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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바꾸기 보단 환자에게 맞는 의사가 되자
환자를 바꾸기 보단 환자에게 맞는 의사가 되자
  • 의사신문
  • 승인 2011.04.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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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13〉

우리병원 환자에 대한 이해를 하고 계십니까.

얼마 전 조카를 데리고 가정의학과에 갔다가 의사 선생님이 조카에게 뽀로로 캐릭터가 그려진 반창고를 보여주며 라포를 형성하는 것을 보았다. 진료실에 들어서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6살 꼬마 아이에게 작은 반창고 하나를 들고 거기 그려진 캐릭터들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야, 너 뽀로로 좋아하니? 얘는 뽀로로고, 이 옆에 있는 친구는…”하면서 자상한 목소리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울먹울먹하던 조카는 활짝 웃으며 낭랑한 목소리로 “아니에요. 얘는 뽀로로 친구가 아니라 ○○에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다음 진료는 웃으면서 즐겁게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선생님이 참 진료를 잘 보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에 감는 작은 반창고 하나로 울먹이는 아이와 라포를 형성하고 자칫 힘들 수 있었던 진료를 아주 수월하게 보시는 것을 보며 선생님이 아이의 심리를 잘 이해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를 전문적으로 다루시는 소아과 선생님이신데도 아이의 심리를 헤아리지 못하시는 안타까운 상황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작년 겨울 아이 처방전을 받으려고 소아과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주사가 무섭다고 주사실 앞에서 간호사와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원장실에서 불쑥 원장님이 나오시더니 아이의 손을 거세게 잡고는 낮은 톤의 근엄한 목소리로 “이리와”하시면서 주사실로 끌다시피 데리고 들어가시는 것이 아닌가. 몇 분 있다 아이의 엄청나게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아이 엄마들이 하나 같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곧 원장님께서 아이의 심리를 적절히 파악하지 못하신 것이다. 물론 원장님 입장에서는 주사가 무섭다고 울고 불며 소란을 피우는 아이가 얼른 주사 맞고 집에 가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배려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어른의 기준으로 행동을 취하면 아이는 무서워서 그 다음부터는 더욱 병원을 무서워하게 된다. 아니 ‘주사’라는 이야기만 나와도 아주 도망가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러한 아이를 많이 만나는 선생님이라면 아이가 주사를 무서워하지 않도록 미리 깊은 라포를 형성하고 주사 맞는 것을 오히려 재미있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필자 역시 아주 어릴 때는 주사를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사하며 새로 다니게 된 병원에서 주사를 잘 맞으면 의사 선생님이 잘 했다고 하며 주사기를 선물로 주신 다음부터 빈 주사기에 물을 넣고 갖고 놀면서 더 이상 주사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 주사가 아파서 무서워했기 보다는 주사를 맞는 상황 그 자체가 어린 마음에 무서웠던 것 같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병원특유의 약 냄새가 진동을 하고 진료를 기다리기 까지 대기실에 앉아서 앞서 들어간 아이들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진료실에 들어가면 근엄한 의사 선생님이 표정 없는 얼굴로 배에 청진기를 대보고 익숙하지 않은 기구로 귀와 입을 보고는 어린 환자를 사이에 두고 어른 보호자하고만 대화를 나눈다. 주사 처방은 그 다음에야 이루어진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찌 주사가 무섭지 않겠는가. 앞서 주사 통증을 잠시 이야기했지만 어린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다가 무릎도 깨지고 공을 차다가 발목도 삐고 깨진 유리에 유리파편도 박히는 등 이런 저런 통증을 많이 경험한다. 곧 주사의 따끔함 정도는 그 여러 가지 통증들 중에 비교적 가벼운 아픔이다. 곧 본인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주사를 무서워하지 않고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먹기까지 그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울며 땡강 부리는 아이를 겁주거나 혼내는 것은 의사의 역할이 아니라 아이 엄마의 역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유아 환자에게 권위적 의사 보단 친구같은 눈높이 진료
외국인 환자 위한 통역·다국어 질문지 등 원활한 소통 대비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소통에 대한 관심과 배려 바탕돼야


그런 면에서 의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진료하는 환자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정형외과 선생님이라서 주로 나이 드신 환자 분들을 많이 만나는지 혹은 가정의학과지만 소아과 환자들이 많아서 유난히 어린아이들을 많이 만나는지 등을 생각해서 그에 맞춰 진료해야 한다. 라포 형성부터 어휘 사용, 설명방법 등 전반적인 진료 커뮤니케이션이 그 환자들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곧 우리 병원에 중년 아주머니들이 많이 온다면 평소 논리적이고 지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의사일지라도 좀 더 편하고 살갑게 진료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라포 형성에 유리할 것이다.

