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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사는 무엇으로 사나?
여의사는 무엇으로 사나?
  • 의사신문
  • 승인 2011.02.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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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빈<한국여자의사회 사업이사>

이중빈 사업이사
산부인과 전문의 시험을 보기 직전 낳은 아들이 어느새 자라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처음생긴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준비로 바쁜 어느 날, 아들이 졸업하면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하던 1981년도 즈음에는 졸업하면서 결혼하고 군의관 가는 동기생들이 꽤 있었으나,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결혼을 일찍하는 것 같지 않던데… 왜 그렇게 빨리 장가가냐고 물었다. 아들은 아무리 봐도 제 여자친구만한 아가씨가 없다는 것이다.

남편은 나의 의대 선배이고 자기가 서른 살 넘어 군의관 마치고 결혼했다며 아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실 며느리감은 아들의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아들은 자신은 괜찮지만 여자친구의 집에서 나이가 차는 딸을 얼른 결혼 시키려 한다며, 엄마가 좀 만나서 선을 봐달라고 말했다.

왠지 너무 이른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들의 여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날… 아빠는 여자친구에게 당황스런 질문만 할 것 같다며 엄마 혼자 만나달라고 당부하는 아들 때문에 중요한 만남을 남편 없이 나 혼자 하게 되었다.

선하고 예쁜 얼굴. 처음 만났는데 왠지 전부터 알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자식만 좋다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자신이 있다면 결혼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상견례를 하게 되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국 지난해 5월 아들은 인턴 스케줄을 고려하여 인턴 수가 비교적 많은 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준비도 아들과 며느리가 직장에 다녀서 준비과정을 하나하나 배워가며 안사돈과 둘이 준비하게 되었다.

우리 때도 그렇게 어렸을까? 한국나이 27세라지만 이제 겨우 만 25세.

남편은 무슨 과잉보호라나? 치마바람이라나? 난리지만 어린 신랑이 집안일 신경쓰랴 인턴 일을 빵꾸낼까봐 병원가서 일이나 잘하라고 하고 집안의 모든 일들… 예를 들면 TV케이블 연결, 쓰레기 분리 수거, 분기마다 하는 방역, 정수기 필터 교체(정말 집안에 할 일이 많다) 등등 누군가 집에 있어야하는 여러 일들은 어머니들(나와 안사돈)의 차지가 되었다.

자식을 키워봐야 철이 든다고 했던가? 정말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또 결혼시키고나서 보니 부모님께서 얼마나 끝없이 많은 걸 해 주셨는지 알 것 같았다.

나 자신도 결혼해서 한번도 안했던 일이다. 결혼준비도 나는 레지던트 일하느라 집에도 못들어가고 내 동생이 엄마와 함께 해주었고, 결혼 후 아기가 생긴 후엔 친정 부모님이 다 돌 봐주셨다.

심지어 어머니는 아기 목욕 시키다가 어깨 인대가 늘어나기도 하셨다. 산부인과 개원한 후엔 아이들 한글도 친정 부모님이 가르쳐 주실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애들 용품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던 시절이라 아버지는 아이들 장난감 모서리가 날카롭다고 새로 사면 꼭 갈아서 부드럽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렇게 애들 키우는 일, 우리집 살림, 병원 살림… 다 부모님 두 분이 봐 주셨다.

두 분은 그렇게 의사는 본인 혼자 하는 줄 알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딸 뒷바라지를 해주시면서도 늘 미안해 하셨다. `내가 돈좀 많이 벌어 놓았으면 너 병원 크게 지어 주었을 건데… 은행에 가서 대출받게 하고 미안하구나…'

아버진 13년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너무 바쁘게 살다가 그만 부모님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었던 것이다.

남편은 아들이 자기 힘으로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부모님께 그런 사랑과 보살핌을 받은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 또 자기 아이들에게 그렇게 할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세대가 이어져 가는 것이라 생각든다.

이 아이들 세대는 자신들 살기 바빴던 우리들 세대보다는 좀 더 정신적으로 여유롭고 따뜻하기를 바란다.

이중빈<한국여자의사회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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