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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복지 포퓰리즘으로 의권 상실 가속화
무책임한 복지 포퓰리즘으로 의권 상실 가속화
  • 의사신문
  • 승인 2011.02.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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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의협 명예회장, 전 보사부 장관>- 한국 의료의 빛과 그림자 <하>

문태준 명예회장
의료인력도 증가하여 인구10만명당 의사인력은 1981년 39.7명이던 것이 2006년 141.1명까지 증가하였고 의료기관의 증가에 따라 병상수도 증가하였는데, 특히 병원급 의료기관에서의 병상수 증가가 눈에 띈다.

건강보험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국민 건강 향상에 기여했다는 점은 각종 건강지표의 개선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기대수명은 1960년에 52.4세로 OECD 평균인 68.37세보다 16년 정도 낮았으나, 2005년도에는 78.5세로 OECD 평균치에 도달하였고,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OECD 국가의 2배에 달하던 영아사망률은 2002년 현재 출생 1천명당 5.3명으로 OECD 평균인 6.2명에 비해 낮은 수치를 나타내는 등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가 정착하는 이면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었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의 특이한 점은 피조합원들이 지역과 종류에 관계 없이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정책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부추겼으며 서울의 유명한 병원일수록 환자의 급격한 집중이 문제화되었다. 병원 이용에 있어 본인부담금을 차등화하였으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이와 더불어 세 시간 대기, 삼 분 진료라는 문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운영관리 측면에서도 건강보험제도를 관리하는 공단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재정적인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정치적인 면에서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한국은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건강보험제도를 총괄하는 철학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고부담·고급여'의 원칙을 내세울 것인지 `저부담·저급여'의 원칙을 내세울 것인지 지향점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뚜렷한 지향점 없이 정부, 노동조합, 기업, 시민단체는 의료비는 무조건 저렴할 수록 좋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고정 관념은 일부 정치인들의 소모적인 포퓰리즘과 결부하여 급여 확대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고 있다. 반면 급여 확대에 따른 부담 증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2000년 보험자통합과 의약분업이라는 큰 변화가 있은 후 건강보험재정은 위기에 놓였다. 보험자통합과 의약분업의 실시 여파로 인해 재정지출이 증가하여 보험료 인상과 국가재정 지원을 통해 겨우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위기가 진정되자 정부는 보장성 강화방침을 정하고 2006년 6세 미만의 아동 입원비를 무료화하고 입원환자의 식대를 80%까지 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이 정책은 또 다시 건강보험 재정을 적자로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2008년 6세 미만 아동 입원비는 10% 본인부담, 입원환자의 식대는 50% 지원으로 한 발 후퇴하게 된다. 지금의 건강보험재정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2030년에는 48조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추정하고 있다.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매년 보험료를 3∼5%로 인상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급여 확대에는 부담 증대도 필수적으로 따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무상의료'는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무책임한 복지 포퓰리즘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의료 공급의 주체가 과연 누구냐 하는 혼란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이 공급자가 되고 의사회는 그들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 심히 우려된다.

향후의 과제로서 건강보험재정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험료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인데, 현재 한국의 보험료율은 5.64%로서 사회보험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금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것이 필요하고 건강보험재원을 다양화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담배에만 건강부담세를 적용하고 있지만, 이에 더해 주류 등에 건강부담세를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방만한 공단 운영으로 재정 위기·대형병원 쏠림 부작용
공급 주체, 의사 아닌 정부·건보공단으로 힘 실려 우려
정부지원 확대·보험 재원 다양화 및 효율적 제도운영 시급


건강보험제도 도입 경과와 성과 및 과제 등에 대한 발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지금부터는 일본과 비교하여 한국 의료의 특수한 부분에 대해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건강보험법에서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을 비급여로 명시,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비급여를 제외한 의료행위는 모두 급여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비급여의 주요한 예로는 로봇 수술, MRI 등 신의료기술에 의한 치료와 정책상 급여를 인정하기 어려운 항목(상급병실 차액료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전문의에게 진료를 희망할 경우의 선택진료 등을 들 수 있다. 비급여는 100% 본인부담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비급여를 제외한 의료행위는 전부 급여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더라도 실제로는 진료비 심사에 있어서 급여에 대한 별도의 급여기준이 존재, 임의비급여라는 부분이 발생하여 매우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급여기준을 초과하는 의료행위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환자를 진료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기관 간 합의를 거쳐 환자에게 진료비를 부담시키는 것이 임의비급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임의비급여는 급여기준의 불명확함과 건강보험재정의 한계가 원인일 것이다. 임의비급여의 주요한 예로서는 수술재료대, 고가의 암환자 약제 비용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하나의 질병에 대해 급여항목과 비급여항목을 섞어서 진료하는 이른 바 `혼합진료'가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혼합진료가 한국에서는 건강보험제도 도입 초기부터 인정된 이유는 `저보험료/저급여/저수가'의 구조하에서 한정된 급여를 보완하여 환자의 니즈에 부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또 보험재정 부담 증가를 억제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다. 비급여와 혼합진료로 인해 정부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을 확대해 나가면서도 보험재정에 대한 과도한 압박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급여와 혼합진료는 높은 본인부담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8년 현재, 건강보험 보장률은 62.2%로서 이는 OECD 국가의 평균 보장률인 80%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2008년 현재, 전체 진료비에서 보험재정 부담률(보장성)이 62.2%, 법정본인부담(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본인부담)이 22.6%, 비급여진료에 대한 본인부담이 15.2%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건강보험환자의 진료비 총 58조원 중 보험재정에서 약 35조원, 법정본인부담 약 23조원, 비급여본인부담 약 11조원 정도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도 현재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진료비 청구 및 심사 전산화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진료비 청구 전산화는 1996년부터 EDI에 의한 진료청구 시범사업을 실시한 이후 2004년 전자청구율 99%를 달성하였다. 또 진료비 심사건수도 크게 늘어 2000년 4억1000만 건이었던 진료비 심사건수는 2009년에는 12억8000만 건으로 3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러한 심사에 있어 전산화를 추진, 심사의 전문성과 효율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2010년 청구건수의 50% 이상을 전자심사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연간 약 930억원 정도의 의료비를 절감하고 150명의 인력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었다.


■맺음말

1958년에 필자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연세대학교병원에서 뇌신경외과학과장으로 근무했을 때 만난 12세 소년과 그 가족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소뇌의 종양으로 수술이 필요한 소년의 아버지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수술을 권유하게 되었다. 시골 농부였던 소년의 아버지는 가족들과 의논하겠다며 시간을 달라고 하고 문 밖에 있는 부인과 이야기하러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는 “소작농으로 5인 가족으로 전 재산은 농사 짓는 데 필요한 황소 뿐인데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황소를 팔면 살아갈 길이 막막해 지기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고 수술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진찰실을 나갔다. 힘없이 돌아서는 소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30대 초반의 젊은 의사로서 나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깊은 좌절을 느꼈다. 왜 의사가 되었는가? 미국에 가서 최신 의료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돌아왔지만 사회 전체가 빈곤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세월이 흘러 30년 후인 1988년에 빛이 찾아왔다. 오늘 여러분에게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여러 과정을 거쳐 한국에서도 전국민건강보험이 완성되어 1989년 7월 1일 필자가 TV 연설을 통해 “오늘부터 모든 국민이 재정적 부담 없이 자유롭게 의료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고 선언한 순간은 의사로서 그리고 정치가로서 국민들에게 빛을 선물할 수 있었던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었다. 의사와 환자 간에 놓여 있던 재정적 장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

 

문태준 <의협 명예회장, 전 보사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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