다”며 “다른 병원에서 이런 상품판매를 활성화해 의료진들이 건강검진의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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