며칠 전 필자가 출강하고 있는 대학의 한 여학생과 점심을 먹는데 그 학생이 다니는 피부과 의사가 진료를 너무 잘 본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 그래, 그 원장님이 레이저 치료를 잘하시니?”라고 묻자 “치료도 잘하시지만 환자를 너무 잘 이해하고 계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일례로 그 병원 원장님은 환자에게 “하루에 기름종이 몇 장 써요?”식으로 전문적인 피부타입으로 질문하기 보다는 실제적인 환자의 생활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이다. 또 요즘 유행하는 `도자기 피부', `솜털 세안법', `꿀피부' 등의 어휘들도 너무 잘 알고 계셔서 그야말로 척하면 척이라는 것. 그렇게 의사가 환자의 말을 척척 알아듣고 소통이 잘 되다보니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의 치료가 더욱 신뢰가 가며 의사가 권하는 시술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를 우리 병원 매출 원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환자를 진정 위하는 치료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선생님들께 교육을 진행하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보청기 환자들을 진료 할 때는 일단 환자가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의사 입장에서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만 높아지고 정작 환자와는 소통이 안 되는데 어떡해야 합니까?”라고. 그렇다면 의사가 변해야 한다. 귀가 안 들리는 환자가 바뀌는 것보다는 의사가 그 환자에게 맞춰 진료 방법을 바꾸는 게 훨씬 빠르다. 우리에게는 청각, 시각, 체각 등 청각 외에도 다양한 감각이 있다. 곧 귀가 안 들리는 것만큼 두 배로 시각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표정과 제스처를 더욱 크게 취하면서 중요한 질문이나 필수 질문들은 종이에 써서 진료 시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또 그렇게 소통이 원활치 않은 환자들은 본격적인 진료를 보기 전에 질문지를 이용하여 기본 사항들은 체크해두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이러한 환자들은 본인도 귀가 안 들려서 답답한데다가 의사가 답답해하는 것도 느껴지기 때문에 더욱 심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또 귀가 안 들리는 만큼 의사의 눈빛이나 표정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얼굴 표정이나 행동에 신중해야 한다. 무의식중에 찡그리거나 고개를 가로젓는 행위가 이런 환자들에게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에 행동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통이 안 되어 답답하고 가끔은 짜증이 나더라도 적절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친절한 모습,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명실상부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실제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병원은 그 병원 환자의 절반가량이 그 동네에 거주하는 일본인이라고 했고,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병원은 유난히 프랑스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에 더해 요즘은 일본과 중국에서 성형수술이나 건강 검진을 위해 상당수가 우리나라로 의료 관광을 온다고 한다. 그 만큼 거기에 맞춰서 진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의사 역시 환자에 맞는 진료 커뮤니케이션을 개발해야 한다. 만약 우리병원에 일본인 환자가 유난히 많다면 의사가 기본적인 일본어를 배우거나 일본어를 유창히 할 수 있는 코디네이터를 두어야 한다. 또 통역이 있더라도 문진 시 필수적으로 하는 질문들은 미리 종이에 적어 놓거나 일본어로 작성된 질문지를 이용해서 본 진료 전에 부담 없이 체크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특별히 의사들이 기억해야 할 부분은 우리 병원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환자 입장에서 진정 원하는 진료가 무엇인지 어떤 소통 방법을 원하는지 고려하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 비싼 돈 들이며 능력 있는 통역 코디네이터를 고용 한다고 하더라도 정작 의사가 외국인 환자의 말을 못 알아듣는 가운데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면 의사의 비언어에 온갖 촉각을 세우고 있는 환자 입장에서는 그 진료를 신뢰할 수 없으며 물론 의사가 환자를 배려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관심, 그리고 당장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바탕이 될 때 의사의 진료도 빛을 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번 한주는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를 넘어 선생님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길 바란다.

이혜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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